입력 : 2022.04.15 17:34
개인전 ‘nuns and monks by the sea’
거대한 청동 조각이 품은 신비로움
5월 15일까지 국제갤러리

그들이 내려다본다. 현란한 색채도, 거대한 스케일도 아닌, 말없이 가만히 내려다보는 그들의 고요한 엄숙함이 압도한다.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58)가 청동으로 빚은 수도자들 다섯이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를 찾았다. 각 높이 3미터에 이르는 웅대한 규모의 이들 조각 다섯 점은 눈부실 만큼 화려한 형형색색의 네온 컬러를 입고 전시장을 가득 차지했다.
수도자는 입으로 수양하지 않는 법. 이들 조각 역시 별다른 부연이 필요하지 않다. 조각은 마치 위에서 관람자를 향해 내려다보는 듯한 구도를 취함으로써 위엄과 신비로움으로 주변을 메우며, 보는 이를 절로 숙연하게 한다.

론디노네의 대규모 청동 조각 연작 ‘nuns + monks’는 하나의 거대한 돌 위에 다른 색상의 작은 머리를 올린 일종의 의인형 조각으로, 서로 다른 사람의 그것과 같이 제각각 개성을 띄고 있다. 우상적으로 억압하기보다는 보는 이를 포용한다. 이들에게 팔이 없지만, 만약 있었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해주듯이 말이다. 청동 조각이지만, 표면은 거칠고 무질서하게 깎여 실제 돌을 연상한다. 이승민 국제갤러리 어소시에이트 디렉터는 “자세히 보면 조각들은 각기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서로 구별되는 외형을 지닌다. 꼭 휘날리는 수도복을 연상케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은 본래 석회암으로 제작됐던 작은 크기의 모형을 작가가 스캔하고 확대해 청동 주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론디노네의 작업에서 돌은 주요한 소재다. 미국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 설치된 공공미술품 ‘Seven Magic Mountains’는 작가의 가장 대중적인 돌탑 작업 중 하나다. 최근 BTS의 RM이 휴가 중 이곳 앞에서 촬영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화제가 됐었다.
론디노네는 돌이 지닌 구조적 특징이나 질감, 그리고 자연의 시간을 응축하고 있다는 특성을 청동 조각 ‘nuns + monks’에 재현해냈다. 기존 습작 모형의 사소한 특징까지 섬세하게 옮긴 덕분에 재료를 일부러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응당 돌조각으로 보일 정도다.

이번 전시가 열리고 있는 K3 전시장이 평소와 조금 달라 보인다면 공간 벽면과 천장 모두 시멘트로 덧칠한 까닭이다. 바닥과 벽이 단일한 콘크리트처럼 보이도록 공간을 변형한 것인데, 이는 작가의 직접적인 주문이었다. 갤러리 공간의 표면을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밑작업은 그가 종종 사용하던 제스처로, 바닥과 벽의 경계를 없앰으로써 그 지평을 재정의하고 돌에 내재한 고요한 변신의 상태를 은유하고자 함이다.


작가의 이번 개인전 ‘nuns and monks by the sea’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도 동시 개최된다. 서울점은 조각을, 부산점은 회화만으로 꾸며 한 전시를 이원화해 흡사 서로 다른 전시인 것처럼 구성한 것. 이와 같이 다른 공간에서 동시에 작품을 선보이는 전략은 론디노네가 자주 취하는 방법으로, 작가가 둘 이상의 시공간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작품이 자리하는 스펙트럼의 범주를 넓히는 효과가 있다. 부산점에는 작가의 집이 위치한 뉴욕 롱아일랜드의 매티턱에서 본 노을을 묘사한 ‘mattituck’ 시리즈가 내걸렸다. 청동 조각에서 그랬듯이 회화에서도 론디노네의 팔레트는 단 몇 가지의 색으로만 구성되지만, 그 노을빛은 어느 때보다 부드럽고 섬세하다. 전시는 5월 15일까지 볼 수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