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인 선(線)이 빚어낸 감성 교향곡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1.04.19 18:12

샤프심과 디지털로 작업한 선 그림…
날카롭지만 리드미컬한 화면
윤상렬展 ‘조금 어둡게 조금 밝게’

CSW-2, 145X60cm, 2021 /데이트갤러리
 
“나의 작업은 개인적인 극복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됐다. 진실과 거짓의 근원적 탐구자세로부터 기억 속 시공간의 잔상에서 시작된 개인적인 극복프로젝트의 징표들이다.”
 
윤상렬(51)은 샤프심이란 아날로그 소재와 3D 디지털 방식을 결합한 고유의 작업으로, 새로운 물성을 빚어내 평면임에도 모호한 깊이감과 공간감을 회화로써 실현한 작가다. 작가의 작업은 종이에 다양한 굵기와 농담의 샤프심으로 종이 위에 자를 대고 0.3mm 안팎의 일정한 간격으로 수없이 선을 긋고 화면의 도랑사이에 잉크젯 안료를 안착시킨다. 이때 최소한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개입되는 과정을 거친다. 
 
때로는 이 과정에서 순간 스치는 번뜩이는 섬광을 머금은 채 위에 투명 필름을 겹친다. 그려진 선과 선의 간격을 자로 측정해가며 동시에 우연히 생기는 빛, 그림자의 환영을 보면서 밀도 있는 선을 계획적으로 그은 뒤 몇 개의 레이어를 중첩해 깊이의 환영을 극대화 시킨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감성과 이성의 차이를 두고 고도의 집중력으로 행해지는 작업 방식은 미세한 차이의 굵기로 변주되는 선들이 종이 혹은 투명 아크릴 위에서 일순간 가늠할 수 없는 공간적 깊이감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산시킨다.
 
DC(S-12), 40X40cm, 2021 /데이트갤러리
 
윤상렬은 극복하고자 하는 두려움의 실체가 진짜라고 믿었으나 거짓으로 판명된 것 혹은 거짓이라고 믿었으나 진실이라고 밝혀진 것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진실이라 말한 거짓, 거짓으로 숨겨진 진실들의 경계를 허물고 보이지 않는 선들 사이에서 불규칙한 감성을 써내려가며 변주한다.
 
좋은 회화가가 되기 위해서 드로잉을 쉬지 않아야 했던 작가에게 샤프심은 일차적인 단순한 도구이상의 가치를 초월해 작가에게 있어 정신을 드러내주는 결정적 매체이기에 고도의 육중한 가치를 지닌다. 정교한 골과 마루를 이룬 선은 작가의 총체적 감수성이며 삶 그 자체인 셈이다. 
 
윤상렬 개인전 ‘조금 어둡게 조금 밝게(A little darker A little brighter)’가 20일부터 부산 데이트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과거 전시에서 선보인 <침묵(Silence)> 시리즈의 후속 작품으로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깊이감이 도드라지는 선형 회화가 내걸렸다. 오프닝은 22일이며 전시는 5월 31일까지 이어진다.
 
/데이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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