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울가의 아뜰리에 일기⑨] Green Point 작업실 앞

  • 아트조선 한아리 에디터

입력 : 2020.09.10 13:55

◆[최울가의 아뜰리에 일기]는 작가의 작품과 작업 세계에 영향을 주었던 일상의 기록을 소개하는 코너로 Art Chosun에서 매주 2회 (화,목) 총 6주간 연재됩니다.
Black Series [Brooklyn Red-015] 183x183 cm Oil on canvas 2020
 
작업실 앞 아이스크림 집 앞으로 늙은 여인이 천천히 걸어간다. 주인도 늙은 개도 천천히 걸어간다. 일본인과 스페인 사람들이 일 하는 건물 창문도 쉬듯이 말이 없다. 천국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라 생각되는 오후, 붉은벽돌 흰 간판에는 ‘Green Point Manufacturing’이라고 쓰인 글자마저도 천국인 듯 한가롭다. 여러 대의 요트가 묶여있는 허드선 강 앞에는 턱수염과 머리를 빡빡 밀은 중늙은이가 급하고 요란하지도 않은 얘기들을 하는 듯 느린 포즈다. 바람은 작업 때문에 흐른 땀을 씻어주듯 서늘한 가을바람이 목덜미에 사롯이 스친다. 검은 닥스훈트 3마리를 데리고 산책 나온 세 사람의 백인들이 좁은 잔디밭 위에 생리를 시키러 나온 듯 엷고 간편한 차림이다. 아마 이 동네 사람일 것이다. 옆 벤치에는 인디언 여자가 알아듣기 힘든 남미식 영어로 열심히 통화하고 있다가 강가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나와 그다지 인연이 깊지 않은 어떤 환경 때문인가? 도대체 나의 이런 순간의 행복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방인? 그렇다. 이곳은 정치도 이곳의 경제도 사회도 혜택받지 못하는 병자의 애처로움. 친구를 배신하고 재산을 가로챈 얘기도 나는 그저 방관만 할 수밖에 없는 이곳 사람들의 언어 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사연과 얘기들을 알지 못하기에 바람도 구름도 푸른 하늘도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그저 눈물 나도록 고맙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느껴지는 건 어제나 오늘이나 내가 이방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사람이 천국을 가기를 바라지만 나는 훗날 지옥으로 갈 수 있는 티켓을 사고 싶다. 할 일 없이 무료하고 끝없이 행복감만 맛볼 수 있다면 차라리 몸서리치도록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늘 싸우고 투쟁하고 헐뜯고 나보다 잘 나고 잘 사는 사람은 끌어내리고 인맥이나 간판이 모자라면 쳐지고 비웃고 넘치게 갖고 있어도 욕심의 끝에 도달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끝없는 경쟁 속 대결 구도 속에서 오롯이 존재해야만 하는 사회. 욕망이 언제나 도사리고 숨소리마저도 계급이 있는 그 땅은 정말 아이러니한 지옥, 그곳은 언제나 슬프고 통곡이 존재하는 곳 뵈지 않는 경쟁이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존재하는 곳. 얼키설키 연결된 가족들과 주변의 대인관계는 곧 그곳이 치열하게 지옥에서 살아가야만 되는 우리의 본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지만 떠나있으면 제일 그립고 가고 싶은 곳이 그곳이다. 허드선 강 위에는 저녁 하늘이 붉게도 내려않는다. 어두워지는 듯 멀리 시티뱅크의 높은 건물에 유리창에 불이 들어와 더욱더 뜻도 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거리에서 내가 울어봤던가? 소리내 그리워해 봤던가?  사무치게도 사랑해본 일이 있는가? 레스토랑에서 새어 나오는 향기롭고도 비릿한 베이컨 굽는 냄새 속에서 얼마나 이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었던가 ?
얼마나 존재성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는가. 나는 어쩌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천국과 지옥을 같이 겪을 수 있는 그곳을 지금의 여기보다 나의 골격이 태어난 거기보다 본능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그곳. 언어가 없는 그곳. 가질 필요도 없는 그곳. 슬프지도 않으면서 겨우 시원함만을 느낄 수 있는 어디든 땀을 흘리고 욕심 없는 잠자리에서 하루를 쉬고도 곧 떠날 수 있는 그런 곳.
전쟁보다도 부자보다도 지식보다 능력보다 민족보다 용감하고 비겁함보다 그런 것과는 무관한 빛의 태양을 느끼고 푸르름을 느끼고 남색 빛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언어로 느끼지 말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그곳 !
꿈꾸는 천국은 가을의 오후 코스모스 꽃길 속에 숨어있는 마른 공기 또 그 빛의 색깔들 그리고. 이 세상의 지고 떨어지는 모든 나뭇잎과 지는 꽃의 전설까지도 슬퍼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곳. Behind the world. 하지만 브루클린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보다도 더 값진 우월함이 존재하는 이 시간 나는 저녁 허드선 셋강 앞 벤치에 누워 꿈이 아니길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