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7.21 17:32
니키 드 생팔, 줄리 머레투, 쿠사마 야요이 등
여성 작가 대규모 개인전 앞다퉈 열려
‘현대 미술의 심장’ 뉴욕이 돌아왔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팬데믹 초반에는 흡사 유령 도시가 된 것 같았던 뉴욕이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가 “뉴욕주 100% 정상화 목표”를 공언한 지 2개월도 되지 않아 ‘잠들지 않는 도시’로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7월 현재 완연한 여름의 뉴욕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이에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 갤러리는 전시장의 문을 활짝 열고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대형 미술관들이 앞다퉈 여성 작가들의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지난해 ‘BLM(Black Lives Matter)’ ‘ALM(All Lives Matter)’ 운동 이후 다양성과 평등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더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멜팅팟’ 뉴욕 아트씬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세 전시를 소개한다.

─‘Niki de Saint Phalle: Structures for Life’, MoMA PS1
MoMA PS1의 야외 공원과 내부 전시장에서는 프랑스 여성 작가 니키 드 생 팔(Niki de Saint Phalle)의 대규모 개인전 ‘Structures for Life’가 열리고 있다. 조각, 소묘, 캔버스, 미디어 등 장르를 총망라한 20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돼 니키 드 생 팔의 선구적 행보를 조명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로 생긴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미술을 시작한 후 평생에 걸쳐 자기 치유적, 사회 참여적 작업을 지속해온 니키 드 생 팔.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첫 전시에 출품됐던 <Shooting Picture>(1961) 퍼포먼스 영상부터 대표작 <Nana> 시리즈 조각 수십 점, 작업 말년 20여 년간 열정을 다해 탄생시킨 야외 조각 공원 <Tarot Garden>(1974~1998)의 구상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 세계를 연대기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작가가 아들과 함께 펴낸 삽화책 ‘에이즈: 손을 잡는다고 걸리지는 않아요(AIDS: You Can’t Catch It Holding Hands)‘(1986)와 기후변화, 여성 인권 문제, 평등에 대한 글귀가 담긴 다수의 드로잉을 통해 그의 사회 참여적 면모를 엿볼 수도 있다. 작가의 아픈 과거를 강렬한 색감과 넘치는 에너지의 조각으로 승화시킨 <Nana>(젊은 여성을 뜻하는 프랑스어) 시리즈의 변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 또한 이번 전시만의 볼거리다. 작가의 미국 최초 대규모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9월 9일까지 열린다.

─‘Julie Mehretu’,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세계 미술계를 종횡무진하며 이주, 난민, 인종주의 등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해온 에티오피아계 미국인 작가 줄리 머레투(Julie Mehretu). 작가의 이번 전시는 ‘가장 미국적인 미술관’이라 불리는 휘트니 뮤지엄(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에서 열리는 ‘흑인, 성 소수자, 이민자 여성’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전시 개막 전부터 미국 미술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25년 작업을 총망라한 이번 전시에서는 1996년부터 현재까지 작가의 작업이 발전해온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30점의 캔버스 작품과 40점의 종이 드로잉, 과슈 작품이 전시장에 내걸렸다.

특히 대작들이 전시의 주를 이루는데, 그중에서도 머레투의 작품 세계를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대표작들도 포함돼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Epigraph, Damascus>(2016)는 시리아 내전 시기, 다마스쿠스에 위치한 건축물들을 정교한 밑그림으로 그린 후 그 위에 강렬한 검은색 추상 붓질을 더해 내전의 잔혹함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외에도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붙잡혀 부모들과 이별해야 했던 아이들의 사진들을 확대하고 흐리게 만든 후 에어브러시와 페인트로 레이어를 쌓아 왜곡하고 뒤틀린 화면으로 구성한 <Haka (and Riot)>(2019), 미국, 영국, 독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이민 운동에 비판의 메시지를 제기하며, 1세대 이민자들의 입국심사소였던 허드슨 강가의 ‘엘리스 아일랜드’를 바라보는 공간에 설치된 초대형 신작 <Ghosthymn (after the Raft)>(2019~2021) 등이 있다. 전시는 8월 8일까지 계속된다.

─‘Kusama: Cosmic Nature’, New York Botanical Garden
현대미술의 살아있는 전설, 쿠사마 야요이의 상상력을 30만 평에 달하는 식물원의 대지 위에 현실화한 꿈같은 전시. 쿠사마의 70년 작업 세계를 담아낸 전시가 뉴욕식물원(New York Botanical Garden)에 펼쳐지고 있다. 16세 때 그린 꽃 드로잉을 비롯해,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된 초대형 호박 조형물 <Dancing Pumpkin>(2020) 등 6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식물원의 넓게 펼쳐진 초록 잔디밭 한가운데 자리 잡은 샛노란 호박 조형물(Dancing Pumpkin)과 큰 떡갈나무 위에 붙여진 빨간 점박이(Polka Dots on the Trees) 그리고 흐르는 호수 위에서 빛을 반짝이며 유영하는 수많은 메탈 조각(Narcissus Garden)이 자연과 어우러져 합을 이루는 아름다운 대화는 이들 조각 사이를 걷고 즐기는 관람객의 경험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듯하다. 여름을 맞아 활짝 핀 아이리스, 튤립, 해바라기가 만발한 정원 속을 거니며 92세 거장의 ‘현재 진행형’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10월 31일까지 만날 수 있다.


◆김예지는 이화여대 사회학·미술사학 학사, 런던대 SOAS 미술사학 석사 졸업 후, 서울옥션 홍콩 경매팀과 글로벌 사업팀에서 근무하며 홍콩 경매, Artsy 경매, 나난 작가 개인전 등을 기획했다. 국내외 갤러리, 기관,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글로벌 현대 미술 시장에 대한 전문성을 쌓아온 그는 현재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현대 미술의 중심지 뉴욕에서 만나고 경험한 미술계 소식을 <아트조선>에 기고하고자 한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