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11.08 11:58
21일까지 쾨닉 서울

카타리나 그로세(Katharina_Grosse)의 작업 중심에는 비재현적 회화의 잠재성을 확장하고 그 집단역사적 무의식을 포괄하려는 열망이 잠재해 있다. 그림을 그리는 매체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확연히 드러나는 색채의 풍부함으로써 비판적 탐구를 추구하려는 의지를 보여 준다.
그로세의 세밀한 회화적 공간은 모세 혈관, 나뭇가지, 지질학적 형태의 수로나 양막으로 둘러싸인 소용돌이의 형태를 모두 아우르고, 관객은 이곳에서 태곳적 물질이 번쩍이는 모습을 포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종종 그들은 유기물과 무기물 간 진화적 임계점에서 불안정하게 흔들리는데, 이로써 경계 공간 어딘가에 놓여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와는 대비되는 침착한 태도로 시각적 경험의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회화의 경계를 넘어서는데, 그의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회화란 무엇인지, 나아가 그려진 이미지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그는 스프레이건을 사용해왔는데, 이러한 제스처는 우연과 흔적의 논리로 희석된 색채의 흐름에 의해 물의 움직임, 즉각적으로 분사되는 에어로졸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이 몰입적 경험은 광활하고 압도적인 분위기에서부터 응축된 찰나의 순간까지, 지속적이고도 명상적인 고요함까지 모두 담아낸다.

그로세의 서울 첫 개인전 ‘거품의 뭉그러진 가장자리에서’가 쾨닉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종이 위 수채와 아크릴 물감으로 완성된 이번 신작에서는 명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고요함이 작가가 기존 작업에서 보여온 특유의 설치적 회화 속 에너지를 대체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서사적이고도 회화적인 공간 연출은 작가와 관객 간에 보다 직접적인 소통, 작업 수단에 대한 더욱 깊은 고심의 과정으로 연속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은 수채화 물감과 고희석된 아크릴 물감을 축축한 종이 표면에 바른 작업이다. 작가의 붓놀림은 드로잉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부드럽게 흐르는 색채에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곤 한다. 이는 곧 역동적 충동과 색채가 흘러갈 수 있는 물길의 필요성을 암시하는데, 이러한 작업은 그야말로 ‘지도 제작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갈망에 의해 구조화된다. 감정적 탐구의 결과를 담아낸 색채 명상록과도 같은 그의 작품은 21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