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시간의 ‘무게’가 녹아든 천경우의 사진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0.11.27 17:29

퍼포먼스 결합한 흐릿한 초상 사진,
타인과의 관계가 지닌 무게 조명해
개인전 ‘THE WEIGHT’展, 내년 1월 10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 삼청 별관

The Weight #1, C-print, 170x125cm, 2016 ⓒ천경우
 
세계 곳곳을 오가며 퍼포먼스와 공공미술의 영역을 포괄하는 작업을 지속해온 천경우는 1990년대 이후부터 독일을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활동하며 참여자들과 교감하는 실험적인 인물사진과 퍼포먼스 프로젝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작가가 사진전으로는 7년 만에 개인전을 가진다. 참여자와의 소통 도구로서 퍼포먼스, 공공미술과 결합한 흐릿한 초상 사진을 선보인 그의 작업 중, 국내에 조명될 기회가 없던 세 연작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미사진미술관 삼청 별관에서 공개된다. 
 
이번 전시 ‘THE WEIGHT’에서는 <Nine Editors>(2014), <The Weight>(2016), <Reminiscence>(2020)가 내걸린다. 이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단순한 피사체가 아닌, 타인과의 연대감을 토대로 시간과 공간을 채워 나가는 능동적인 참여자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미지가 범람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사진을 통해 접한 정보를 가볍게 소비하며, 점차 타인의 존재와 고통에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업이 지닌 물리적, 개념적 무게에 집중하며, 오늘날 이미지의 가벼운 속성에 대항해 우리의 삶이 타인과의 관계, 기억으로 인한 무게와 시간으로부터 비롯됨을 출품작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Nine Editors #9, C-print, 90x73cm, 2014 ⓒ천경우
 
<Nine Editors>는 패션 매거진에 소속된 9명의 에디터와 협업한 프로젝트다. 각 에디터들은 자신이 아끼는 옷 한 벌을 작가 작업실로 보내왔고, 이들을 개별적으로 스튜디오로 초대해 자신의 옷이 아닌, 나머지 8인의 옷을 입도록 요청했다. 모델의 옷을 스타일링하는 일에 익숙한 이들 에디터가 역할을 바꿔 직접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참여자로 서는 과정이 천경우의 렌즈에 담겼다. 9명의 인물이 9분간 동료들과 다름의 무게감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랑스 파리 근교 로맹롤랑 고등학교에서 부모를 따라서 막 이주해 아직 프랑스어를 잘 모르는 이민자 청소년으로 구성된 특별반 학생들과 진행한 프로젝트 <The Weight>도 흥미롭다. 작가는 이들에게 급우 한 명을 택해 가장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자세로 서로를 업고 있도록 요청한 후 이 시간을 사진에 담았다. 타인의  무게감을 느끼며 도움을 주고받는 시간을 관통하며 언어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참여자끼리 감정적 연대감을 신체적으로 체험하게 한 프로젝트다.
 
올해의 신작 <Reminiscence>는 폴란드 라즈니아 현대미술관과의 협력으로 노년의 참여자들이 자신이 선곡한 음악을 들으며 인생의 가장 소중했던 순간을 회상하는 과정을 촬영한 단채널 영상 작업이다. 눈을 감고 수십 년 전 사적인 기억을 털어 놓는 노인들의 얼굴 표정과 대화 속에는 지나온 인생과 시간의 무게가 녹아있음을 상기하게 한다. 전시는 내년 1월 10일까지 열린다. 
 
The Weight #3, C-print, 110x170cm, 2016 ⓒ천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