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5.23 07:30
[민은주 포도뮤지엄 운영총괄]
공감과 공존에 대한 고민 담은
인터렉티브 전시 ‘너와 내가 만든 세상’,
‘케테콜비츠-아가, 봄이 왔다’ 등 대규모 개관전 개막
제주도는 ‘문화예술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술관, 박물관, 유명 건축가의 건물 등 섬 곳곳에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4월 서귀포시 안덕면에 개관한 ‘포도뮤지엄(PODO Museum)’은 기존 미술관이나 박물관과는 차별화되는 색다른 문화적 체험 제공을 목표로, SK㈜ 자회사인 휘찬에서 설립한 다목적 문화공간이다. 현대 사회는 함께 살아가는 방법, 즉 공감과 공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미술품을 단순히 전시하는 구조에서 더 나아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공간으로 꾸려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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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뮤지엄은 우리 삶뿐만 아니라, 환경 등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공감과 공존의 시각에서 관찰하고 연구할 예정입니다.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묵직한 주제들을 관람객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플랫폼 역할을 하겠습니다.” 민은주 포도뮤지엄 운영총괄을 만나 제주도의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 잡을 포도뮤지엄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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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뮤지엄의 ‘포도’는 어디서 따 온 것인지 궁금하다.
“뮤지엄 운영사 휘찬은 포도호텔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뮤지엄 근처에 위치한 포도호텔과 브랜드를 연계하기 위해 포도뮤지엄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하게 됐다. 건축가 이타미준이 설계한 동글동글한 건축물이 포도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포도는 역사적으로 풍성함, 다양함, 번영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뮤지엄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스토리가 포도처럼 알알이 모여 관람객과 함께 결실을 이뤄가는 모습을 그리며 짓게 됐다.”
─전시 공간만 400평이 넘는 만큼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데, 포도뮤지엄의 각 공간과 특색을 짚어준다면.
“제1전시실부터 제3전시실까지 있으며, 1층과 2층 사이에는 메자닌 공간이 마련돼 강연, 클래스 등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또한, 건물 중간에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중정과 뒤뜰이 있는데, 미니 콘서트와 같은 소규모의 야외 공연을 이곳에서 열 계획이다. 이외에도 1층에 위치한 자료실에서는 관람객이 여러 아트북을 직접 살펴볼 수 있도록 꾸려놨다. 포도뮤지엄은 자연경관에 둘러싸여 있어서 1층 카페에서 쉬며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사진 찍는 관람객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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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개관전으로 ‘너와 내가 만든 세상-제주전’이 열리고 있다. 첫 전시로 기획하게 된 배경은.
“지난해 티앤씨재단이 서울에서 개최했던 전시를 개관전으로 초청한 것으로, 포도뮤지엄의 공간과 개관전이란 특별한 의미에 걸맞도록 전시 규모를 확장하는 등 새롭게 기획해 선보인다. 티앤씨재단은 교육불평등과 사각지대 청소년을 위해 장학, 교육, 복지 사업을 운영하는 비영리 재단이다. 이번 전시는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란 뜻의 ‘아포브(Another Point of View)’라는 티앤씨재단의 프로젝트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전시 취지가 포도뮤지엄의 방향성과 부합해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를 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 위촉해 이번 개관전이 마련된 것이다.
비뚤어진 공감의 해악성을 돌아보며 진정한 공감의 의미를 되짚어보기 위해 기획된 전시다. 가짜뉴스 등에 의해 한쪽으로 치우친 선택적 공감이 많은 이들을 서로 적대시키고 혐오를 증폭한다는 사실에 주목, 역사 속에서 실제 일어났던 혐오 사건 등을 토대로 전시를 구성했다. 비뚤어진 공감이 만드는 혐오 사회를 고민하고, 타인에 대한 포용과 공감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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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만든 세상-제주전’에서 눈여겨봐야 할 출품작을 꼽는다면.
“강애란, 권용주, 성립, 이용백, 진기종, 최수진, 쿠와쿠보 료타, 장샤오강 등 한국, 중국, 일본 작가 8인이 참여했다. 또한,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가 직접 기획하고 작업한 5개의 테마공간도 함께 구성된다. 특히 전시 주제를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테마공간은 인피티니 미러, 볼록 렌즈, 디지털 인터렉티브, 기록과 같은 다양한 미디어 기법을 활용해 전시 주제를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했다.
전시는 인피니티 미러 속에 앉아 끝없이 소문을 옮기는 붉은 앵무새가 모인 <Us & Them>에서 시작해, 수백 년에 걸쳐 실제로 널리 믿어졌던 가짜뉴스가 사운드로 들리는 <소문의 벽>으로 이어진다. 이용백 작가의 <브로큰 미러 2011>가 걸린 붉은 방으로 들어서면, 갑자기 날아온 총알에 산산이 조각나는 거울을 마주하며 눈 앞에 펼쳐진 세상과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수백 장의 인물 드로잉이 설치된 성립 작가의 <익명의 초상들, 익명의 장면들, 스치는 익명의 사람들>은 개인이 군중 속으로 들어가 익명으로 존재할 때 쉽게 집단화가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테마공간 <비뚤어진 공감>과 <패닉부스>는 관람객의 인증샷이 가장 많이 올라오는 작품이다. 디지털 인터렉티브 작품인 <비뚤어진 공감>은 여러 가지 언어로 수집된 혐오 표현들을 프로젝터를 통해 전시장 바닥에 투영하는 작품으로, 관람객이 이 글씨 위로 올라서면 벽에 비추는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는데, 그림자 안에는 바닥에서 보았던 혐오 표현들이 들어있다. 연이어 <패닉부스>에 들어가면 되풀이돼 온 혐오와 폭력의 역사가 남의 일이나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우리의 역사이며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일임을 체감할 수 있다.
쿠와쿠보 료타 작가의 <로스트 #13>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의 생활용품 주변으로 조명 달린 작은 기차가 지나가며 벽에 큰 그림자를 구현해낸다. 아주 익숙한 일상의 사물들이 실제와 다르게 왜곡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일상의 오해와 편견이 아주 작은 지점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상기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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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주 작가의 <계단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 <두 사람> <매달린 사람들> 최수진 작가의 <벌레먹은 숲> 장샤오강 작가의 <기억의 서랍>은 큰 공간 안에서 동시에 등장해 묵직한 울림을 자아낸다. 공장처럼 혐오 표현을 생산하는 가해자이자 혐오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피해자가 된 모습들, 편견과 혐오 표현으로 상처받은 현대인의 자화상, 거대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 무력하게 스러져갔지만 소중했던 개개인의 기억, 그리고 누적돼 가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마주하며 숙연해지기도 한다.
전시 말미에는 역사 속 혐오 사건을 기록으로 모은 <달의 어두운 면>과 함께 강애란 작가의 <숙고의 방> 진기종 작가의 <우리와 그들>로 이어진다. <숙고의 방>에는 분열과 혐오의 역사에 맞서 싸운 의인들이 스토리가 스스로 빛을 발하는 책으로 설치돼 있다. 고통과 비극 속에서도 기꺼이 희생하며 용서하기 위해 노력한 이들의 실제 이야기를 통해 인류에게 화합의 희망이 있음을 전한다. 아울러, 세 가지 종교가 비슷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거대한 설치작품으로 보여주는 <우리와 그들>에서는 세계사와 현대 사회 속에서 종교로 인한 갈등과 분열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았음’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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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전과 함께 ‘케테콜비츠-아가, 봄이 왔다’전이 동시 개최되고 있다.
“케테 콜비츠는 1, 2차 세계대전 시기에 활동했던 독일 작가로, 의사인 남편과 함께 가난한 노동자지구에서 생활하며 노동자와 하층민의 현실을 대변했다. 질병, 노동, 실직과 같은 사회문제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으며 노동자, 농민, 군인 같은 억압받는 민중의 모습을 꾸밈없이 표현해 사회 현실을 고발했다. 또한, 그는 세계대전에서 아들과 손자를 잃으면서, 전쟁으로 자녀를 잃은 모든 어머니를 대변해 반전 포스터를 제작하고 예술활동을 통해 전쟁의 광기와 참혹함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이번 전시에는 자화상과 모성애, 전쟁과 죽음, 노동자의 삶을 보여주는 32점의 판화와 청동 조각 1점이 전시됐다. 케테 콜비츠의 삶과 작품은 개관전 ‘너와 내가 만든 세상-제주전’에서 보여주는 혐오의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전쟁이 부른 참혹한 역사를 토대로, 증오와 불평등에 맞서 ‘타인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임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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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포도뮤지엄은 어떻게 운영될 계획인가.
“포도뮤지엄은 ‘생각하는 공간’으로서,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많은 사회 문제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사회, 환경, 미래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시를 포함해 다양한 예술 형태로 구현하고 많은 관람객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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