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7.07 18:54
“NFT와 닮은꼴”… 1999~2000년 제작된 데이터베이스 페인팅 공개
13일까지 PKM갤러리
“NFT 아트 시장의 과열 현상이 저는 전혀 갑작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신용카드가 지폐를 대체한 것처럼 가상화폐도 이런 식으로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겁니다. 현재도 세상이 변혁해가는 과정일 뿐이죠. 예술은 혼자서 고립돼 창조되는 게 아니에요. 동시대와 함께 움직이는 거예요.”
NFT 아트 시장은 가상화폐 시장의 성장과 상관관계가 깊다. 가상 경제권이 기존 산업 가치를 뛰어넘었으며 실물경제와 함께 공생하는 이중경제권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NFT 아트는 뜨거운 감자다. 코디최(60)는 지난 5월 열린 아트바젤 홍콩에 NFT화한 작품 <Animal Totem–Stolen Data–Tiger #00>를 7만이더리움에 내놨는데 이는 당시 시세로 한화 1900억원 상당이었다. 터무니없는 가격, 그리고 이를 본 이들의 황당한 반응 모두 작가의 계획이었다. 가치와 가격이 꼭 일치하지만은 않은 오늘날 NFT 아트 시장을 꼬집기 위함이었다.
“가격과 가치는 전혀 다른 두 세계관입니다. 전쟁 통에는 기존 시장이 무너지고 가격을 책정할 수 없잖습니까. 쌀 한 포대 가격이 집 한 채 값일 수 있는 게 전쟁 중일 테니까요. 가격이 예측 불가하니 예외적 기회를 잡는 자들이 생겨나긴 하지만 그 가격은 가치와는 무관하단 말이죠. 가상화폐의 가격이 어떻게 될 거라곤 단언할 수 없지만 머지않아 가상화폐와 기축통화의 전쟁이 끝나고 평화협정을 맺게 될 거예요. NFT 아트 시장의 혼란한 가격에 매료될 것이 아니라, 디지털 아트 그 자체의 예술적 가치를 중심으로 봐야 할 시점입니다.”
코디최는 디지털 아트의 선구자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대를 앞선 통찰력으로 디지털 공간 내에서 데이터베이스의 축적과 확장, 중첩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고 융합되는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는 디지털 기술의 본질이 데이터 처리를 통한 새로운 가치 생성에 있음을 인식해 데이터의 축적과 확장을 통해 이미지 파일을 완성했다. 코디최가 디지털 아트 작업을 시작한 1999~2000년은 디지털파일이나 그 원본에 대한 개념이 전무하던 시절이다. 당시 그는 디지털 원본 작업과 최대한 비슷한 느낌과 효과를 내기 위해 이들 파일을 짜임이 굵은 그물망 캔버스에 작업을 출력해 전시장에 내걸었다. 이른바 ‘데이터베이스 페인팅(Database painting)’이의 시작이었다.
데이터베이스 페인팅의 시초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치원생 아들과 동물원에서 한껏 놀고 돌아왔는데 아들은 여전히 직접 본 호랑이에 대한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오늘 본 호랑이를 그려보겠다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때 아들이 사용한 프로그램은 ‘매직 3D 컬러링북’이었는데, 드로잉을 하는 게 아닌, 디지털 이미지 데이터들을 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었다. 아들은 눈으로 보고 온 호랑이를 컴퓨터로 재현한다고 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디지털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순간이었다.
“정작 아이는 상상 속 호랑이와는 전혀 다른 디지털 이미지에도 괴리감 없이 보고 온 호랑이와 자신이 만들어낸 ‘모니터 속 호랑이’를 동일시하며 신나하더라는 겁니다. 이때였어요. 앞으로의 모든 창조의 근원은 데이터베이스에서 시작할 것이며, 그곳으로부터 어떻게 확장되고 증폭되느냐에 좌우될 것이라는 걸.”
1997년 봄, 코디최는 ‘다가올 21세기의 창작이란 상상력보다는 데이터를 근원으로 할 것’이라고 깨달았다. 그 후, 작업에 착수하기 위해, 아들이 사용했던 그 프로그램을 해킹해 디지털 이미지 데이터를 얻었지만 너무 작아 쓸 수 없어 이들 이미지의 바이트(Byte)를 증폭시키는 데 1년을 꼬박 쏟았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사리 얻은 증폭된 이미지들을 수백 개의 이미지 데이터로 발전시켰다. “저는 이를 ‘창조 데이터’라고 명명했는데, 쉽게 말하자면 데이터베이스 페인팅을 제작할 수 있는 ‘나만의 물감’을 만든 셈이었어요. 여기까지의 과정을 현시점에서 설명하자면 2008년 등장한 블록체인 기법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죠.”
코디최 개인전 ‘1999 코디 최 + NFT’가 13일까지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1999~2000년 작업하고 최근 NFT화한 데이터베이스 페인팅의 원본 디지털 파일, 디지털 파일의 원본성에 대한 논의가 공론화되기 한참 전인 당시, 전시를 위해 그물망 캔버스에 대형 프린트로 제작했던 실물 작품들을 다시 공개한다. ‘디지털 문화 창조’라는 시대를 앞선 개념의 행위적 실천의 결과물로서 관람객에게 NFT 아트에 대한 고찰을 제시한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전시 기간이 짧은 편인데, 팝업 형식으로라도 발 빠르게 보여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 마련된 전시다. 20여 년 전 처음 시작된 작품을 오늘날 관점에서 보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고려대학교에서 사회학을, 미국 아트센터디자인대학에서 디자인과 순수미술을 전공했으며, 1990년대 중반 뉴욕 다이치 프로젝트 개인전, 1996년 프랑스 마르세유 현대미술관 개관 기념 그룹전 등으로 일찍이 국제적 작가로서 명성을 다졌다. 그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저명한 미술사학자 존 C. 웰치맨의 기획으로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 마르세유 현대미술관, 독일 켐니츠 미술관에서 순회 회고전을 개최했으며, 2017년에는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선정됐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뉴욕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그가 집필한 현대문화 전문 비평서 ‘20세기 문화 지형도’(2006), ‘동시대 문화 지형도’(2010) 등은 국내 미술문화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피터 핼리, 마이크 켈리, 로버트 로젠블럼, 존 C. 웰치맨 등 서구 유명 미술인들의 개인 컬렉션에 그의 초기 데이터베이스 페인팅이 소장돼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