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문지,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한국미술 메신저 역할 할 것”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0.11.06 08:54

[백동민 퍼블릭아트 발행인]
창간 15주년… “미술정책 꼬집고 미술시장이 일상과 겹치는 지점 짚어왔다고 자평”
30인 현장전문가 제언 담은 ‘컬처레터, 한국미술에 바란다’ 출간

손안의 스마트폰에서 스크롤과 탭만으로 콘텐츠의 즉각적인 소비가 이뤄지는 디지털 퍼스트 시대에도 여전히 페이퍼 퍼스트가 건재한 곳 중 하나는 미술 전문지다. 미술계 특성상 전문적이고 심도 있는 긴 호흡의 콘텐츠에 대한 니즈와 더불어 기록과 아카이브에 대한 이해와 중요성이 타 분야와 비교해 월등히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잡지를 포함한 출판인쇄 매체 전반의 사양화, 미술계 이면의 열악한 환경 등은 굳이 열거하기 민망할 정도의 피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올해로 15년째다. 급변하는 미술시장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쉼 없이 동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온 현대미술 전문지인 월간 「퍼블릭아트」가 창간 15주년을 맞았다. 2006년 10월 창간해 예술성, 전문성, 공공성, 대중성을 바탕으로 미적 가치와 그 실현을 위한 자유로운 소통의 장을 만드는 데 앞장서 온 「퍼블릭아트」는 국내외 시각예술을 전문적으로, 때론 대중적인 관점에서 다루며 난해한 텍스트 위주에서 탈피해 차별화된 콘텐츠를 선보여 왔다.
 
최근에는 지난 3년간 연재해온 시리즈 ‘컬처레터_한국미술에 바란다’를 엮어 동명의 책을 발간했다. 21세기 동시대 예술의 최전선에 선 총 30인의 리더가 한국미술의 역사와 맥락을 짚어 제언하는 글을 담은 것으로, 비평가, 작가, 기획자, 행정가, 갤러리스트, 예술사업가 등의 현장 전문성과 분명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여타 미술 전문서적과 다르며, 한국미술이 처한 현실과 방향을 이해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너도나도 휘청이는 가운데, 「퍼블릭아트」는 이번 창간 15주년을 기념해 잡지 디자인과 레이아웃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기도 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가올 미래의 15년을 바라보는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투자인 셈이다.
 
미술계를 통찰하고 선도해온 「퍼블릭아트」의 지난 15년 행보에는 백동민 「퍼블릭아트」 발행인이 있다.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언론학을 전공한 그는 미술전문법인 ㈜아트인포스트를 창립하고 「퍼블릭아트」를 창간했다. 지금까지 미술관 운영과 미술시장 활성화, 공공미술 정책과 담론형성, 작가 발굴과 한국미술 세계화 등을 위해 힘써오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화부문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청주시립미술관 운영위원, 전남도립미술관 운영자문위원, ‘한국국제아트페어’ 운영위원, ‘대구아트스퀘어’ 조직위원, ‘부산국제아트페어’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백 발행인을 만나 「퍼블릭아트」의 지난 15년을 돌아보고, 그가 그리는 미래의 15년을 들어봤다.
 
백동민 「퍼블릭아트」 발행인 /퍼블릭아트
 
─창간 15주년을 맞이했다. 매체란 현장과 현실을 반영한 인사이트와 솔루션을 제시하고 미래를 향해 앞장서는 나침반으로써의 역할도 해내야 한다. 미술 전문지 발행인으로서 그에 대한 책임감이 클 것으로 짐작되는데, 국내 미술계에서 전문지의 임무와 현주소를 짚어본다면. 
 
“미술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도와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순간에도 마치 유동하는 생물처럼 다양하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미술 전문지는 그 움직임과 변화무쌍함을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소임을 한다. 미술관이 예술을 통해 감동을 주는 집이고 상상력 충전소라면, 미술 잡지는 일상 속에서 그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소유하고 영감을 주는 상상력 발전소쯤 되지 않을까. 아울러, 폭넓은 지식과 교양을 배울 수 있고 깊이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부커진의 역할도 수행한다.
 
사실 방송사와 신문에서는 문화예술 관련한 프로그램 편성과 지면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 아닌가. 이러한 상황에서 미술 생태계에 다양한 이슈와 정책, 제도에 대한 비판과 견제, 대안과 모색에 대한 언론의 역할, 담론을 생성하고 작가연구와 미술사까지 학술적인 책의 역할 그리고 새로운 융복합과 콘텐츠를 생산하고 인적네트워크와 커뮤니티의 기능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전문지의 임무는 대단히 광범위하다. 특히나 향후 팬데믹 이후 세계미술계가 점차 한국을 위시해 아시아 중심으로 변환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한국미술을 홍보하는 메신저 역할까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15년을 무사히 관통한 소회는 어떠한가. 「퍼블릭아트」의 다가오는 미래의 15년은 어떻게 내다보나.
 
“17년 전 유럽과 미주를 다니며 잡지에 대한 열망과 창간을 고민할 때 가족과 지인 모두 반대했지만,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고심 끝에 창간했다. 난해한 텍스트 위주에서 탈피해 타 매체와 콘텐츠‧비주얼 아이템 차별화를 지향하며 편집의 그리드를 깨고 시각예술 콘텐츠를 폭넓게 선보이고자 힘써왔다. 공공을 위한 문화예술 생태계를 가꾸고자 노력해 왔으며 창간 이래 정책과 제도, 산업과 시장이 현대인의 삶과 겹쳐지는 지점에서 미술 특유의 역동성과 구체성을 짚어왔다. 또 기존의 틀을 깨는 대담하고 도발적인 기획을 전문가들의 통찰로 풀며, 한국미술이 처한 현실과 방향을 직시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지금부터 향후 15년을 거치며 「퍼블릭아트」가 ‘현대미술의 기록’이자 ‘한국미술의 자존심’으로 자리매김하길 희망한다. 이를 위해 보다 더 예술성, 전문성, 공공성, 대중성을 균형 있게 맞추고 국제적 시야 확보 또한 중요하리라 사료된다. 이는 서구추종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미술과 함께 한국미술잡지의 위상과 글로벌을 꿈꾸며 도전하고 있고 ‘퍼블릭아트’란 영문제호도 그러한 의미로 출발했다. 코로나19 이후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미술관들이 국제무대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확보하고 있듯 「퍼블릭아트」 역시 뚜렷한 목표의식과 확장되는 언어로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각인될 수 있게 존재감을 다질 계획이다.”
 
 
─창간 이듬해부터 운영해 올해로 14회째를 맞이한 ‘뉴히어로 공모’는 국내 미술계의 대표적인 작가 공모전으로 자리 잡았다. 잠재력 있는 유망주를 발굴해 이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한국미술계 발전에 크고 작은 기여를 해왔다. 이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지금까지의 성과가 궁금하다.
 
“잡지 창간 전부터 국내 미술계 공모전에 대한 여론을 잘 알고 있었다. 청년시절에는 작가로서 공모전에 출품해 몇 차례 입상한 경험도 있고 이후에는 심사나 운영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모전의 빛과 그림자를 알게 됐다.
 
상이란 작가에게 창작에 대한 동기부여와 삶의 활력을 주는 건 분명하지만, 오랜 관행인 학맥과 화맥, 인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게 사실이고 심지어 공모전으로 장사한다는 비판도 많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기존의 공모 운영방식에서 벗어나, 참가비는 무료에 블라인드 심사제도를 도입해 이름, 경력, 평론 등을 배제하고 오롯이 작가 포트폴리오로만 심사하는 방식을 처음으로 시행했다. 나이 제한은 20세 이상이지만, 초기에 젊은 작가들이 주로 선정되다 보니 신인등용문이라는 오해가 생기고 중간에 작업을 중단하는 작가들도 생겨 유망작가 발굴과 함께 작품세계를 살피는 2차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됐다. 지난 14년 동안 131명의 작가를 선정고 이들 모두 현재 국내외 미술계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다행히도 지난 10년 사이에 많은 국내 공모전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며 변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3년마다 트리엔날레 형식으로 선정 작가들의 전시를 열고 있기도 하다. 파주 헤이리마을 15개 갤러리에서 동시에 전시하는 대규모 전시를 필두로 삼성블루스퀘어 네모에서 두차례, JCC미술관에서 한 차례 전시를 열었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예정됐던 전시를 취소하고, 대신 내년 상반기 청주시립미술관과 함께 협업 전시 형태로 개최하려고 한다.”
 
『컬처레터, 한국미술에 바란다』는 21세기 동시대 예술의 최전선에 선 총 30인의 리더가 한국미술의 역사와 맥락을 짚어 제언하는 글을 엮은 것이다. 윤진섭‧윤범모 외 28인 지음. 1만5000원 /퍼블릭아트
 
─지난 3년간 한국미술을 다양한 관점으로 관찰하고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는 시리즈 ‘컬처레터_한국미술에 바란다’를 연재해왔다. 미술계 내 다채로운 분야의 영향력 있는 인물을 필진으로 섭외해 가감 없는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책으로 엮어낸 소감은.
 
“평소 한국미술계에 구심점, 여론과 의견의 집합체와 같은 기구가 없어 미술진흥이 뒷전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짚고 한국미술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필진을 구성했다. 사조나 인물을 중심으로 다뤘던 기존 미술책과는 달리, 이 책은 비평가, 작가, 기획자, 행정가, 갤러리스트, 예술사업가 등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기조도 세웠다. 이 시리즈는 2017년 6월 시작해 지난 6월 종료되기까지 매달 한 명씩, 총 30인의 필자가 각자 자유롭게 화두를 정해 의견을 던지는 방식으로 연재됐다. 때마침 잡지 창간 15주년 이벤트를 고민하다가 이들 칼럼을 일과성 기록으로 끝내는 것보다 단행본으로 엮어야겠다고 생각해 책으로 발간하게 됐다.
 
책이 출간된 이후,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미술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책이 회자되며 기대 이상의 호응을 받고 있는 것에 좀 얼떨떨하다. 이런 현재진행형 가치관과 혜안을 담은 이 책이 시리즈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응원도 적지 않다. 하여 또 다른 필진들로 구성한 속편을 고민 중이다.”
 
─시리즈에 직접 참여해 공공미술을 전체 관리·감독할 수 있는 정부 기관의 신설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실제 「퍼블릭아트」의 제호 자체도 공공미술이란 뜻을 담고 있는데, 칼럼에서 언급한 공공미술기관 신설에 대해 첨언한다면.
 
“‘퍼블릭아트’는 1967년 영국 미술행정가 존 윌렛이 저서 ‘도시속의 미술(Art in a City)’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대중을 위한 미술을 뜻하는 용어로, 소수 전문가에 국한된 예술행위에 대한 일반 대중의 미술을 대변하는 의미로도 사용되며, 공개된 장소에 설치되는 작품을 총칭하는 개념으로도 알려진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공개된 다양한 작품을 공공재로서 공공미술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정부시절에는 문화예술청의 신설을 주장한 적이 있었다. 문화재를 다루는 문화재청처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독립해 규모는 작더라도 문화예술만 전문적으로 집중적으로 다루는 기관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주장했던 건데, 이번에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공공미술기관을 신설하자고 의견을 냈다.
 
위에서 말한 공공미술의 정의 외에도 1972년 도입돼 1995년 시행된 건축물 미술작품제도 또한 공공미술로 칭한다. 이러한 제도가 도입된 지 48년, 시행한 지 25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시민의 안목과 문화적 욕구는 높아가는 데 비해 미술품 심의 등과 관련해 많은 논란과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어 시대에 걸맞은 제도적인 개선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책 제목과 같이 한국미술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
 
“사실 ‘한국미술에 바란다’는 한국미술에 말하고 싶은 나의 속내 그 자체다.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았기에 미술계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현장전문가의 목소리를 빌려 지난 3년간 칼럼으로 다룬 거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선례가 없으면 행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정책이나 사업을 추진하길 꺼리는 듯하다. 해외 선례는 많지만, 미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혹은 시급한 현안이 아니라고 판단해서인지 미술과 관련한 정책 마련과 제도개선은 늘 뒷전이기만 한 것 같아서 아쉬움이 큰 만큼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다.
 
우선, 미술이 산업적, 직업적 분류로 인정받아 창작자, 기획자들의 고용안정과 함께 문화예술진흥법과 표준계약서 정착 등으로 창작활동이 활발해지길 바란다. 현재 미술시장은 크게 옥션 중심의 경매, 화랑 중심의 아트페어, 건축미술품 제도의 공공미술로 나뉘는데,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게 조세제도, 기부제도, 미술은행제도, 공공미술제도, 감정제도 등 각종 제도가 우선 개선돼 시장이 공신력을 가질 수 있길 희망한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의무교육 시 기초예술교육과 미술교육 진흥에 힘써야 한국미술이 해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믿는다. 어려서부터 미술교육을 받고 성장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미술관과 갤러리를 일상적으로 다니고 옥션이나 아트페어에서 미술품을 구입하는 게 삶의 일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할아버지가 미술관에 기증한 소장품을 감상하며 자부심을 느끼는 손자가 더욱 흔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