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화 거장 김영택 별세, "30년 발자취 전시 목전에 두고…"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1.01.14 15:57

예정대로 개인전 20일 인사아트센터 개막

김영택 화백 /조선DB
 
한국적 펜화의 거장 김영택 화백이 13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지난 30년의 화업을 결산하는 개인전 개막을 목전에 앞둔 상황에서 들려온 부고라 주변에 안타까움울 더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을 펜으로 복원하는 데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그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에서 발달한 붓 문화와는 달리 동시대에 서양에서 발달한 펜 문화로 인해 기록화가 발달됐다는 점에서 착안해 0.03mm 펜촉으로 수만 번의 세밀한 선을 그어 한국과 일본, 유럽 등 세계의 고건축 문화재를 고증하는 새로운 ‘기록펜화’ 장르를 개척하고, 특히 사라지거나 변형된 전통 건축과 문화재를 세밀한 펜화로 되살리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쏟아왔다.
 
서울 종묘 정전, India ink on Paper, 41x58cm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김영택은 광고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맹활약을 떨치고 홍인디자인그룹을 세워 20년 동안 경영하며 국제디자인단체인 ITC(International Trademark Center)가 전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디자인 앰버서더’ 54명 중 한 명에 선정됐다.
 
다음 해 ITC 주최로 벨기에 오스탕트에서 열린 제1회 세계디자인 비엔날레 초대작가로 참여, 이때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들린 작가는 그곳에서 프랑스의 화가이자 삽화가인 귀스타프 도레(1832~1883)의 펜화로 그린 그림 성서를 보고 펜화의 매력에 매료됐다.
 
이후 번성하고 있는 기업을 뒤로하고 작가의 길로 전향하게 된 그는 펜화의 기본인 서양의 기법도, 당시 유행하던 일본의 기법도 받아들이지 않고, 오로지 본인만의 한국적인 펜화를 꾸준히 그려나갔다. 이후 중앙일보에 '김영택 화백의 펜화 기행' 이라는 제목으로 10년 넘게 작품을 연재하며 건축문화재의 아름다움을 펜화에 담아 널리 알리고자 했다. 훼손된 건축 문화재를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복원함으로써 선조들의 건축물에서 느낄 수 있는 지혜와 가치를 작품에 녹여내는 데 힘썼다.
 
프랑스 노르망디 몽생미셀, India ink on Paper, 41x58cm
 
그의 펜화에서는 특유의 원근법이 돋보이는데, 이는 서양의 그것과 달리 동양의 원근법과 유사한 까닭이다. 먼 곳은 작게, 가까운 곳은 크게 그리며 '본다'라는 적극적 의미의 인간 중심의 시각이 서양의 원근법이라면, 생전 작가는 상대적으로 중요한 피사체를 더 잘 보이게 표현해 사물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닌, 사물을 위한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의 펜화가 한국화의 감성적 감흥과 궤를 같이 하는 이유다. 
 
서울 창경궁 옥천교 용면상, India ink on Paper, 36x50cm
 
고인이 생전 준비 중이었던 '펜화전'은 예정대로 20일부터 2월 15일까지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가나문화재단(이사장 김형국)이 주관하고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이 후원하는 '김영택 펜화전'에서는 <청계천 수표교 복원화> <종묘 정전> <프랑스 노르망디 몽생미셸> 등 고인이 남긴 세계문화유산 시리즈 펜화 원화 40여 점이 공개된다.
 
이외에도 서울 청계천 종묘 정전, 석파정 유수성중관풍루, 인천 청관 패루, 해남 대흥사 무염지 등 한국의 풍경 10여 점, 일본 나라 호류지 금당과 5층탑, 일본 오사카성, 교토 헤이안신궁 태평각 등 일본 고건축 복원화 작품,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노르망디 몽생미쉘, 로마 콜로세움,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등을 그의 펜화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서울 석파정 유수성중관풍루, India ink on Paper, 36x5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