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울가의 아뜰리에 일기⑦] 길 잃은 예술

  • 최울가 (서양화가)

입력 : 2020.09.01 10:00

◆[최울가의 아뜰리에 일기]는 작가의 작품과 작업 세계에 영향을 주었던 일상의 기록을 소개하는 코너로 Art Chosun에서 매주 2회 (화,목) 총 6주간 연재됩니다.
최울가 < White play series [new freedom 011] > 122 x 152 cm oil on canvas 2018
 
대체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5가지 정도 된다고 한다. 첫째는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이 하는 일이다. 둘째 임금이 되는 것도 하늘이 하는 일이요, 큰 부자 역시 하늘이 그리고 주택 복권에 당첨되는 것도 하늘이 한다. 큰 예술가 또한 하늘이 만들어낸다.
 
말똥을 치우던 프랜시스 베이컨, 타히티의 정글 속에서 숨진 고갱, 길거리에서 마약에 절었던 바스키아, 권총으로 목숨을 끊은 고흐... 정말 수도 없는 화가들과 예술가들이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탄생 되었던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김환기 선생님이 그때 뉴욕의 빈센트 병원 침대에서 떨어져 신장염 파열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모딜리아니가 자기 부인의 아버지가 청탁으로 사람을 시켜 죽이지 않았다면 모든 게 하늘의 뜻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수많은 작가가 개미 떼 기어오르듯이 높은 곳을 향하여 봐도 당대에서 느낄 수 있는 수확은 미미하기만 하다. 노력으로 뭔가 이루어진다면 누가 아니 될 수 있으랴. 그러니 우리 예술가들은 그냥 주어진 대로 물 흐르는 대로 가면 그만인 것이다. 사후에 일은 또 다음 산자의 몫이다.
 
얼마나 많은 예술가가 질투와 시기, 욕망으로 싸우고 있지만 결국에는 다 소용없고 부질없는 행위의 찰나이다. 조금이라도 활동하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얼굴을 내밀지 않으면 왠지 빠지고 소외당하고 도태당하는 느낌. 그 때문에 끝없이 좌절해 보지만 정말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냥 부딪침 없이 자기의 길을 찾아서 순간순간 하는 일의 재미를 맛보면서 간다면, 즐기면서 일할 수 있다면 지난 과거나 미래에 매달려서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든 꽃이 그렇듯이 이름이 붙여지기 전에는 그냥 꽃에 불과하다. 그 이름은 하늘이 정해준다. 뒤돌아보지 말고 그냥 똑같은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허드선 강은 나를 그런 삶에서 내려오라는 듯이 오늘도 그렇게 흐른다. 9ㆍ11이 있었던 후로 뉴요커들의 삶은 바뀌었고 나 역시 그러했다. 그렇게 큰일도 잊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야 한다는 것에 두려움과 절망이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게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다. 두근거림도 없었다. 조급함과 욕심, 욕망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잠잠해져 옴을 느꼈던 그때, 여태껏 나는 내가 나의 의지로 여기까지 온 것인 양 착각했지만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떤 부류가 되더라도 이제는 울부짖지도, 좌절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거다.
 
지하철 42가에서 스치는 살아남은 수많은 영혼들 사이에 우두커니 그냥 생각 없이 한참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