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2.14 20:50
[김종훈]
“찻사발 가득 ‘소박함’ 한잔 하실래요”
‘황중통리: 김종훈 도자’展, 27일까지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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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칭 기법이라고 해서 손가락으로 뽑아 올려 주둥이를 빚은 걸 알 수 있습니다. 흙의 본래 빛깔이 잘 드러난 다완이에요. 재밌는 것은 군데군데 있는 갈색 얼룩이 찻때라는 점입니다. 거듭 사용되며 차의 얼룩이 자연스레 쌓여 형성된 시간의 흔적인 셈이죠.”
지난 20여 년간 정호다완을 연구하고 제작하며 한국 도예의 맥을 이어온 작가 김종훈(48)이 17세기 제작된 <팔도 다완>에 대해 설명했다. 이 다완의 표면에는 기름띠 같은 색감이 보이는데, 저화도에서 만들어진 도기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표현기법과 도기 형태는 전형적인 일본 라쿠 다완을 연상하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 후예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조국이 그리워서였을까요. 찻잔 표면에는 조선 팔도 지명을 철화로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글을 배운 도공이 만들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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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찻사발 하나에도 슬프고 아련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선시대를 대변하는 다완을 비롯해 김종훈이 최근 3년간 제작한 정호다완, 분인다완, 백자 대호 등이 서울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황중통리(黃中通理): 김종훈 도자’전(展)에 내걸렸다.
주역 곤괘에 따르면 땅의 아름다움을 ‘황중통리’라고 표현했다. 내면의 지성을 갈고닦아서 이치에 통달하는 마음 자세를 뜻하는데, 생각과 감정이 한 덩어리로 순수해져서 잡다한 생각이 제거된 이상적 내면 상태를 의미한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곧 외면의 아름다움으로, 더 나아가 자신의 행동과 행위의 아름다움을 이뤄낸다. 황중이란 내면의 응축된 황색, 곧, 땅의 색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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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는 대정호, 청정호, 소정호 세 가지 형태의 정호다완이 전시된다. 형태와 크기로 구분된 대정호, 소정호와 달리 청정호의 경우 다완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된 유약이 가마에 소성되는 과정에서 푸른빛을 머금게 돼 청정호라는 명칭이 붙었다. 현재는 세 가지 다완이 각각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형태적 특징에 따라 구분된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 출품한 다완은 현재 일본에서 인정받고 대우받는 20여 점의 국보와 보물급, 민간 유력인이 소장하고 있는 300여 점의 다완을 15년에 걸쳐 수십 차례 일본에 방문해 실사하고 내면에 용해해 그것에서 얻어진 이해를 통하여 구현한 작업이다. 일부 작품에선 과거의 정호다완에서 보이는 석렬과 빙렬, 유약의 뭉침이 다시 재현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외형을 따라 만든 것이 아닌, 과거 정호다완을 만들었던 사기장의 마음과 생각을 받아들여 내면에서 곱씹고 정제해 밖으로 쏟아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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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말하는 막사발과 정호다완은 생김새가 비슷해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정호다완은 오랜 숙성을 거쳐 수비와 꼬막을 통해 물레 위에 올려지고, 물레 위에서 기물을 성형할 때 그릇 위에 작가의 손이 기억되고 생각이 부여된다. 이렇듯 섬세하고 오랜 시간과 노력이 융합된 정호다완은 막사발이라는 한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게와 깊이 그리고 고졸한 매력이 넘친다.
김종훈은 다완은 누군가에 의해 사용됨으로써 비로소 완전해진다고 말했다. “찻사발은 저 혼자 만드는 게 아닙니다. 제가 만든 도화지인 다완에 사용자가 차를 담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사유를 하며 그때서야 그림이 그려지고 작품이 완성될 수 있습니다.” 전시는 2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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