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어 볼까… 줄리안 오피와의 도심 산책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1.11.09 09:00

추운 계절 연상하는 현대인의 복장과 색감에 눈길
7년 만의 개인전

줄리안 오피 개인전 전경. /국제갤러리
 
바삐 걷는 현대인의 형상을 굵은 아웃라인으로 표현해내는 특유의 조형언어로 잘 알려진 줄리안 오피(Julian Opie)가 7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가진다. 그간 작가는 여러 매체와 기술의 조합을 통해 과거의 예술에서 영감을 얻음과 동시에 현대 도시에서 차용한 시각적 언어를 펼쳐 보여왔다. 2014년 이후 7년 만에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는 건물과 사람 그리고 동물을 담은 평면과 조각을 실내 전시장을 비롯해 야외 정원에까지 차려놓아 작품을 더욱 다채롭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오피는 사람, 동물, 건물, 풍경과 같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독자적인 시스템에 기반한 미술언어를 통해 단순화된 현대적인 이미지로 그려내면서 동시대인이 쉽게 접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업으로 미술시장에서도 선호도가 높다.
 
그의 관찰로 재해석된 세상의 이미지들은 고대와 최첨단을 넘나들며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통해 현실로 구현되는데, 고대 초상화, 이집트의 상형문자, 일본의 목판화뿐 아니라 교통 표지판, 각종 안내판, 공항 LED 전광판 등에서도 두루 영감받는 그는 현대의 시각언어가 미술사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들과 조우하는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줄리안 오피 개인전 전경. /국제갤러리
 
이번 전시에서도 최근 작가가 포착한 길거리의 낯선 이들이 소재가 된 알루미늄 조각, LED 영상 등이 내걸린다. 오피는 런던의 동쪽에 위치한 작업실 근처에서 겨울옷으로 무장한 채 길을 헤쳐나가는 행인의 모습을 재료로 삼았다. 특히 개인의 옷, 머리카락이나 피부톤에서 따온 자연스러운 색감으로 이뤄져, 기존의 잘 알려진 발랄한 원색이 아닌 한결 톤 다운된 차분한 색감이 눈길을 끈다. 이는 작품의 바탕이 되는 흰색과 검은색에 어우러져 바람이 차가워진 계절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행인이 서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크고 작은 특징을 포착해 조합하는 작업 방식은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을 기반으로 하는데, 작품 속 인물이 취하는 ‘걷기’와 같은 가장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모습은 작가의 작품으로써 예술로 거듭나게 된다. 
 
동물들이 서로 대조되거나 마주 보는 모양을 취하도록 작품을 설치한 것이 재밌다. /윤다함 기자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동물을 소재로 한 작업도 다수 선보인다. 사슴, 수탉, 소, 강아지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동물의 이미지는 작가의 조형언어 체계를 통해 친근한 대상에서 상징적 부호로 거듭난다. 좌대 위에 놓인 알루미늄 재질의 조각으로 공간 주변을 부유하며 전시장에 또 다른 물리적, 심리적 리듬감을 부여하는 듯하다. 인위적인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진 동물 조각은 작품의 영감인 천연한 자연과 조화와 동시에 대비를 이룬다. 
 
“주어진 공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관객이 흥미롭게 작품을 경험하도록 어떻게 조율할지를 고민한다”는 오피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3D 가상공간에 작품을 배치하고 VR 고글을 낀 채 가상의 전시장을 직접 둘러보는 방식을 거듭하며 동선을 섬세하게 기획, 구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작품들은 저마다의 선과 색, 규모와 운동성, 그리고 대상과 재료 간의 상관관계에서 비롯된 역동적인 에너지를 내뿜으며 관람객에게 작가가 직조한 새로운 세상에 와있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28일까지.
 
동물들이 서로 대조되거나 마주 보는 모양을 취하도록 작품을 설치한 것이 재밌다. /윤다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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