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3.22 17:30

세계적인 설치미술작가이자 관계미학의 선구자 리암 길릭 개인전 ‘워크 라이프 이펙트’가 6월 27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아시아의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리암 길릭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지난 30년 간 작가가 발전시켜온 주요 주제들을 한데 모아 미술관 1층 전체를 작가의 작업의 토대를 형성하는 주요 요소로 이뤄진 하나의 몰입형 공간으로 꾸렸다.

전시타이틀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전시의 주제는 ‘일과 삶 간의 복잡 미묘한 긴장과 균형’이다. 작가는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주제, 특히 생산과 관련된 문제, 일의 다양한 양태, 동시대 추상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탐색을 이어간다.
이번 전시는 디지털과 팬데믹 시대에 우리 일과 삶이 결합하는 양상들, 그리고 그 영향들을 감지할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을 제시한다. 삶과 일 사이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익숙한 것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때 우리의 인식과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다양한 형태로 드러내고 있다.

제1~2전시실에서는 크게 5가지의 테마로 작품을 선보인다. 유럽에서 흔히 사용하는 형태의 램프를 사용한 작품 <신경망에서 감지되는 행복에 대한 기대>는 움직이는 그림자의 파도를 만들어내며 전시장의 입구를 나타낸다. 전시장 벽면에서 빛을 발산하는 커다란 수학공식들은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UCL)에서 발표한 ‘행복을 계산하는 공식’이다. 마치 도시의 야경과 같은 모습으로 관람객을 향해 빛을 발한다.
기존 가벽이 모두 제거된 전시실에는 두 개의 커다란 건축적 공간이 세워진다. 환하게 빛나는 쇼윈도우같은 이 공간은 사실 유리가 없으며 우리는 쉽게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두 개의 공간들은 작가의 작업이 가지는 두 개의 역설적인 측면, 즉 사회적 삶의 경험과 갈등, 그리고 그것과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추상성을 보여준다.
각각 <워크 라이프 이펙트 스트럭처 A, B>로 명명된 두 공간 중 첫 번째 큐브 <워크 라이프 이펙트 스트럭처 A>에는 추상적 형태의 ‘Fins’와 ‘Horizons’ 시리즈의 신작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산업과 건축 분야의 부차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길릭의 중요테마를 보여주고 있다. 건물의 기능적 부속품들은 작가에 의해 추상적 형태로 변모되어 시적으로 재현된다.


두 번째 큐브 <워크 라이프 이펙트 스트럭처 B>에는 디지털 피아노와 스노우머신으로 구성된 작품인 <눈 속의 공장(우편 배달부의 시간)>이 놓여있다. 피아노에서는 군사정부에 대항하는 1974년 포르투갈혁명의 시작을 알렸던 민중가요 ‘그란돌라 빌라 모레나(Grandola Vila Morena)’가 자동연주 된다.
전시실 너머 미술관 로비와 북라운지에도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미술관 입구의 커다란 유리벽에 배치된 텍스트는 <개체 관계 맵핑> 작품으로, 우리 삶에서 직접 사용하는 업무용어들이 패러디 되어 혼란스러운 현대적 시(詩)를 보여준다. 로비에 가득한 색색의 벤치들은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소개된 이후 발전을 거듭하는 작품이다. 미술관의 부차적인 요소로부터 미술관 경험이 영향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북라운지 공간은 미술관의 내부과 외부, 관람객과 공원이용객이 마주하는 특별한 영역이다. 작가는 유리창에 시공된 <마음의 키오스크 광주> 작품에서 ‘관계의 형태’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형태로 ‘키오스크(임시 판매대)’를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일과 삶의 관계’라는 주제에 오래 관심을 두었으며,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의 팬더믹 상황에서 그 고민은 더욱 심화되었다. 특히 2019년 작가가 광주를 방문했을 때 그는 중외공원과 미술관을 찾는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풍경은 작가에게 새로운 영감으로 작용하여 광주를 위한 전시를 만드는데 주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길릭은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미학인 ‘관계 미학(Relational Aesthetic)’의 이론적 성립에 공헌했다고 평가 받는다. 그의 작업에서 관람객은 전시의 일부이며, 작품과 전시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들을 생성하는 존재다. 이번 전시는 정해진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보다는 ‘끝이 열린’ 가능성의 형태로 제시된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