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서사가 되지 못한 기억의 파편들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0.11.30 18:07

[채지민]
양가적 이미지 혼재하는 화면…
“위화감 조성하는 역설적 조화”
‘장면선택’展, 12월 12일까지 옵스큐라

Rookie Recognized You, 112.1x112.1cm, Oil on Canvas, 2020 /옵스큐라
 
차리다 만 무대 같이 미완의 지점에 멈춘 듯한 묘한 화면이다. 채지민(37)의 회화에는 양가적인 이미지가 혼재한다. 현실과 비현실, 관계와 비관계와 같이 상반되는 두 개념의 경계선에 잠시 머무는 것 같다. 캔버스 위를 종횡하는 획과 불규칙적으로 산재한 사물을 따라 운동감이 느껴지는 인물 그리고 한없는 정지 화면에 갇힌 인물이 공존한다. 기하학적으로 화면이 분할 구성되며 마치 정교하게 연출된 연극 무대를 연상하는 것은 실제 작가가 대학 시절 열정적으로 매진했던 연극 동아리 활동에서 기인한다. 무대를 연출하는 재미에 빠졌던 작가는 이를 캔버스에서 이어갔다. 채지민이 회화의 공간성에 주목하게 된 계기다.
 
Chilling Out in the Calculated Space, 72.7x90.9cm, Oil on Canvas, 2020 /옵스큐라
 
그는 회화의 본질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물리적 평면성과 환영적 공간감 사이를 사유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비어있지만 비어있지 않은 물체, 한 공간에 있지만 마주하지 않는 인물을 통해 차단된 긴장감과 역설적인 조화를 담은 장면을 내보이고자 한다. 
 
“이상하고 미정인 게 좋다”는 채지민은 캔버스에 불특정한 시공간을 펼쳐낸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선택한 이미지들, 이를테면 구조물, 오브제, 인물을 조형성에만 의거해 배치함으로써 화면 안에 어색한 조화를 이뤄낸다. 이렇듯 낯설고 부자연스러운 장면의 조합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하나로 이어지는 서사가 되지 못한 채, 보는 이에게 위화감과 긴장감을 조성한다. 한 화면에 있다는 공통점을 제하면 연관성이 없는 객체들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이해할 수 없는 파편적 상황에 머물게 된다.
 
“저는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지 않아요. 작업이 끝나는 순간에도 결코 스스로 정의내릴 수 없는 화면을 추구하려고 하죠. 그렇기에 화면 곳곳에 배치된 인물과 오브제는 캐릭터를 잃고 제스처만 남은 채로 부유하게 됩니다.”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흡사 조만간 어떠한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 직전의 순간인 셈이다.
 
주은정 독립큐레이터는 “화면을 하나의 일관성 있는 전체로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 틈새를 벌리고 이를 가시화하는 방식을 통해 작가는 실재 대상을 묘사한 재현물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자체를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채지민 개인전 ‘장면선택(Select Scene)’이 열리고 있는 옵스큐라 전시장 외관. 통유리창 안으로 작가의 신작 ‘You Will Never Know Where They Are’(2020)이 보인다. /윤다함 기자
 
채지민 개인전 ‘장면선택(Select Scene)’이 12월 12일까지 서울 성북동 옵스큐라(Obscura)에서 열리고 있다. 대작 <You Will Never Know Where They Are>를 비롯한 신작 15점이 걸렸다. 옵스큐라의 새하얀 화이트 큐브에 걸린 작가의 환영적 공간은 더욱 평면화되며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배가된다. 전시장은 전면 통유리창 등을 통해 건물 외부에서 관람이 가능하며, 내부 관람은 사전 예약해야 한다. 이번 전시와 연계해 출간된 작가의 최근작을 모은 작품집 ‘CHAEJIMIN PAINTINGS’(옵스큐라, 2020)도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학사 과정을 마치고 영국 첼시대학에서 순수미술 학위를 받았다. <들판에서>(노블레스컬렉션, 서울, 2019), <하나의 풍경들>(갤러리엠, 서울, 2017), <In the End, We Are All Alone>(Griffin Gallery, 런던, 2016) 등 국내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The Bridge Wasn't There, 40x116.8cm, Oil on Canvas, 2020 /옵스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