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찾은 ‘기분 나쁜 희미함’… 민병헌 사진 신작 공개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1.06.01 18:12

대규모 개인전 ‘황홀지경: 민병헌, 사진하다’
6월 25일까지 포스코미술관

길, RW065, BHM2011 ⓒBYUNGHUNMIN /포스코미술관
 
“남들 보기엔 똑같이 뿌옇게만 보일 수 있겠지만 내게는 좀 달랐다. ‘이건 뭐지’하는 느낌의 톤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더욱 높은 곳에 올랐다. 안개도 비도 눈도 아닌 살짝 불쾌한 어렴풋함 속에 <길> 시리즈만의 희미함을 찾아냈다.”
 
사진작가 민병헌은 각 연작마다 서로 다른 ‘희미함’을 찾아 헤맨다. 신작 <길>은 2010년 무렵부터 시작, 최근 다시 촬영을 재개해 이어오고 있는 시리즈다. 그가 <길>에서 발견한 희미함은 ‘기분 나쁜 희미함(hazy)’이다. 하늘은 맑지만 먼지가 많아 희뿌연 날에만 느낄 수 있는 유쾌하지 않은 희미함이다. 작가는 일부러 산세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바라보며 이 불쾌한 희미함을 마주했다. 
 
남녘유람, ST095, BHM2020 ⓒBYUNGHUNMIN /포스코미술관
 
또 다른 신작 <남녘유람>은 2020년부터 시작한 최근 작업 중 하나로, 그가 지금껏 고집해왔던 극단의 광선을 과감히 버리고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한 광선으로 포착한 사진이다. 작가의 이러한 작업 변화는 그의 심경과 감상과도 연결된다. “과거를 회상해보면 굉장히 날카롭고 작업에도 집착이 강했다. 사진뿐만 아니라 일상도 까칠했다.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다. 내 자신이나 남을 대할 때에도 편안하고 여유롭고 싶은 마음이다. 관대해지고 싶다고나 할까. 이런 변화는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예전에 비해 조금은 더 편안해진 마음과 시선으로 바라본 자연을 담아낸 이번 신작<남녁유람>에는 ‘남녘’을 물리적 장소가 아닌, 따뜻한 마음의 상징으로 해석해주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 “해가 쨍하든, 눈이 오든 상관없이 ‘마음의 남녘’을 바라보길 바란다.” 
 
Nude, BHM1998 ⓒBYUNGHUNMIN /포스코미술관
 
민병헌 개인전 ‘황홀지경- 민병헌, 사진하다’가 서울 대치4동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린다. 지난 40여 년간 흑백 사진만을 고수해온 작가의 신작 <남녘유람> <길> 시리즈를 비롯해 지난해 첫선을 보인 연작 <새>의 완결작과 과거 시리즈 중 미공개작을 함께 펼쳐낸다. 특히 인기 대표작 <누드> <Snowland> <꽃> 시리즈 중 미공개작도 같이 내걸려 팬심을 설레게 한다. 고유의 감성으로 발견한 아름다움을 포착한 작품을 통해 탐미주의자 민병헌이 완성한 흑백사진의 진가를 제대로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새, TB079, BHM2015(T.P.)2019(P.) ⓒBYUNGHUNMIN /포스코미술관
 
민병헌은 폭포, 설원, 잡초, 안개 등 자연을 피사체로 삼아왔다. 잔잔한 안개 낀 새벽에 풀들이 기어 올라오는 모습 같이 지천에 널리거나 혹은 쉽게 지나칠 법한 풍경을 담아 아렴풋한 모노톤, 이른바 ‘민병헌 그레이(Gray)’라는 독자적인 톤을 구현해 국내외에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시카고 현대사진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산타바바라 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과 파운데이션 등에 작품이 소장되는 등 해외에서의 입지도 견고하다.
 
고군산도, BHM2021 ⓒBYUNGHUNMIN /포스코미술관
 
찍는 것이 아닌, ‘사진하다’란 동사로써 사진을 정의 내리곤 하는 민병헌의 작업을 두고 ‘수묵화 같은 사진’으로 불리며, 그만의 ‘희미함’으로 유일무이한 스트레이트 사진의 대가로 일컫는다. 전북 군산에 터전을 잡으며 섬세하고 예민했던 그의 삶과 예술 세계에는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관대함이 깃든 신작 등을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25일까지 이어진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