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안으로 들인 자연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1.04.06 11:22

서울시립미술관 '자연을 들이다'展
풍경화, 정물화 조각 등 소장품 56점

최만린, 작품 O, 2000, 청동, 42×44×33cm /서울시립미술관
발아 직전의 씨앗을 연상시키는 브론즈 덩어리에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적 형태를 발견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최만린의 <작품 O>(2000)는 무(無)의 상태, 즉 모든 불필요한 것들이 정제된 최고의 순수한 상태를 의미한다. 제목이 내용의 본질을 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떠한 관념의 개입도 허락되지 않는 ‘O’을 선택한 작가는 형식에 있어서도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 가장 최소한의 형태를 구현했다. 팽창한 표면을 통해 내부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생명의 에너지를 감지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정지 혹은 완결의 상태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과정을 보여준다.
SeMA 소장품 하이라이트 《자연을 들이다_풍경과 정물》 전시전경, 2021,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이 자연, 풍경, 정물 등을 주제로 한 소장품 하이라이트 전시 '자연을 들이다: 풍경과 정물'을 8월 22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프로젝트갤러리에서 개최한다. 소장품 5300여 점 중에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을 위주로 풍경화, 정물화, 공예, 조각 등 총 56점으로 전시를 꾸렸다.
김종학, 잡초, 1989, 캔버스에 유채, 158×240cm /서울시립미술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자연스러운 일상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미술관 소장품을 통해서 관람객이 편안한 위로를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됐다. 미술관 소장품의 연대기적 서술, 장르적 분류를 넘어서 미술품 자체로 회화와 공예, 조각이 상호관계 안에서 주목하도록 해, 미술관 소장품의 초역사적(Trans-historical)이고 장르복합적인 상관성에 관한 연구의 시초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권순형, 해변풍경, 2000, 백자토, 물레성형, 51×51×51cm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는 1부와 2부로 나눠 구성된다. 1부는 특정한 장소를 대상으로 그린 풍경화로 이루어지고 2부는 실내에서 바라보는 자연을 통해 꽃과 도자가 함께 있는 정물로 꾸려진다.
권순형 작가의 <해변풍경>은 붓을 쓰지 않고 유약의 조화로 도자 표면을 그려낸 추상 회화이다. 작가는 다른 유약에 비해 백운석의 함량이 높은 백운석유를 기초에 두고 철, 동, 망간, 코발트 등의 산화물을 섞어 1300도 이상의 높은 열을 가하는 방식으로 색을 만든다. 그의 작품을 특징짓는 녹색과 갈색, 오묘한 청보라 빛의 색은 마치 산과 바다, 물에 잠긴 산의 형상이 추상적으로 표현되는 듯하다.
김병기, 글라디올러스, 1983, 캔버스에 유채, 122×91cm /서울시립미술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글라디올러스>의 작가 김병기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오가며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100세가 넘는 현역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풍경이나 정물 그림은 대상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작가의 시대적 눈을 담아낸 상징물과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 처리가 함께 어우러져 구상의 대상물인 자연을 추상화한다. 작가가 바라본 산, 나무와 같은 자연은 그를 둘러싼 역사적인 사실과 현재에 대한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뒤섞어 재구성한 추상 회화라 볼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전시 기간 중 전시 트레일러와 전시 전경 등을 담은 온라인 전시투어 영상을 서울시립미술관 공식 SNS 채널을 통해 제공할 예정이다. 
김정숙, 여인두상, 1990년경(추정), 대리석, 73×36×18cm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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