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ending Light > 展

  • 아트조선 한아리 에디터

입력 : 2020.08.10 15:36

●전 시 명 : < Bending Light >
●전시기간 : 2020. 6. 5 ~ 8. 14
●관람시간 : 화 ~ 토 오전 11:00 ~ 19:00
●전시장소 : 페이스 갤러리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62)
●휴 관 일 : 일요일
●문     의 : 02-790-9388
●출품작가 : Dan Flavin, James Turrell, Peter Alexander, Robert Irwin
 
Bending Light_Install Views
 
빛을 주요 매체로 하는 작품을 한 자리에 모은 전시 <Bending Light>는 세 명의 캘리포니아 출신 작가, 피터 알렉산더(Peter Alexander), 로버트 어윈(Robert Irwin),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과, 이들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미국 동부 해안 출신 작가 댄 플래빈(Dan Flavin)의 작품이 보여주는 밀접한 연관성을 기록한다. 이 전시는 1960년대부터 캘리포니아 남부를 중심으로 진행된 Light and Space 운동을 이끈 세 작가의 근래 작품을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미니멀리즘 예술의 거장 플래빈의 1984년 설치 작품과 함께 선보이며, 이들이 공통적으로 탐구했던 공간과 지각에 대한 예술적 접근을 조명한다. 이 전시는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6월5일부터 8월14일까지 이어진다.
 
Bending Light_Install Views
 
이 전시는 1960년대부터 캘리포니아와 뉴욕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나 기록되지 않은 예술가들의 교류에 경의를 표하며, 피터 알렉산더의 2019 년 캐스트 우레탄 조각품과 로버트 어윈의 같은 해 작품인 ‘불꺼진(unlit)’ 형광등을 선보인다. 이와 함께 제임스 터렐의 2018년 설치 작품이 옆 벽면에 함께 전시된다. ‘빛과 공간’의 예술을 대표하는 이 세 작가의 작품은 갤러리 한쪽 모서리에서 빛을 발산하는 플래빈의 1984년 형광등 설치 작품과 함께 전시를 구성한다. 각각의 작품은 스스로 공간을 밝힘과 동시에 주변에 설치된 다른 작품들을 비추며 – 실제로도 그리고 은유적 의미에서도 - 미국 서부와 동부 해안가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이 60년대부터 수십 년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 받게 한 공통의 미적 주제를 드러낸다.
 
Peter Alexander < Makes Your Mouth Water > 195.6×81.3×3.8cm Urethane 2020 ©Peter Alexander
 
피터 알렉산더의 캐스트 우레탄 조각품은 빛을 내뿜기보다는 흡수하고 반사 시키는데, 그 효과는 빛을 발산하는 다른 작품들과 동일하게 단일하고 미묘한 시각적 존재감을 통해 언어를 무력하게 만든다. 기하학적인 견고함 속에 기적적으로 응결된 액체의 색을 암시하는 듯한 그의 작품들은 빛을 사로잡아 흐릿한 내부 공간 속으로 부드럽게 끌어안았다가 다시 이를 신기루같은 빛의 확산 속으로 놓아주며 딱딱한 모서리의 경계를 풀어버린다. 빛을 투영하는 그의 오브제들은 다양한 면에서 그의 1960년대 조각품의 연장선에 있다.
비평가들은 레진으로 만든 그의 초기 작품들이 로스앤젤레스 하늘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 스모그 때문에 더 아름답게 보이는 강렬한 색감의 노을이나 물 위에 비친 해안의 창백하고 차가운 톤의 구름 또는 안개 같은 - 빛의 순간적인 성질을 담고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하곤 했다.
 
물과 빛이 만드는 시각적, 현상적 효과는 알렉산더의 작업에서 언제나 중요한 요소였다. 그는 서핑보드를 제조할 때 사용하는 레진을 틀에 붓는 기법을 초기 작업에 사용했는데, 당시 그것은 작가로서 다소 반항적인 행동이었다. 알렉산더는 “그 당시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미술로 취급되지 않았다. 미술사에서 재료로 언급된 것들만 미술 재료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플라스틱을 좋아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것이 소위 ‘반미술적(anti-art)’이었기 때문이었다...나는 서핑보드에 광택을 내곤 했는데, 그러다가 레진을 떠올리게 됐다.”라고 말했다.
 
James Turrell < Atlantis, Medium Rectangle Glass> 142.2×185.4cm L.E.D. light, etched glass and shallow space 2019 ©James Turrell
 
1960 년대 중반, 레진과 플라스틱은 캘리포니아 남부의 항공 및 방위 산업과 밀접하게 관련된 흥미로운 초현대적 재료로 받아들여졌다. 터렐은 항공기 엔지니어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항공술과 항공산업에 일찍이 노출된 터렐은 16살 나이에 파일럿 자격증을 땄다. 후에 예술가로서 그의 작업은 그의 표현을 빌어 “하늘에 서식한(inhabiting the sky)” 경험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 이 표현은 소형 항공기를 조종하면서 대기를 통과해 “날아오를(soaring)” 때 느낄 수 있는 총체적인 감각 지각을 일컫는 작가의 표현법이다.
 
터렐은 1967년부터 전구 하나가 주는 약간의 물질적인 지원 마저도 꺼려가며, 오로지 빛만으로 공간 속에 발광하는 형상을 투사하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Atlantis, Medium Rectangle Glass> (2019)는 오브제를 탈물질화하여 순수한 빛의 경험으로 만들어냄으로써 하늘이 가진 색채의 경이로움을 담고자 하는 작가의 일생에 걸친 관심과 헌신을 보여주는 시리즈 작품 중 하나이다. 갤러리 벽에 만들어진 빛을 뿜어내는 출입구처럼 보이는 터렐의 작품은 천상의 태피스트리처럼 계속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하늘을 나타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광채를 이용한다. 퀘이커교 신자인 터렐에게 빛을 사용한다는 것은 명상이자 깨달음을 주는 것, 초월적인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Robert Irwin < Belmont Shore> 241.9×182.9×12.1cm Shadow + Reflection + Color 2018 ©Robert Irwin
 
1950 년대부터 로버트 어윈의 작업은 주로 빛이 인간 지각–그가 “무한한 질감을 가진 인간 존재의 들판(seemingly infinitely textured field of our presence in the world)”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의 근본 조건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확장하며, 드러낼 수 있는가 탐구하는 방식으로 미술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해왔다. <Belmont Shore> (2018)는 불이 켜지지 않은 형광등을 세로로 나란히 배치하여 거치대 없이 벽에 바로 설치하는 그의 최근 시리즈의 일부이다. 불이 켜지지 않은 형광등은 투명한 색의 젤로 덮여 있고, 각각의 등은 “빈” 벽 위 각기 다른 간격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그 간격들 중 일부는 연한 회색으로 칠해져 있다. 색이 칠해진 또는 비어있는 간격 위로 진 그림자와 반사되는 빛이 형태와 바탕에 대한 관객의 감각을 교란시키고 – 무엇이 촉각적이며 무엇이 단순히 시각적인 장치인지, 무엇이 평평하고 무엇이 튀어나와 있는지, 무엇이 투명하고 무엇이 불투명한지, 무엇이 견고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지 - 오브제와 배경 사이의 경계 지각을 흐트러뜨리며 관객의 시야에 리드미컬한 반향을 선사한다.
 
Dan Flavin < Untitled > 121.9cm Blue and red fluorescent light 1984 ©Dan Flavin
 
불 꺼진 전등을 활용한 어윈의 혁신적인 작업은 플래빈이 지각 효과를 위해 형광등을 작업에 활용된 지 몇십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1980년대 설치작업에 형광을 서로 대비되는 방식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어윈에게 빛은 끝을 위한 수단이었지만, 플래빈에게 빛은 끝 그 자체였다. <Untitled> (1984)는 플래빈의 전성기인 80년대 중반에 제작된 형광등 설치작품 중 단연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호화로운 분위기가 관찰되는 후기 작업으로 전환되던 시기에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 빛은 회화같은 존재감을 가지면서 동시에 공간적이며 조각적인 오브제로서 작용하며, 작품 뒤 모서리 공간에 시각적 환영인 마름모꼴의 불빛을 만들어낸다. 플래빈의 이 작품은 발광하는 강렬한 색상으로 공간을 가득 메운다. 34년 뒤에 만들어진 어윈의 <Belmont Shore>와 근접한 곳에 설치되는 이 작품은 빛을 정반대의 방식으로 활용한다. 플래빈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환영(illusory)의 오브제를 만들기 위해 빛을 발산했다면, 어윈은 주변에 존재하는 빛을 끌어모아 작품의 사물성(objecthood)을 지워버리고 작품이 설치된 방안의 환경을 지각 경험의 공간으로 활성화시킨다.
 
 
전시 <Bending Light>의 네 작가를 연결하는 주제는 이처럼 - 주변의 빛이 됐든 작품 자체가 내는 빛이 됐든 – 광휘를 사로잡아 재배치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광휘란 빛나는 물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색과 지각 인식을 위한 촉매제로서 빛도 포함한다. 플래빈과 같이 이미 널리 알려진 미 동부 해안 미니멀리즘 예술가들에게나, 비슷한 시기에 캘리포니아에서 등장한 ‘빛과 공간’의 예술가들에게나, 빛의 현상적, 경험적 성질은 언어로 절대 압축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존재의 절대적이고 순수한 형태이자, 언어적, 개념적설명에 선험 하는 시각 경험의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성질을 나타낸다. 언어를 완벽하게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는 인간 지각보다 상당히 멀리 뒤떨어져 존재하며 작품을 직접 경험하는 것의 한참 뒤에서 쫓아오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