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과 희극의 관점으로 보는 박경률·최하늘·홍승혜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1.02.25 15:00

원앤제이갤러리 ‘웃, 음-; 이것은 비극일 필요가 없다’展

‘웃, 음-; 이것은 비극일 필요가 없다’展 전경 /원앤제이갤러리
 
박경률, 최하늘, 홍승혜 세 작가가 모여 농담과 희극성을 맥락으로 삼아 각기 다른 매체마다의 전통성과 현대성 그리고 서로 다른 특성과 불완전성 사이에 위치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가 열린다. 그룹전 ‘웃, 음-; 이것은 비극일 필요가 없다’에서 박경률은 회화, 최하늘은 조각을, 홍승혜는 영상과 설치를 내걸고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 타이틀 ‘웃, 음-; 이것은 비극일 필요가 없다’에서는 불필요한 문장부호를 음절 사이에 넣어 수월하게 읽히지 않게 함으로써 읽는 이가 마음 편히 웃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강조된 부정어법은 오히려 상황을 비극적으로 환기 시키는데, 그럼에도 전시는 ‘농담'과 ‘희극성'이 이 비극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틈을 내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박경률, On Evenness, 2017, 캔버스에 유채, 50x70cm /원앤제이갤러리
 
박경률은 회화탐구의 무거움을 플레이풀한 놀이로 전복한다. 그가 그려내는 여러 오브제들을 살펴보면, 여러 근대 회화사조들의 특성이 빈번하게 한 화면에 뒤섞여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초현실주의, 구축주의적 형상과 형태들, 그리고 인상주의적 색채 표현과 입제주의적 구성이 한 화면에 등장하고, 때때로 그래피티와 팝아트적 요소들까지 등장한다.
 
그는 이전의 회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기호와 상징, 추상과 구상의 특성들을 한번에 다 드러내면서 그것에 어떤 서사도 담지 않는다. 서사가 삭제된 회화 양식의 혼합물, 또는 혼합체는 하나의 아이디얼한 양식을 추구했던 역사에 대한 스터디이자 그것들을 소재로 한 작가의 위트이자 놀이인 셈이다.
 
최하늘은 모더니즘 조각의 특성들을 이용하고 비트는 데에 퀴어적 특성과 유머를 전략으로 삼는다. 그는 김종영의 조각을 희화하하여 ‘단단함/단일함’이라는 특성을 시각/촉각적으로 배신하는 장치들을 만들어 혼종의 조각들을 만들어 내거나, 아예 공간 안에서의 가구나 인테리어의 부분으로 자신의 조각을 밀어 넣어 버린다. 
 
이번 전시에서 그가 만든 조각들은 조각적 엄숙함을 흉내내는 비체(abject)들의 군상이다. 두 대디(Daddy) 조각은 스폰지나 스티로폼과 같은 조각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가벼운 산업재료지만, 자신의 속성을 숨긴 채, 돌이나 철과 같은 고전적인 조각의 재료의 모습을 하고 사진 속에서 자태를 뽐낸다. 그 두 조각의 해체와 혼합, 재조합으로 만들어진 자식조각들은 딸,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기형적이며, 또는 적당한 이름을 붙일 수도 없을 만큼 규범에서 벗어난다. 이 군상의 형태적인 면 역시 퀴어적인데, 특히 자식조각들은 방향성과 중심을 상실하고 갈지자로 걸어가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홍승혜, Light Upon, 2021, 플래시 애니메이션, 개러지 밴드 /원앤제이갤러리
 
추상이 기하학이라는 정신성의 너머로 읽혀지는 것과 상반되게 디지털 코드들은 이면의 어떤 것도 없는, 일대일 상응으로 단순히 어떤 것을 상징하는 기호다. 홍승혜는 그러한 기호들을 주요 요소로 삼아 추상 작품들을 제작하며 추상의 정신성을 희화화한다. 그는 실재와 본질의 추구에 있어 정신적인 것을 강조하며, 형이상학적인 차원의 궤도를 그려갔던 추상에 디지털 기호의 특성들을 덧입힌다.
 
원과 사각, 검정이라는, 추상화에 있어 절대적 차원으로 여겨지던 요소들은 작가의 의해 하나의 픽셀이 되어, 화장실 표지판에서 볼 것 같은 기호로 전락한다. 작가는 이에 유머를 더하여 어린아이들과도 소통이 가능할 법한 원초적 언어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에 움직임과 음악을 곁들여 아예 춤을 추도록 만든다. 반면, 그의 조각은 바닥에 납작하게 드러눕거나 디지털로 평면화되는 대신 음악과 운동이라는 다른 요소들로 인해 다시 구축적 성격을 드러내며 조각스러운 것, ‘디지털 조각’, ‘디지털 구축’이라는 개념을 조각의 성질로 들여온다.
 
박경률, 그림 12, 2019, 캔버스에 유채, 170x160cm /원앤제이갤러리
 
이번 전시는 희극이 규범을 그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며. 세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유머는 그들이 다루고 있는 매체 규범 바깥에서 읽힐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예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시대에 작가들의 취하는 전략으로서의 유머와 희극성을 단순히 즐거운 관람, 또는 온순하고 일시적인 통합을 위한 것으로만 치부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한다. 25일부터 4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회동 원앤제이갤러리.
 
‘웃, 음-; 이것은 비극일 필요가 없다’展 전경 /원앤제이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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