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irst Collection①] “컬렉션은 문화를 창조, 예술이 주는 행복한 삶”

  • 김율희 소더비인스티튜트 대표, 에디팅=윤다함 기자

입력 : 2021.05.12 16:51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한국메세나협회장

 
글로벌 상위 미술품 컬렉터의 데이터를 보유한 ‘래리스 리스트(Larry’s List)‘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컬렉터를 보유한 나라는 미국, 독일, 영국, 중국 순이고, 도시로는 뉴욕이 그 수가 가장 많으며, 런던, 상파울루가 그 뒤를 잇는 것으로 집계됐다. 컬렉터의 평균 연령은 59세, 또한 71%가 남성 컬렉터이며, 중국과 개발도상국의 컬렉터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컬렉터 수가 중요한 이유는 컬렉션의 증가가 향후 사립 미술관의 증가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를 통해 더욱 많은 이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됨은 물론이다. 또한 컬렉션은 작가들의 작업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컬렉터에 따라서는 차세대 슈퍼스타 예술가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컬렉터의 역할은 비단 개인적인 향유만을 위함은 아닌 것이다. 
 
예술을 향유하는 방법엔 무엇이 있으며 소유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술 컬렉션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오늘날, 경험도 경력도 배경도 세대도 각기 다른 컬렉터들을 만나 컬렉터로서의 삶과 예술에 대한 생각, 그리고 컬렉션이 삶에 선사하는 의미에 대해 들어보고자 한다.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한국메세나협회장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국가 문화의 발전 토대이자 국민의 문화적 향유를 돕기 위해 기업과 문화예술 조직을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한국메세나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벽산엔지니어링 김희근 회장의 사무실은 수십 년간 모아온 삶의 스토리가 담긴 애장품들로 전시돼 있다. 그 무엇보다 이 미술품들이 값지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유명해서만이 아닌, 하나하나 사연이 담긴 작품들을 나눔으로써 임직원들의 일상 속 예술품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빛이 나는 까닭일 것이다. 
 
“문화는 교양과 배려가 포함된 생활 수준의 척도이며, 나아가 국가와 국민을 알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국가의 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제일 좋은 방법은 음악과 미술을 통해 교양을 향상하는 것이란 생각에 예술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고 문화예술을 애호하는 미션을 수행하게 됐죠.”
 
김희근 회장의 컬렉션 전경.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수집해온 작품들이 벽산엔지니어링 사옥 곳곳에 걸려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김 회장이 가장 최근 구입한 카드보드를 만드는 몰드 형상의 부조 작품. 유쾌한 아이디어에 매료돼 바로 구매했다고 한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30여 년간 미술이 선사하는 특별한 행복에 매료돼 지금까지 1000점 넘는 작품을 소장해온 김희근 회장의 ‘특별함(something different)’을 찾기 위한 여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예술을 향한 그의 유별난 사랑은 예술 후원 활성화를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나무포럼 회장, 세종솔로이스츠 이사장,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장, 국립현대미술관회 회장,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조직위원 외에도 최근에는 한국 메세나 협회 회장직까지 겸하며, 문화 예술계의 오랜 친구이자 강력한 서포터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작품을 소중히 여기는 삶과 예술을 통해 만난 인연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예술이 나눌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걸어가는 김 회장의 특별한 나눔 정신이다.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백남준의 명작이나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이 사무 공간에 걸려 임직원의 일상에 녹아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10년 전 수집한 작품부터 30년 전 수집한 작품, 한 달 전 구입한 작품까지도 늘 김 회장의 삶에 자리하고 있다. 
 
김희근 회장의 컬렉션 전경.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수집해온 작품들이 벽산엔지니어링 사옥 곳곳에 걸려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김희근 회장의 컬렉션 전경.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수집해온 작품들이 벽산엔지니어링 사옥 곳곳에 걸려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언제부터 컬렉션을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문화는 교양과 배려가 포함된 예술의 척도라고 생각하고 국가와 국민의 차원을 대표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미션이 생겨났다. 어린 시절부터 우표를 수집해 왔으며 실제로도 작품은 나의 수많은 컬렉션 중 하나다. 다양한 것을 수집하는 습관이 있어서 벼룩시장에 가 와인 잔이나 커피잔 따위를 구입하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구입한 작품은 무엇인가.
 
“1985년 즈음부터 몇몇 친구들과 인사동에서 갤러리 투어를 하면서 200만원 작품을 구입한 것이 첫 컬렉션의 시작이었다. 당시에는 한국 작가에 큰 흥미가 없었다. 당시 한국 미술씬을 떠올려보자면, 1930~1940년대 국내 유명 작가들의 작품 구매가 많이 이뤄지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런 작품들이 내겐 그다지 어필되지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 난생 처음 구입한 작품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의 십자가 작품인 <Crucifixion>이었는데, 단순한 획과 함께 녹색과 브라운 색상의 조화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여전히 집에 걸려 있는 작품이다. 주로 밝고 다채로운 컬러의 독특한 작품을 좋아한다.”
 
─수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좋아하는 작품은 매일 변하지만 그중에서도 올라퍼 앨리아슨(Olafur Eliasson)의 글래스 작품을 아낀다. 2년 전 커미션으로 구입했고 현재는 집 응접실에 있다. 엠버 컬러로 거실 소파와 아주 잘 어울린다.”
 
김회근 회장이 아트바젤에서 구입한 김명범의 ‘Untitled’(2014)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작품은 주로 어디에서 접하고 구입하나.
 
“스위스 바젤과 베네치아비엔날레에 가면 국제 미술계의 트렌드를 알 수 있다. 잘 팔리는 작품보다도 어떤 작품이 각 나라의 프라이드로서 역할을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아트페어에 열심히 참석하는 이유는 내가 키아프 등 아트페어의 보드 멤버인 것도 있지만, 문화 예술계의 트렌드를 알 수 있고 각 나라의 문화 예술 자긍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트마켓은 유기적이고 훨씬 생동감 있게 변화한다. 최근에는 회화와 같은 전통적인 영역 외에도 조각과 퍼포먼스와 같은 믹스미디어, 필름, 뮤직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고 흥미를 돋는 작품이 시장에서 반응이 좋더라.
 
아트바젤에서 작품을 구입할 때면 꼭 큐레이터와 컨설턴트들의 도움말을 먼저 구하는 편이다. 이들은 아트페어의 수많은 부스 중 꼭 들려야 하는 갤러리와 만나봐야 하는 작품들에  제안을 주곤 한다. 특히 아트바젤은 작품 판매에 올인하기보다는 퍼포먼스와 뉴 아티스트, 뉴 갤러리들의 솔로쇼 등 다양한 기획을 선보이지 않나. 그야말로 최고의 아트 월드 전문가들의 기획력을 엿볼 수 있고 일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는 장(場)이다. 우리도 아트바젤과 같은 이러한 국제적인 아트페어를 통해 이들의 발전적인 점을 많이 보고 배워야 함을 느낀다. 선진문화를 한국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김희근 회장의 컬렉션 전경.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수집해온 작품들이 벽산엔지니어링 사옥 곳곳에 걸려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좋은 작품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그러한 기준은 먼저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의 취향이 같을 수 없으며 좋은 작품, 나쁜 작품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으로는 가격이 말을 해줄 수도 있겠지만 또 그렇다고 항상 가격과 예술성이 정비례하는 것도 아니지 않던가.”
 
─컬렉션의 목적과 매력은 무엇인가. 
 
“모임이 있을 때면 그 모임의 성격에 맞춰 와인을 준비하는데, 곧 있을 자리에 1995년 생산된 ‘Château Latour’란 와인을 가져갈 생각이다. 이렇게 26년이나 된 빈티지 와인은 일반 와인숍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한 와인이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각 작품은 고유의 개성과 소중함을 지닌다. 그렇게 한 점 한 점 모으다 보면 그중에서 어떤 작품을 선택해 어떻게 걸고 감상할 것인지 고민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김희근 회장의 컬렉션 전경.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수집해온 작품들이 벽산엔지니어링 사옥 곳곳에 걸려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작품 수집을 시작하려는 초심자에게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조언해준다면.
 
“작가들 역시 나이를 들어가며 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찾아가는 것 같다. 나이 50세가 넘는 작가라면 작품이 무르익었을 확률이 높은 이유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도 작품도 성숙해지고 완성도도 높아지는 것은 같더라. 특출난 몇몇 천재 작가를 제하고, 만약 아직 미술에 대해 잘 모른다면 50세가 넘은 작가의 작품을 위주로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또한, 매해 작품 구매에 얼마를 쓸지 예산을 미리 정해놓고 그 안에서 구입하려고 하며, 특히 작품을 구매하는 타이밍을 중요하게 여긴다. 물론 작품이 걸릴 공간을 고려해야 함은 물론이다. 보통은 회사 복도의 넓고 큰 벽면을 활용해 100~200호 대작을 즐겨 내건다. 이런 큰 작품을 사무실과 같은 방 안에 두면 그림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컬렉팅은 할 수 있을 때, 또한 젊었을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끔 젊은 세대들이 억대 작품을 논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컬렉팅은 자신의 현실과 상황에 맞춰 삶의 일부로 가야지, 허황되게 흘러가면 안 된다. 컬렉션은 문화이자 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며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차근차근 공부하며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작품을 수집해야 할 것이다. 비싸다고 마냥 좋은 것이 아니며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김희근 회장의 컬렉션 전경.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수집해온 작품들이 벽산엔지니어링 사옥 곳곳에 걸려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본인에게 현대 미술은 어떤 의미인지.
 
“내게 컨템포러리 아트란 단순함과 즐거움을 의미한다. 예술 세계라 함은 굳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자연스레 느껴지고 다가오는 즐거운 감상이 아닐까. 예술 작품 컬렉션은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작가들도 많이 만나고, 다른 컬렉터들과도 자주 교류하며 예술이 함께하는 삶이 주는 행복감을 더욱 많은 이들이 느끼길 바란다. 함께 나누는 것 자체가 예술이라고 믿는다.”
 
김희근 회장의 컬렉션 전경.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수집해온 작품들이 벽산엔지니어링 사옥 곳곳에 걸려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김 회장은 세계 시장을 바라보며 단순히 해외 문화의 기념물을 보는 것이 아닌, 그들이 어떻게 문화를 만들고 이해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모은 귀중한 컬렉션을 많은 이들에게 공개하며, 함께 누림을 통해 더 큰 즐거움이 있는 삶을 몸소 보여주는 이상적인 컬렉터 김 회장의 컬렉션 철학은 인생, 사랑, 행복 그리고 나눔이다.
 
김희근 회장의 컬렉션 전경.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수집해온 작품들이 벽산엔지니어링 사옥 곳곳에 걸려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한국메세나협회장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김율희는 소더비 인스티튜트 한국 대표·겸임 교수로, 국내 최초 글로벌 아트페어 '어포 더블 아트 페어'를 론칭하고 한국 지사장을 맡아 누구나 예술을 소유할 수 있는 예술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 미술 애호가 양성을 위해 다양한 예술 분야와 교육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해 기획한 소더비의 첫 한국어 하이브리드 과정은 소더비의 프리미엄 온라인 커리큘럼의 국제적 확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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