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10.05 18:01
31일까지 국제갤러리, ‘박서보 개인전’
제작 중단한 인기시리즈 ‘컬러 묘법’ 16점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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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이현숙 회장이 말씀하더라. 잘 팔리지도 않는 대작을 나처럼 많이 하는 작가가 없다고. 이번 전시에 내가 좋은 그림을 아주 많이 줬다.”
때론 불타오르는 단풍처럼, 때론 수평선에 걸친 섬처럼. 자연의 색감과 풍경이 삼청동에 펼쳐지며 치유의 공간을 이뤘다. 박서보(90) 화백의 개인전 ‘PARK SEO-BO’가 이달 31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가장 인기 있는 시리즈인 ‘컬러 묘법’ 16점이 내걸렸다.
국제갤러리는 국제갤러리(2014), 제56회 베네치아비엔날레(2015), 벨기에 보고시안재단(2016), 상하이 파워롱미술관(2018) 등에서 열린 유의미한 그룹전을 통해 박서보 화백과 단색화를 세계 미술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는 등 작가와 인연이 깊다. 컬러 묘법은 손의 흔적을 강조하는 대신 일정한 간격의 고랑으로 형태를 만들고 풍성한 색감을 강조해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작가의 대표적인 연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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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의 기본정신을 두고 박서보는 무목적성과 반복성을 꼽는다. 마치 스님이 쉼 없이 목탁 두드리며 선에 도달하듯이, 화면에 끊임없는 반복성을 드러내 자기 자신을 비워내는 과정이 회화로써 나타난 것이다. 즉, 그리는 행위는 수행 과정이고, 그림은 수신하는 도구인 셈이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통해 여기저기 밀리며 물성이 만들어지고 무목적성과 반복성, 이 두 가지 요소와 어우러지며 정신성을 이룬 것이 단색화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그는 2000년대 들어서며 강렬하고 선명한 색감을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하던 그가 새로운 디지털 문명을 대면하며 느낀 공포심에서 기인했다. 당시 디지털 문명으로의 대대적인 전환을 온몸으로 겪었던 작가는 더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겠다는 깨달음에 다다른다. 시대상을 반영해오던 예술가로서는 인정하기조차 힘들었을 두려움을 마주했던 것이다. 작업 중단까지 고려하던 작가가 끝내 얻은 실마리는 바로 자연이었고 색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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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연과의 합일이 오늘날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깨닫고,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컬러, 이를테면 공기색, 홍시색 등을 직접 명명하고 이를 화면에 담았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색은 대상에 담긴 뉘앙스까지도 포괄하기 때문에, 이러한 느낌을 온전히 전하기 위함이다. 이번 전시장에는 공기색, 벚꽃색, 유채꽃색, 와인색, 홍시색, 단풍색, 황금올리브색 등 박서보가 자연에서 화면으로 유인한 색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그는 회화를 통해 관람객에게 의도된 경험을 강요하거나 메시지를 던지는 대신, 반대로 보는 이의 스트레스를 흡수하고 흡인하고자 한다. 실제로 박서보는 자신의 작품을 ‘흡인지’라고 설명한다. 회화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컬러 묘법이 단순히 회화적 표현의 도구로 기능하지 않는 이유다. “21세기에는 치유의 예술이어야 한다. 보는 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 편안하게 해야 한다. 자연의 색채가 담긴 내 회화가 많은 이들을 치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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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묘법 작업의 인기가 더욱 치솟고 있는 데에는 박 화백이 더는 제작을 하지 않는 것도 한몫한다. 2018년 작가는 돌연 더는 기존 묘법 작업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가장 인기 있는 시리즈를 중단하는 배경을 두고 작가는 2019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더 가다간 하나의 양식화 속에 나 자신이 함몰되겠더라. 머지않아 그렇게 될 거란 예견이 들어 컬러작업을 그만뒀다. 끄적끄적하며 홀로 작업하겠다는 거다. 1년 동안 고작 다섯 점 그리더라도 그게 최선이니까.”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