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12.07 17:25
‘권진규·목정욱’展, 28일까지 PKM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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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의 조각은 뚫어져라 바라봐야 진정한 맛이 우러난다. 목정욱의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외세에서 벗어나 ‘한국적 리얼리즘’을 정립하고자 한 우리나라 근대 조각의 선구자 권진규(1922~1973)와 인물 사진 영역에서 출중한 역량을 발휘해 온 패션 포토그래퍼 목정욱(41)이 권진규의 조각을 촬영해 함께 선보이는 권진규, 목정욱의 2인전 ‘불멸의 초상: 권진규×목정욱’이 28일까지 PKM갤러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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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내년 권진규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오늘날 관점과 요즘 세대의 시선으로 권진규의 작품을 어떻게 교감하고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권진규의 조각과 젊은 세대가 가깝고 소통할 수 있는 가교로써 목정욱의 사진을 택했다. 목 사진작가는 피사체의 내면을 끌어내는 포토그래퍼”라며 근대 조각의 거장 권진규의 자소상(自塑像)과 종교 도상(예수상, 불상) 조각을 현대 사진가의 관점으로 해석한 사진 작품을 크로스 매치해 선보이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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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는 청년 시절 일본에서 유학하며 서구의 최신 조소 기법을 배웠으나 1959년 귀국 후 동서양 미학을 넘나드는 고졸미(古拙美)의 인물상, 동물상, 부조 등을 제시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 언어로 발전시켰다. 문명 이전의 원초적인 이상 세계를 추구하면서도 진흙을 굽는 테라코타나 옻나무즙을 바르는 건칠 등 한국의 자연 재료를 사용한 그의 조각이 보여준 숭고미는 시대, 사회, 나아가 예술의 현실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목정욱은 권진규의 예술혼이 근대적 이해의 틀 속에 갇히지 않고 동시대의 신선한 시각 속에서 새로운 영속성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 감동의 관점을 확장하여 보여준다. 권진규는 언제나 구체적인 대상을 모델로 하여 작품을 제작했으며, 그의 자소상은 스스로가 모델이 되어 그 모델의 인간적 심연과 정신적 초월성의 갈망을 압축한 형태로 탄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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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인 남성 자소상 시리즈를 처음 마주했을 때, 조각에 대한 목정욱의 인상은 어땠을까. “테라코타 작품인데 눈빛이 실물처럼 살아 있는 것에 놀랐다. 이를 사진에 그대로 담아내고자 힘썼다. 권진규의 인물조각의 시선은 비스듬히 위를 향하고 있다. 진취적이고 고집이 센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진들 일부는 상이 또렷이 맺혀있지 않고 다소 번져있는데, 이는 추상적인 느낌을 자아내기 위함이었다. 저속셔터로 촬영해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듯이 권진규의 지난 시간이 집적돼 보이는 것처럼 연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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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는 권진규가 당대의 고독함 속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완성한 완숙기의 자소상 6점과 종교적인 구원에 대한 갈망을 담은 예수상과 불상 등 권진규 미학의 에센스로 채워진 조각 8점, 그리고 이를 촬영한 목정욱의 사진 작품 30여 점이 함께 꾸려졌다. 조각가는 비록 삶을 마감했으나, 사진작가의 관점으로 재탄생해 사진 속에서 다시 살아 숨 쉬는 듯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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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권진규는 일본 최고 권위의 공모전인 이과전(二科展)에서 다수 입상할 만큼 일본에서 인정받았으나, 1959년 귀국하여 서구적인 추상 조각이 유행한 당대 국내 화단의 동향과 달리 복고적인 구상 형태를 통해 대상이 내포하는 심연의 세계와 정신적 지향점이 느껴지는 순수미의 결정체를 빚어내었다. 주로 사실적이고 강건한 형태의 자소상, 다양한 동물을 형상화한 동물상, 주변 지인들을 모델로 한 여인상을 제작했으며, 테라코타와 건칠 기법을 이용해 독창적인 재질로 한국적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구상 조소의 세계를 정립했다. 올해 유족의 기증으로 141점의 권진규 작업이 서울시립미술관에 안치됐으며, 2022년 봄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동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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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정욱 현재 한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작업하는 패션 포토그래퍼 중 한 명으로, 최근 BTS의 ‘타임’지 표지 촬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프라다, 디올 코스매틱, 발렌티노, 아디다스 등과 글로벌 프로젝트 등 커머셜 프로젝트와 더불어 여러 미술 전시에 참여하며 폭넓은 범위의 사진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런던 예술대학교 런던 칼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 University of Arts London)에서 수학한 목정욱은 스튜디오콘크리트, 디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당구장 등지에서 개최된 그룹전에 참여한 바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