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0.08 17:15
‘폐허’가 ‘페어’로…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컨테이너 창고
윤기원, 성태진, 문기전, 박정용 등 작가 14인 120점 내걸려
마을 담벼락 따라 위트 있는 벽화 산책길도 조성
강원도 문막에서 11일까지
조용하고 한적한 농촌 마을 곳곳이 예술로 물들었다. 골목 담벼락은 벽화로 채워지고 창고는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박람회장이나 화이트 큐브가 아닌, 강원도 원주시 문막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페어 ‘후용아트폐허’의 모습이다. 금빛으로 물든 벌판 옆에 자리 잡은 평범한 컨테이너 창고를 들어서면 생각지 못한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높은 층고 벽면 가득 120점이 훌쩍 넘는 작품이 설치돼 있고 이는 2층 전시장으로 이어진다.


기존 아트페어의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과감한 실험적 시도와 새로운 대안적 행보를 보이는 ‘후용아트폐허’가 7일 강원도 원주시 후용마을에서 개막했다. 이날 개막식 겸 아트토크 프로그램인 ‘아츠링크’가 열려 이를 보기 위해 서울 등지에서부터 찾아온 관람객과 미술애호가들로 창고가 북적거렸다. 실제 서울에서부터 원주까지는 기차, KTX, 고속버스 등 대중교통편이 잘 마련돼 있으며, 소요 시간도 1~1시간 30분 남짓 정도로 접근성도 좋다.


‘페어’와 ‘폐허’의 비슷한 발음을 활용한 재치 있는 이름은 본래 행사의 취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올해 3회째를 맞은 ‘후용아트폐허’는 2016년 농촌 마을의 빈집에서 최초 행사를 개최하며 출범했다. 예술과는 언뜻 거리가 멀어 보이는 폐허를 예술 작품으로 수놓고 채워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선보여 미술계 안팎으로 화제가 됐었다.
미술품이 꼭 갤러리나 미술관에 걸려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지역에 방치된 공간을 전시장으로 변모시켜 대중과 긴밀히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기존 아트페어를 역설적이고도 위트 있게 재해석한 것으로, 버려진 공간에 예술로써 생명을 불어넣고 더 나아가 지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행사 1회 때 전시장으로 이용된 빈집들은 현재 새로운 주민들이 들어와 살고 있으며 동네에 빈집은 더 없단다.

아트페어가 열리는 창고는 평상시에는 작가들의 작업실로, 더불어 전시, 컨퍼런스 등을 위한 프로젝트 공간 ‘아트팩토리 후’로 기능한다. ‘후용아트폐허’를 기획한 윤기원 작가는 2007년부터 폐교가 된 초등학교를 시각 예술가를 위한 창작 공간으로 조성해 전시, 오픈 스튜디오, 레지던시, 예술교육 등을 진행해왔다. 이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마을 창고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고 아트폐어를 함께 개최하며, 지역에 거점을 둔 미술 창작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미술 작품이 소개되고 유통되는 새로운 아트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힘써오고 있다.
이번 아트페어에는 강지만, 김민경, 김용석, 김춘재, 문기전, 박정용, 박정원, 박종화, 박흥선, 성태진, 신창용, 윤기원, 이수정, 이재열 등 개성 있는 고유의 작업 세계를 인정받은 젊은 작가 14인이 참가했다. 장르, 사이즈 등 다채로운 작품이 내걸려 보는 볼거리를 더하며, 가격대는 10만부터 2000만원까지 폭넓다. 특히 ‘50만원 특별전’이 따로 열려 아트 컬렉터 초심자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전시장을 벗어나 야외에서 산책하며 골목 담벼락을 따라 그려진 벽화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기자기한 캐릭터나 캠페인성 메시지를 담는 기성 공공벽화와 달리 유머러스하고 흥미로운 공공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윤기원 작가는 “기존 공공벽화의 개념에서 벗어나 작가의 작품이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가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현대미술의 화두 중 하나인 공공미술과 예술, 대중 간의 경계를 허물고 이를 통해 대중 영역에서의 미술시장 활성화와 더불어 국내 작가들의 창작활동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벽화는 총 9점이다.
코로나19로 아트페어가 온라잉뷰잉룸으로 대체되는 시기에 직접 현장 관람할 수 있는 ‘후용아트폐허’는 11일까지 열린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활짝 열고 있어 주말 나들잇길에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맑고 선선한 가을 날씨와 함께 평화로운 농촌 마을에서 작품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트팩토리 후: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비야동길 10-12 나동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