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 모든 게 짓궂은 만우절 장난이면 좋으련만

  • 윤다함 기자

입력 : 2020.09.04 18:41

[어윈 올라프]
팬데믹 관통하며 느낀 공포, 광대 분장으로 표현
“미지의 바이러스에 전복당한 인간의 유한성 드러내”
개인전 ‘2020년 만우절’, 30일까지 공근혜갤러리

 
기원전을 뜻하는 B.C.(Before Christ)를 본떠 코로나19 이전의 세상, 즉 ‘비포 코로나(Before Corona)’란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코로나 팬데믹은 전 세계인의 일상을 한순간에 뒤바꾼 역사적 기점으로 언급된다. 매일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됐던 이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가늠이 어려울 만큼 긴긴 코로나19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면 좋으련만.
 
코로나19 사태가 만우절 장난처럼 짓궂은 거짓말이길 바라는 마음은 어윈 올라프(Erwin Olaf·61)도 같다. 그는 광대 분장을 하고 직접 모델이 돼 카메라 앞에 섰다. 올라프의 최신작 <2020년 만우절(April Fool 2020)>은 현 사태가 만우절 거짓말같이 얄궂은 해프닝에 지나길 소원하는 작가의 자화상이자 감정의 기록이다. 화면 속 올라프는 새하얀 창백한 얼굴에 뾰족한 고깔을 쓰고 절망적이고 허망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거나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린 채 등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하루아침에 파괴된 보통의 삶을 그리워하고 코로나 사태를 두려워하는 우리네 모습이기도 하다.
 
April Fool 2020 9.55am ⓒErwin Olaf, 공근혜갤러리
어윈 올라프 개인전 ‘2020년 만우절’ 전경 /공근혜갤러리
 
“팬데믹이 발생한 후 첫 주는 생전 겪어보지 않은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에 말 그대로 거의 마비가 된 느낌이었어요. 어느 날은 식료품을 사러 슈퍼마켓을 찾았지만 제가 정작 사러 온 쇼핑목록의 절반조차도 살 수 없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제품도 서둘러 구입해야 했죠. 사람들 모두 큰 공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고깔을 쓰고 대머리 광대 화장에 새하얗게 질린 얼굴은 지금껏 저 자신이 느껴본 적 없는 공포를 상징해요. 사진 속 광대는 ‘어윈 올라프’가 아닌, 한 노인이 전례 없는 코로나에 전복당한 세상을 살아가며 느끼는 두려움을 나타낸 거죠.”
 
선천성 폐 질환을 앓고 있는 작가에게 코로나는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이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그는 고향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자신이 직접 작품에 출연해 현실감을 더한다. 자신을 전체 작업의 주인공으로 해 감정의 표현을 더욱 극대화한다. 특히, 이번 신작은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이 실시되기 직전 작업됐다. “만약 제가 아닌, 모델을 고용해 촬영했다면 애초에 작업이 불가능했을 거예요. 락다운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촬영했기 때문에 시간도 굉장히 촉박했거든요. 제가 직접 하면 되니, 감정의 핵심을 모델에게 주문할 필요가 없었죠.”
 
April Fool 2020 10.15am ⓒErwin Olaf, 공근혜갤러리
 
‘만우절’ 연작은 저마다 시간을 타이틀로 달고 있는데, 이는 실제 작품 시리즈가 서사를 지니고 오전 9시 15분부터 11시 30분까지 시간순으로 흘러가는 걸 보여준다. 하얀 위생 장갑을 낀 올라프 자신이 텅 빈 주차장에서 카트를 끌고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가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상점에 도착한 그는 사재기로 텅 비어버린 상품 진열대 앞에서 절망과 공포를 느낀다. 계산대에 혼자 앉아있는 직원은 투명 아크릴로 된 차단막 뒤에 무표정하게 앉아 손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하나같이 만우절 거짓말에 속아 바보가 된 광대 차림이다.
 
April Fool 2020 11.15am ⓒErwin Olaf, 공근혜갤러리
 
오전 10시 15분, 올라프는 텅 빈 암스테르담의 한 공원 벤치에 쓸쓸히 홀로 앉아 있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와 단절되고 격리된 우리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전 11시 15분, 작업실로 돌아온 작가가 카메라 삼각대를 세워놓고 자신을 직접 촬영한다. 렌즈를 보고 있지 않고 뒤돌아 이마를 벽에 기댄 모습에서 절망이 느껴진다. 바이러스에 일상이 무너지는 인간의 나약함과 유한성을 읽을 수 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가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며 직접 느끼고 목격한 두려움을 포착한 신작을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선보인다. 음울한 검푸른 빛이 전체적으로 휘감으며, 외출을 금지당하고 직장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코로나 블루를 시각화한 사진 10여 점과 3개의 패널로 구성된 영상 작품도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이후 파리, 뉴욕, 런던 등으로 순회할 예정이다. 작품은 갤러리 홈페이지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30일까지.
 
어윈 올라프 개인전 ‘2020년 만우절’ 전경 /공근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