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도 질서가 될 수 있다… 박종규展 4월 9일까지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1.03.10 16:06

[박종규]
‘노이즈’ 소재 삼아 본질(本質)과 부수(附隨)의 기준을 묻다
서울서 5년 만의 개인전 ‘~크루젠’

~kreuzen, 130.3x97cm, acrylic on canvas, 2020 /갤러리조은
 
미세한 것이 무한히 확장될 때 예상치 못한 그 존재감에 압도당할 때가 있다. 현미경을 통해 세포나 세균배양액을 보았을 때 평상시 인지하지 못했던 존재가 보여주는 생명력과 치밀한 균일함에 놀라는 것과 같다.
 
‘픽셀’에서 추출한 점과 선을 주요 모티프로 코드화된 이미지를 구축하는 작업을 이어온 박종규(55)의 작품은 인지하지 않았던 존재가 오롯이 드러날 때의 인지적 각성을 담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픽셀을 계속 확장하면 선만 남고 그 선은 무한한 점들로 이뤄지는데, 이들 선과 점은 디지털 이미지를 구성하는 픽셀 속에 드러나지 않았던 본연의 모습인 셈이다.
 
~kreuzen, 145.5x112.1cm, acrylic on canvas, 2021 /갤러리조은
 
점과 선을 코드화해 화면에 드러나는 것을 작가는 ‘노이즈’라고 칭한다. 이는 현대음악에서 ‘배제 혹은 제외된 것’을 뜻함과 동시에 ‘소음’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노이즈가 청각적으로는 잡음, 전자통신적으로는 오류로 인해 발생하는 불필요한 신호, 디지털 측면에서는 화면이나 시스템에 나타나는 불순물이라고 한다면, 작가는 역으로 이를 하나의 질서로 바라본다. 
 
시스템과 질서를 교란시키는 존재이기에 제거하는 게 자연스러울 수 있으나, 박종규는 노이즈를 소재로써 다양하게 변용된 점과 선의 모습으로 화면 위에 표현하며 필요와 불필요, 당연함과 당연하지 않음 등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kreuzen, 193.9x130.3cm, acrylic on canvas, 2020 /갤러리조은
 
이에 대해 작가는 “노이즈가 부정적인 기능만 가진 건 아니다. 이를테면, 음향학에서 취급되는 대표적인 노이즈인 디스토션(Distortion)은 전기증폭 장치에서 입력과 출력의 펄스가 맞지 않아 소리가 찌그러지는 현상인데, 디스토션은 록 음악에서 그 파열음이 가진 카타르시스로 인해 일렉트릭 기타가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음악효과 중 하나로 꼽힌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즉, 노이즈는 주류 사회나 예술에서 제외된 것을 상징하며 이를 통해 옳고 그름, 흑과 백 등 이항 대립적 틀을 해체하고자 하는 것. 작가는 이들 배제된 것 안에서 미술적 가치를 사고하며 노이즈를 수용하고 오류를 받아들이며, 시공간에 대한 고찰은 곧 모니터 위에서 디지털 세계로까지 이어진다. 캔버스에서 드로잉을 지우개로 지워내며 사라지는 그 과정에서 박종규는 노이즈, 혹은 이 오류라는 개념을 픽셀의 다양한 조합으로 옮겨낸다.
 
박종규는 컴퓨터에서 픽셀 이미지로 재배치한 노이즈를 시트지로 인쇄한 후, 컴퓨터 출력기가 정제한 선과 점을 떼고 다시 아크릴 물감을 덧칠한다. 본디 노이즈였던 것들은 존재로 남고, 노이즈 외의 것들은 불순물이 되어 제거된다. 어떤 것이 본질이고 오류인지, 주요소이고 부산물인지의 기준이 사라진다. 구분과 차별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작업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kreuzen, 162.2x130.3cm, acrylic on canvas, 2020 /갤러리조은
 
회화, 영상, 설치 등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온 박종규가 서울에서 5년 만에 개인전 ‘~크루젠’을 가진다. 전시 타이틀은 ‘순항하다’란 뜻의 독일어로 디지털화돼 가는 이미지가 만들어낸 거대한 데이터 홍수에서 점과 선의 이야기를 순항하듯 풀어나가려는 작가의 의도를 담았다. 
 
이번 전시 타이틀 ‘크루젠(Kreuzen)’은 ‘순항하다’라는 뜻의 독일어로, 또한 그의 작업이 데이터베이스가 돼 자족적 생명력을 지님으로써, 노이즈의 파도 속에도 순항하며 작업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소망을 반영하고 있다. 그간 사진, 설치, 영상, 디지털 미디어 등을 통해 주목받았던 박종규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평면에 집중해 만날 수 있는 기회다. 4월 9일까지 서울 한남동 갤러리조은. 
 
/갤러리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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