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5.31 19:01
마크 테토 TCK인베스트먼트 공동대표이사
글로벌 상위 미술품 컬렉터의 데이터를 보유한 ‘래리스 리스트(Larry’s List)‘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컬렉터를 보유한 나라는 미국, 독일, 영국, 중국 순이고, 도시로는 뉴욕이 그 수가 가장 많으며, 런던, 상파울루가 그 뒤를 잇는 것으로 집계됐다. 컬렉터의 평균 연령은 59세, 또한 71%가 남성 컬렉터이며, 중국과 개발도상국의 컬렉터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컬렉터 수가 중요한 이유는 컬렉션의 증가가 향후 사립 미술관의 증가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를 통해 더욱 많은 이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됨은 물론이다. 또한 컬렉션은 작가들의 작업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컬렉터에 따라서는 차세대 슈퍼스타 예술가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컬렉터의 역할은 비단 개인적인 향유만을 위함은 아닌 것이다.
예술을 향유하는 방법엔 무엇이 있으며 소유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술 컬렉션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오늘날, 경험도 경력도 배경도 세대도 각기 다른 컬렉터들을 만나 컬렉터로서의 삶과 예술에 대한 생각, 그리고 컬렉션이 삶에 선사하는 의미에 대해 들어보고자 한다.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것은 인생을 덤으로 사는 것과 같다. 언어, 문화, 역사도 다른 곳에서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가는 동안 새로움에 대한 발견은 인생의 선물이지 않을까. 한국에서 10년째 생활하고 있는 마크 테토(Mark Tetto) TCK인베스트먼트 공동대표이사. 그는 본래 뉴욕 월가의 한 투자은행을 다니다 한국 대기업에 들어오게 돼 지금까지 한국에서 줄곧 살고 있다. 대중에게는 몇 년 전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그는 처음 한국에 와서 북적한 강남의 풍경과 맛있는 음식, 다이내믹한 분위기, 에너지 넘치는 문화에 반했다면, 2015년 북촌의 한옥으로 이사하면서부터는 한국의 또 다른 면모에 빠지게 됐다. 한옥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 모습이 너무도 예뻐서 한옥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그야말로 한국의 문화유산과도 같은 북촌에 위대함을 느낄 정도였다. 이렇듯 섬세한 눈과 감각을 지닌 테토는 실제 아트 컬렉터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고미술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고유의 철학이 담긴 컬렉션을 이어오며, 한국 문화예술계와 친분을 다져오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미술품의 매력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10년이면 오랜 시간이다. 한국과 한국의 문화예술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뉴욕에 살았을 때도 두 달에 한 번씩 박물관이나 미술관 작품을 관람하곤 했다. 당시에는 가벼운 취미 생활 정도로 즐겼다. 화학을 전공했고 미술은 배워본 적 없는 문외한이었지만 문화생활로서의 미술은 재밌더라. 처음 한국에 와서 든 생각은 한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를 배워야겠다는 거였다. 첫 5년은 강남에서 지냈다. 한국 친구들과 교류하며 한국어도 배우고, 특히 한국 음식과 젊은 세대의 놀이 문화를 많이 경험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경복궁, 남산 등 관광명소도 둘러보며 본격적인 한국 전통문화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이맘때쯤 강북으로 회사를 옮기고 한옥으로 이사를 오며 생활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고미술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고미술 컬렉션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한옥에 살며 한국 전통 문화와 미술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 이사를 왔을 당시에는 빈집이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가구를 들이려니 영 어울리지 않아 어떻게 꾸며야할지 한옥 인테리어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조선시대 고가구가 잘 어울리겠다 싶어서 인사동의 고가구 상점을 둘러보며 배워갔던 기억이다. 그렇게 구입한 18~19세기 제작된 책장과 먹감나무 반닫이가 나의 첫 컬렉션이었다.
한옥에서 생활하다보면 한옥의 아름다움을 우연히 발견할 때가 있다. 특히 장인이 만든 미묘한 패턴의 기와는 볼 때마다 새롭다. 기와의 종류, 형태 등을 보면 기와는 단순히 건축 재료가 아니라 예술 그 자체라고 느껴진다. 한지도 나의 또 다른 관심사 중 하나다. 창에 아름답게 비치는 햇빛을 보다 문득 한지에 대해 궁금해졌는데, 한지에 대해 알아갈수록 한지를 이용한 현대 미술품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집을 꾸미는 과정에서 고려시대 항아리나 신라시대 토기에 대해 알게 되면서 관심 분야는 더욱 확장돼 갔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모티브와도 같은 패턴을 활용하는 현대 미술가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며 자연스레 고미술에서 한국 현대미술품까지도 눈길이 가게 됐다.”

─현대 사회에서 한옥에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한옥이 나를 변하게 했다. 아파트나 모던한 집과는 달리, 창도 문처럼 여닫고 외출할라치면 집단속에 시간이 걸린다. 정신없이 살던 나는 오히려 한옥에서 지내면서 ‘맑은 정신으로 천천히 살아보자’라는 명상의 느낌, 마음의 여백이 생겼다. 복잡한 라이프스타일보다는 여유를 갖고 즐길 줄 아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아침에 눈을 뜨면 김희원 작가의 작품이 바로 보인다. 눈앞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좋은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을 들일 때면, 그 작품이 어떤 자리에서 나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한옥, 고미술, 고가구, 현대미술 등 애정하는 분야도 다양한데,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여백의 아름다움이다. 이를테면 한옥은 화려함보다는 여백의 미(美)가 중요한 공간이다. 한옥으로 이사했을 때, 채 가구를 들여놓지 못해 썰렁했다. 그때 손님이 왔는데 나는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손님은 오히려 비어 있는 게 훨씬 예쁘다고 하더라. 한옥에서 생활하며 여백이란 것을 몸소 경험하게 된 것 같다. 한국 현대미술품도 마찬가지다. 구본창의 작품에도 여백의 미가 느껴졌고, 박서보 작품에서도 같은 것을 발견했다.
또한, 인공미보다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잘 어울린다. 한옥에서는 대들보가 매끈한 느낌보다는 커브도 있고, 크랙도 있다. 이 자연스러운 느낌을 보면, 일본의 잘 다듬어진 미니멀리즘과는 느낌이 다른 여백과 자연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다.
본래의 나무 모양을 유지하는 것을 자연스러움이나 절제라고도 할 수 있을 거 같다. 이는 고궁의 정원에서도 보인다. 예를 들면 창덕궁의 비원에서는 숲의 자연을 그대로 즐길 수 있지 않나. 가끔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은 이를 혼란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정원이라고 했는데, 왜 숲이 있느냐면서. 그러나 한국의 정원은 자연 그대로를 살려 즐기지 않나. 한국 현대미술도 같은 지점을 공유한다. 있는 그대로를 추구하면서 왠지 모르게 따뜻함이 느껴지는 대목이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컬렉션은 자금이 많아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좀 더 손쉽게 컬렉션을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컬렉션을 단순히 투자적 관점에서 접근해 앞으로 크게 오를 아티스트가 누구인지 많이들 궁금해 하지만, 작품 수집을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또한 우연히 한옥으로 이사 오면서 컬렉션을 시작하게 된 것처럼 생활의 가까운 곳에서부터 예술과 함께하는 삶을 얼마든지 추구할 수 있다.
집을 둘러보며 저 벽에는 무엇이 필요할지를 고민해볼 수 있다. 한 곳 한 곳을 채우는 재미를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작품이 집에 ‘입주’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입주해 나의 스토리가 있는 공간에 같이 살게 되는 셈이다. 좋은 에너지를 지닌 유쾌한 작품을 찾아 같이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컬렉션을 할 때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면.
“예술품이란 매일 바라보며 내게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존재다. 그러한 가치가 가장 우선시된다. 특히 작품과 나와의 관계, 작품의 스토리가 중요하다.”

─작품 수집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초심자에게 미술품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집 현관에 고미술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사람들이 무섭지 않느냐고 하더라. 그러나 이 초상화는 내게 모나리자 부럽지 않은 멋진 작품이다. 초상화 속 주인공이라는 건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뜻이지 않나. 그래서 대체 이 사람이 누구일까 더욱 궁금해졌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그림자나 입체적인 기법을 쓰지 않았다고 하는데, 최용신이라는 화가가 서양식 기법과 같은 그림자를 있는 입체적인 기술로 표현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이용했더니 비슷한 인물까진 찾았는데, 기법이 다른 거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프로그램을 돌려봤더니 얼굴이 좀 더 비슷한 결과물이 나왔다. 젊은 모습과 나이 들었을 때의 모습이었던 거다. 저 그림은 최용신이 그린 이덕응의 초상화로 보인다. 인스타그램에 초상화를 올려 많은 이들에게 누구의 초상인 것 같으냐고 물어도 봤다. 만약에 이러한 추론이 맞는다면 이 작품은 문화재일 거다. 다들 서양미술품은 대단한 걸로 생각하는데, 우리 한국 미술품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지 참으로 아쉽다. 나한테는 모나리자와도 같이 귀한 이 초상화의 의미를 소셜미디어로 공유하고 나눴던 기억이다.”
─현재 한국에서 ‘문화패트론’으로써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그 동력은 무엇인가.
“고미술품을 모으면서 한국 문화를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문화예술품을 잠시 위탁받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아티스트들의 얘기를 들으면 그들이 얼마나 귀한 노력 속에 작품을 탄생시키는지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작품의 매력을 더욱 많은 이들과 공유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컬렉션의 철학이자 미션이다. 한국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고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많은 사람에게 미술품의 숨은 면모를 발견하게끔 해주고 싶다.”

─컬렉션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을 꼽는다면.
“고미술품과 현대미술품 각 한 점씩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 작품인데, 경매장에서 그 초상과 눈빛이 마주쳤을 때 무언가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현대미술품으로는 구본창의 달항아리 사진을 꼽고 싶다.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동시에 보는 나도 마음에 여유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 달항아리는 해외에 유출된 것으로, 작가가 이를 사진으로 기록해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한 데 의의가 있다.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하얀 바탕에 찍힌 검은 점이 꼭 마를린 먼로의 점 같이 느껴진다. 때론 소중한 사람의 초상화 같기도 하다.”

인터뷰 말미에 테토는 가장 최근에 ‘입주’했다는 작품을 공개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향한 애정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컬렉션 철학은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그의 일상 속에 입주한 예술품이 문화와 예술을 찾아 살아가는 그의 공간을 채워간다. 컬렉션을 감상하며 문화 지킴이로서 그가 알게 된 지식과 흥미로운 스토리를 대중들과 나눔으로 더 넓은 관계망으로 귀결하는 ‘관계의 미학’을 통해 마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컬렉션 스토리를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 가는 중이다.

◆김율희는 소더비 인스티튜트 한국 대표·겸임 교수로, 국내 최초 글로벌 아트페어 '어포 더블 아트 페어'를 론칭하고 한국 지사장을 맡아 누구나 예술을 소유할 수 있는 예술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 미술 애호가 양성을 위해 다양한 예술 분야와 교육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해 기획한 소더비의 첫 한국어 하이브리드 과정은 소더비의 프리미엄 온라인 커리큘럼의 국제적 확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