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 오리지널리티⑤] 점(點)에서 발아한 이우환의 우주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1.02.26 17:45 | 수정 : 2021.12.17 10:04

“내 작품은 무한(無限)으로의 통로이자 문”
아트조선 공동 기획 TV CHOSUN 개국 10주년 기념 ‘더 오리지널’展
3월 9일부터 조선일보미술관
1980년대작 ‘선으로부터’, 근작 ‘다이얼로그’ 등 선봬

이우환, From line-80046, 캔버스에 유채, 115x90cm, 1980 /아트조선
 
“점은 새로운 점을 부르고 그리고 선으로 연장된다. 모든 것은 점과 선의 집합과 산란의 광경이다. 존재하는 것은 점이며 산다는 것은 선이기 때문에 나도 역시 점이며 선이다. 내가 표현하는 점도 항상 새로운 생명체가 될 것이다.”
 
물감을 흠뻑 적신 붓을 캔버스 위에 척 올리곤 그 붓을 천천히 아래로 끌어내린다. 필선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차 소멸되듯 서서히 자취를 감추며 잔잔히 일렁이는 수면처럼 고요한 파동을 선사한다. 그리곤 다시 붓에 물감을 묻혀 또 다른 필선으로써 이 행위를 거듭한다. 
 
이우환(1936~)의 <From Line(선으로부터)>은 캔버스 바탕에 파란색 선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길게 내려그어 간 흔적이 담겨있다. 선의 굵기와 형태는 거의 동일하며 선들의 간격도 일정한 것이 조형적 특징으로, 간단명료하며 단조로운 구성이지만 그 이면에는 담백하고도 무한한 철학적 성찰이 내재돼 있다. 희끄무레한 선들은 오히려 이우환이 의도한 본질적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데, 이 선들은 기와 생명력의 기원이자 출발점이며 이들을 재차 그음으로써 작가는 무위자연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고자 한다.
 
간단하지만 복잡하고, 쉽지만 어려운 그의 그림에 오늘날 아트러버들은 열광한다. 이러한 그의 인기는 BTS의 리더 RM의 ‘최애 작가’, ‘국내 생존 작가 중 가장 비싼 작가’란 수식으로 입증된다. 특히 지난해 한국 미술품 경매 낙찰총액 1위 주인공으로, 그 금액이 무려 150억원에 이른다. 2위 쿠사마 야요이 89억원, 3위 김환기 57억원과 비교해 압도적인 수치다.
 
2019년 파리 카멜메누어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From Point, From Line: 1976-1982’ 전경. 작품은 ‘From Line’(1979). /파리=윤다함 기자
From Line-80041, 캔버스에 유채, 40x169cm, 1980 /아트조선
 
작가는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며 당시 문인으로 활동했던 황동초로부터 시서화를 배웠다. 이때 습득한 전통 서예가 후에 선을 지속적으로 그리는 행위와 연결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장해서는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에 진학하지만 1년 만에 중퇴 후, 도일해 일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60년대 말부터 일본 화단에서 모노하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해당 운동의 이론을 정립하고 평론가로서 활약했다. 이는 이우환이 작가이면서 철학자, 비평가, 시인의 면모를 동시에 지니게 된 대략적인 배경이다.
 
그의 작품은 시각예술품이지만 다분히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특성을 함께 갖고 있는데, 이우환의 소속 갤러리 중 한 곳인 카멜메누어갤러리의 대표 카멜 메누어(Kamel Mennour)는 이우환 작품 고유의 시적인 특성에 매료됐다고 본지와의 인터뷰(2019)에서 밝힌 바 있다.
2019년 파리 카멜메누어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From Point, From Line: 1976-1982’ 전경. 사진 속 두 작품 모두 ‘From Point’ 연작이다. /파리=윤다함 기자
 
<From Point(점으로부터)>에서 파생된 <선으로부터>는 이우환의 대표작으로, 제목이 말해주듯 기본 조형언어인 점과 선에서 시작됐다. 어릴 적 우연히 들은 “우주 만물은 점에서 시작해 점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에서 기인한 그의 예술세계가 필연적으로 점과 선을 기조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작가는 작품 속 점에 대해 “점의 반복이 우주의 무한을 나타낸다. 이 무한의 개념을 보여주는 한 방법은 형태를 반복하는 일이다.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그것은 탄생과 죽음의 반복이지만 매 순간이 유일하고 독립된 채 연속돼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Dialogue,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2017 /아트조선
 
이우환에게 캔버스는 단순히 지지체나 바탕면을 넘어, 그가 표상하고자 한 우주 그 자체와 같다. 캔버스가 곧 무한의 공간으로 확장되며 명료하고도 명쾌한 한 점, 한 선 안에 우주의 이치를 담아내는 데 이른다. 작가는 “캔버스는 결코 그림이 들어가는 용기가 아니라, 그 자체가 그림의 일부다. 바닥칠은 그 자체가 하나의 마티에르로서 맥박이 뛰고 있는 세계로 순화되는 일이 바람직하다. 캔버스는 그러한 물질적 에센스이며, 고차원화된 하나의 구체적인 장소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캔버스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언급했다.
 
East Winds, 캔버스에 유채, 162x131cm, 1984 /아트조선
 
그는 ‘바람’ 시리즈에 접어들며 이전의 점, 선 작업에서의 그것과 달리 자유롭고 탈규칙적인 화면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기존 작업에서 보이던 수직적이고 일률적인 형태가 아닌, 운율을 따라 춤추는 필선들은 흡사 불어오는 바람을 연상하다. 석채를 섞어 안료를 만드는 이우환은 이러한 기법 변화를 위해 기존 작업과 달리 석채 비율을 낮춰 작업했다고 한다.
 
<From Winds(바람으로부터)> <With Winds(바람)> <East Winds(동풍)> 등에서 화면이 뭉개지거나 해체되는 양상에서 내적 혼란이 느껴진다. 동시에 이는 표현적으로 변모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감정의 고조가 느껴지는 붓터치와 대조적인 농담 차이는 역동적으로 다가오며, 생동감과 생명력을 지닌 필선들은 마치 화면은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은 오라를 자아낸다. 
 
 
“나의 예술관은 한마디로 말하면 무한에의 호기심의 발로이며 그 탐구이다. 무한은 자기로부터 출발하여 자기 이외의 것과 얽힐 때에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자기를 자기로서 정립하고 표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타와의 관계 가운데 자기의 존재를 한정하고 확인하며 그 관계가 이루어지는 마당에서 세계를 지각하고 싶다는 것이다.”
 
Dialogue, 캔버스에 유채, 162.2x130.3cm, 2014 /아트조선
 
TV CHOSUN 개국 10주년을 기념하는 아트조선 공동 기획 특별전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전: 더 오리지널’이 다가오는 3월 9일부터 21일까지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는 의식의 영역 너머에 무한한 영원성을 표현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보여주고자 한 이우환의 대표작 다수가 내걸린다. 특히 경매시장에서 인기 있는 1980년대작 <선으로부터>를 비롯해 <East Winds(동풍)> 등이 출품된다. 휴관일 없이 매일 10:00~18:00 운영된다. 무료. (02)724-7832
 
TV CHOSUN 개국 10주년 특별 기념 ‘더 오리지널’전(展)이 3월 9일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개막한다. /아트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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