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1.19 16:00
김미경 개인전 ‘Stratums 겹,층’,
23일부터 부산 데이트갤러리

“어머니는 나를 있게 하고 나를 사유하게 하며 세상과 호흡해주게 하는 ‘시원적 북극성’과도 같은 존재다. 내 그림은 어머니를 향한 변하지 않는 사랑과 존경에 대한 무한한 표현이다.”
작가의 모친은 보자기를 즐겨 사용했다. 좁은 집에서 집기를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공간을 정돈하는 데 보자기만 한 게 없었다. 서로 다른 색들이 은은하게 번지며 색층을 완성하는 김미경(56)의 화면에 그리드가 나타나게 된 배경이다. 그리드의 보자기는 물건을 감싸면 명료하고 팽팽한 긴장을 이루던 모습을 이내 누그러뜨리고 여유를 갖추어 안도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데, 김미경에게 이러한 기억이 깊게 각인돼 있었던 것.

그는 캔버스 위에 아크릴물감과 아크릴 미디움을 섞어 평평한 도구와 붓을 사용해 짙은 컬러부터 옅은 컬러 순으로 단청의 오래된 색깔과 고려 도자기 빛깔, 자연의 유려한 색을 연상하는 색감을 아주 얇게 쌓아 올린다. 집요하리만큼 색층을 거듭하고 각 레이어를 샌드페이퍼로 정밀하게 갈아내어 겹과 층을 다시 한번 견고히 다져낸다. 간결하면서도 정교한 작업을 수십 번 반복하다 보면 작가 특유의 입체감과 시간성이 포개어지며 물성의 변환을 이뤄내는데, 이로써 기하학적 그리드가 화면에 나타나게 된다.
실제 김미경의 회화 세계에 있어서 그의 모친은 정신적 토대다. 작가는 어머니의 인생을 상징하는 ‘보자기’를 통해 모더니즘이라는 폭력의 긴장을 대화와 화해의 장(場, field)으로 전치시키고자 한다. 어머니는 타인이 아닌 자아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곧 나의 세계이기도 하다. 나의 작업은 나의 자아가 강렬하게 개입돼 있는 어머니의 역사로써 세계를 바라본 것과도 같다. 외부를 그린 그림인 동시에 나의 삶을 그린 셈이다.” 김미경은 모친의 삶을 북극성으로 삼는 동시에 이를 통해 외부 세계와의 매개체로 역할하도록 한다.
작가는 미국 뉴욕 파슨스 스쿨에서 회화를 전공한 이후,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전시 활동을 이어왔다. 2000년에는 실버마인 길드 센터에서 주관하는 ‘The Mary Vann Hughes Award’를 수상하는 등 은근하며 보일 듯말 듯한 그의 시적인 작품은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김미경 개인전 ‘Stratums 겹,층’이 부산 데이트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형태의 그리드의 층들이 포개지며 은유적, 추상적 표상을 품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다. 26일 오후 5시 오프닝 리셉션에서는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이 마련돼 그의 작업을 더욱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다. 전시는 23일부터 12월 22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