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 ‘파워 피플’②] 박승조 서보미술문화재단 이사장 “작품 감상부터 미술시장까지… 디지털화는 필연적 흐름”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1.05.04 00:39

왜곡 최소화한 고해상 작품 이미지 촬영법 고안… “디지털 뮤지엄 첫걸음”
몰입형 디지털 아트와 명상 공간으로 꾸려질 구기동 ‘박서보 미술관’

 
바야흐로 물이 들어왔다. 최근 미술시장은 MZ세대의 유입과 시장의 유동자금의 매력적인 투자처로 미술시장이 인식되면서 대중의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실제 최근 개최된 제10회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의 작품 판매 총액은 65억원에 달해 역대 최고 성과를 기록했으며, 옥션 시장도 뜨겁게 달궈지는 분위기다. 이런 훈풍이 일장춘몽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미술계가 직면한 과제와 미래를 고민해 보고자 한다. 이에 <아트조선>은 한국 미술계를 리드하는 분야별‘파워 피플’ 3인을 선정해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한다. 언제나 그랬듯 현장에 답이 있다. [편집자주]
 
 
서울 성산동 서보미술문화재단은 2019년 서울 연희동에 ‘기지(GIZI)’가 생기기 전까지는 박서보 화백의 작업실로 운영됐다. 1994년 서보미술문화재단이 출범한 이후 박 화백이 이곳에서 작업하고 생활하며 직접 재단 운영을 진두지휘했다. 그의 장남 박승조 서보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이 30년 몸담았던 강원대 디자인과 교수직을 떠나 재단에 합류하게 된 때는 2015년. 당시 국제 미술계에서는 박서보와 단색화를 집중 조명하며 파리 패로탱(2014), 베네치아비엔날레 단색화 특별전(2015), 런던 화이트큐브(2016) 등이 연달아 열렸고 중요한 시기였던 만큼 박 이사장의 역할과 행보에 이목이 쏠렸다.
 
급격하게 발전해온 디지털 기술은 원화 감상의 감동을 시간과 장소의 제한 없이 즐길 수 있게 했고, 원화에 가까운 정확한 색 재현력과 고해상도의 세부 묘사는 원화의 생동감을 그대로 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술 감상과 미술시장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한 박 이사장은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 아트씬에 자연스레 융화되고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작품, 아카이브, 작품 등을 모두 디지털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서보미술문화재단은 2018년부터 이러한 디지털 기술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기존 디지털 기술의 30배 해상도를 얻기 위해 3차원 삼각대를 개발했으며 부드러운 자연 채광 장비,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의 개발을 통해 최상의 자연스러움을 구현한 초고해상도 원화 이미지를 얻을 수 있게 됐다.
 
박 이사장은 원화의 디지털 이미지로의 재현뿐만 아니라, 작품에 담긴,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작가의 예술관, 철학관을 재해석하고 이를 디지털 아트로 구현하는 작업에도 관심이 많다. 작품을 디지털화하는 과정과 최종 이미지의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을 통해 작품과 작가의 예술관을 함께 가시적으로 보여주고자 현재 이를 제작 중에 있다. 글이나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눈으로 보는 작가의 예술관이란 관점에서 미술 감상의 저변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박 이사장은 설명했다. 이러한 디지털 아트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개관 예정인 ‘박서보 미술관’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박승조 서보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박서보 화백의 장남으로 2015년부터 재단을 이끌어 오고 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현재 ‘박서보 미술관’으로 서울 구기동, 고향인 예천 등이 논의되고 있다. 각 미술관의 특성은 무엇인가. 
 
“구기동에 들어설 미술관은 전통적인 미술관의 역할, 즉 원화를 직접 보고 감상하는 것은 물론, 디지털 미술관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수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설치, 공예, 도예 등 다른 작가의 작품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명상의 공간으로도 꾸리려고 한다. 이를테면 달항아리와 백색 묘법 작업을 함께 전시하는 식이다. 실제 재단은 2019년 갤러리아백화점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 작가들이 화백을 오마주한 작품 전시를 열어 출품작 모두 완판한 바 있다. 몰입형 디지털 미술 감상과 더불어 미술로써 명상이 가능한 일상 속 명상 공간인 셈이다.
 
예천 미술관은 박서보 화백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곳으로 구성하려고 한다.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주요작 120여 점이 예천으로 간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작품일수록 예천에 보낸다. 예천 미술관에서는 화백의 원화를 대거 볼 수 있다면, 구기동은 새로운 미래형 미술관으로써의 방향을 제시하는 거점지가 될 것이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2015년 서보미술문화재단에 합류했다. 때마침 이를 전후로 단색화와 더불어 박서보 화백을 국제적으로 조명하는 주요한 전시가 연이어 열리지 않았나.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재단의 주요 사업과 성과는.
 
“2014년 말 파리 패로탱을 시작으로, 2015년 뉴욕 패로탱, 또한 같은 해 열린 제56회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의 단색화 특별전 그리고 2016년 초 런던 화이트큐브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전시들이 연이어 성사되던 때다. 당시 국제 미술계와 교류하며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아카이브 정리에 착수했다. 본래 작업실로 쓰였던 이 공간(서보미술문화재단)에 화백께서 20년간 직접 모아 놓은 자료가 그야말로 한도 끝도 없더라. 기사, 비평, 도록 등 물리적인 아카이브가 각각의 단일로 존재했다면 이를 한데 정리해 유기적으로 데이터화, 시스템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물리적인 자료는 도서관에 꽂힌 책에 그칠 뿐이라면, 더욱더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고 읽히기 위해서는 디지털화가 필연적이다. 작품과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것은 지난 몇 년에 걸쳐 거의 끝자락이 보인다. 다만 각각의 개별 정보가 서로 연결되고, 이들이 키워드별로 분류되는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작품 수만 하더라도 너무나 방대하고 그와 연관된 자료 역시 그 양이 어마어마해 지난한 과정이긴 하나 재단을 맡아 운영한 이래로 꾸준히 정리를 이어오고 있다.
 
백색 묘법은 모두 마무리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그재그 묘법, 컬러 묘법 등의 정리는 아직도 구축 중이라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특히 백색 묘법 연작을 아카이브하는 데에는 화이트큐브의 역할이 컸다. 아키비스트(archivist·기록물 관리 전문가), 관련 전문 프로그램 등 인적 물적 자원을 아끼지 않고 지원해줬다. 이에 작품은 물론, 작업에 얽힌 이야기, 작품 소장자, 소장처 등까지도 정리를 완료했다. 백색 묘법을 시작으로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전(全)작품 도록)를 발행할 예정이며, 작품별로 순차적으로 내보일 계획이다. 이러한 아카이브 구축이 선행돼야 그다음을 내다볼 수 있지 않겠나.”
 
서보미술문화재단에서는 박서보의 작품을 초고해상도 디지털 이미지로 촬영해 아카이브로 구축해오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카탈로그 레조네를 출판할 예정이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사무실 한편에서 작품 사진 촬영이 한창이다. 아카이브를 위한 이미지 촬영인가. 
 
“아카이빙 과정에서 작품 이미지를 초고해상도로 다시 촬영하는 작업의 필요성이 자연스레 대두됐다. 예를 들어 디지털카메라의 성능이 1억 화소라고 해보자. 그렇다 한들 원화의 디테일과 생생함을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성능이나 화소가 아니더라. 작품 촬영은 일반 촬영과 달리 특수한 목적을 갖는지라 그에 맞는 별도의 장비를 자체 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다.
 
이에 수평, 수직으로 촬영 가능한 3차원 삼각대를 직접 제작했다. 분할 촬영해 합성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합성을 고퀄리티로 할 수 있도록 기성 프로그램에 적정화해 적용했다. 또한 촬영 시에는 자연광과 인공조명을 적절히 섞는다. 자연광의 직진성이 너무 강하면 또 왜곡되니 자연광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인공조명을 더해 이를 부드럽게 완화해 적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미지의 발색력을 살려 원화를 실제 보는 듯한 몰입도를 높이고자 한다.
 
고정된 하나의 시점으로 촬영하면 형태 왜곡이 생기고 빛 반사 등에 의해 원화와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할된 다시점으로 촬영하면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 우리는 카메라를 평행으로 이동시켜 수직, 수평으로 촬영한다. 구글 등 기존 고해상도 이미지 촬영법이 원화에서 몇 미터 떨어진 시점에서 감상하는 것이었다면, 재단에서 진행하는 촬영법은 원화를 가까이 작은 부분 부분을 직접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몰입형 감상이 가능한 미술관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2019년 연희동에 작업실 겸 기념관으로 기지재단이 설립됐다. 서보미술문화재단과 기지재단이 구별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기지재단은 미술은 물론 예술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프로젝트, 공공성 있는 사업 등을 펼친다면 서보미술문화재단은 아카이브 구축, 미술관 건립 등을 위주로, 몰입형 작품 감상을 위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화백의 영향력과 활동력이 크다 보니 대외적으로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서보미술문화재단과 기지재단이 각자 특화된 영역에서 활동 중이다. 현재 서보미술문화재단은 작품 촬영 외에도 수장고이자 작품을 수정, 교정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기지재단은 향후 궁극적으로는 기념관으로 운영될 것을 염두에 두고 애초 건립됐기 때문에 작업실뿐만 아니라 전시공간도 마련돼 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앞서 현대미술에서 디지털화는 필연적 흐름이라고 했다.
 
“장르와 경계의 구분이 모호해지며 더는 기존의 영역 구분이 무의미한 시대다. 믹스앤매치로 서로 융합되고 통합되며 새로움을 모색해나가는 흐름이다. 그 중심에는 디지털이 있다. 전통적인 미술관들 사이에서 디지털 뮤지엄이 등장했듯 디지털 아티스트가 나와 디지털 아트의 발전에 색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디스플레이 등의 기술 발전이 디지털 아트의 발전을 좌우할 거라 내다본다. 
 
단순히 원화를 디지털화하는 것을 넘어, 작가의 철학관과 가치관까지도 디지털 이미지에 담아내고자 한다. 집 거실에 빨간색 묘법 작업이 걸려있었는데, 아침에 태양광을 받을 때와 석양이 질 때가 느낌이 전혀 다르다. 미술관에 걸린 작품을 볼 땐 작품의 한순간만을 보는데, 직접 소유해 집에 걸어놓고 볼 땐 작품의 천의 얼굴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 않더라도 이같이 시시각각 다채롭게 변화하는 화면을 타임랩스로 담아낸다면 새로운 디지털 아트가 될 수 있다.
 
박서보 화백의 작업 특징 중 하나는 그린 흔적 위에 다시 그림으로써 지우고 덮어가길 거듭한다는 건데, 이 흔적들이 겹겹이 쌓인 것을 엑스레이 촬영으로 보여주는 방법도 고안 중이다. 이러한 일련의 방식은 굳이 글이나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작가의 예술관을 보여줄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보미술문화재단. /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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