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안 돼서 더 좋다” 브리타니 패닝의 ‘환상적인 비현실’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2.03.07 16:57

개인전 ‘Whipped Cream Daydreams’
4월 2일까지 한남동 갤러리BHAK

A Time for Martinis, Acrylic and embroidery on linen, 73x100cm, 2022 ⓒBrittany Fanning
 
라벤더 빛깔의 하늘을 향해 세차게 타오르는 불길, 눈보라 속에 추락하는 비행기를 등지고 마티니를 즐기는 여성. 이처럼 비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풍경이 꼭 영화의 극적인 한 장면 같다.
 
패션, 영화 등 문화 전반을 비롯해 일상에서 포착한 이미지와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아이러니한 풍경을 위트 있게 그려내는 브리타니 패닝(Brittany Fanning·30)은 화려한 컬러와 낭만적인 풍경 이면에 블랙 유머와 반전을 숨겨 놓는다. 작가는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드라마, 팟캐스트 등에서 영감을 받아 소재로 삼는다. 다소 잔혹할 수 있는 블랙 코미디이지만, 강렬한 색감과 호화로운 오브제가 대신 화면을 장악해 오히려 독창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하는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한다. 
 
패닝이 자신의 작품 모델로 분했다. 범죄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Night Stalker’(2021) ⓒBrittany Fanning
 
일견 유쾌해 보이는 그림이지만 그 속내는 마냥 밝지만은 않다. 작가가 작품 속에 반전과 대조를 심게 된 계기는 팬데믹이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느긋한 모습의 인물들은 전례 없는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연상하기도 한다. “제 그림 속에서 인물들은 불이 나거나 토네이도가 오는 데도 태연하게 휴식을 취하거나 와인 한잔을 즐기고 있죠. 혼돈에 빠진 세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침착해야 할 테니까요.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개의치 않고 평정을 유지하려는 노력하는 모습이 참 ‘쿨’ 해 보이더라고요.”
 
Cabin on Fire, Acrylic and embroidery on linen, 53x65cm, 2022 ⓒBrittany Fanning
브리타니 패닝 개인전 ‘Whipped Cream Daydreams’ 포스터 /갤러리BHAK
 
브리타니 패닝 개인전 ‘Whipped Cream Daydreams’가 4월 2일까지 서울 한남동 갤러리 BHAK(구 박영덕화랑)에서 열린다. 전시 타이틀이자 동명의 시리즈명인 ‘Whipped Cream Daydreams’는 유명 배우이자 가수였던 딘 마틴(Dean Martin)의 크리스마스 앨범 수록곡 ‘A Marshmallow World’의 노랫말에서 따온 것이다. 이번 신작들 대부분이 겨울에 작업된 만큼, 계절 특유의 감성이 담긴 노래의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명명된 이름이다.
 
Whipped Cream Daydream, Acrylic and embroidery on linen, 91x117cm, 2022 ⓒBrittany Fanning
 
설산, 스키어, 스웨터 등을 통해 겨울의 계절감을 살린 이번 신작에서는 붓 스트로크를 한껏 강조했으며, 화면 일부에는 자수 작업을 곁들여 질감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또한 기존 작업과 같이 등장인물 대다수는 얼굴이나 표정이 없다. 인물의 패션이나 제스처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함인데, 얼굴에서 감정을 읽을 순 없지만 인물에 동화되고 작품 속 서사가 상상되는 것 또한 작가의 의도다. 
 
Flame On. I'm Gone., Acrylic on canvas, 130x97cm, 2021 ⓒBrittany Fanning
 
아울러, 신작 시리즈 외에도 영화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2019)의 엔딩 장면을 모티프로 삼은 ‘Flame On. I’m Gone.‘(2021)을 비롯해 작가 고유의 감각이 드러난 회화가 다수 내걸렸다. 
 
패닝은 이번 전시가 끝난 뒤,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작가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LA의 야자수와 사막에서 영감을 얻고 싶어요. 왠지 사막이 저와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은 예감이거든요.(웃음)” 이후 뉴욕, 두바이 등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 패닝의 다음 ‘클라이맥스’는 무엇일지 기대된다. 
 
Once Upon a Time in Marfa, Acrylic and oil on canvas, 130x90cm, 2021 ⓒBrittany Fa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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