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7.29 23:08
[이광기]
일산 구도심 뒷골목에 개관한
아트 스페이스 ‘문화공간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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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고 왜 이렇게까지 하냐며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분들도 있었죠.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답했어요. 내가 즐겁고 재밌으니까 한다고. 하하”
웬만한 미술인 저리 가라다. 연기자보다도 이제는 문화예술기획자로 더 익숙한 이광기(51)는 2년째 갤러리·문화복합공간을 운영해오며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를 기획하고, 그것도 모자라 매주 유튜브로 생방송 미술품 경매를 직접 진행하며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알리는 데 여념이 없다. 2000년경부터 컬렉터로서 미술과 인연을 맺은 그는 이후 미술품 자선 경매와 전시 기획 등을 통해 반경을 점차 넓히며 미술계에 존재감을 각인했다. 또한 다수의 전시 경력을 지닌 프로 사진작가로, 생명과 죽음을 모티브로 한 꽃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연기에 이어 미술에까지 그야말로 올인한 그가 최근 경기 고양시 일산역 근방에 새로운 갤러리 ‘문화공간 끼’를 차렸다. 2년 전 경기 파주에 오픈한 ‘스튜디오 끼’에 이은 두 번째 공간이다. 고양시의 옛 중심인 일산역과 일산시장 번화가 뒷골목의 주택과 초등학교 사이에 자리 잡았다. 조용한 주거단지에 이광기가 운영하는 세련된 갤러리가 들어섰다는 소식에 동네 주민들이 오가며 자연스레 전시장에 발을 들이는 일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미술이 낯설든 익숙하든 누구나 편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생활 속에서 예술을 향유했으면 한다는 이광기의 뜻이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주택을 개조해 만들어 전형적인 화이트큐브와는 구별되는 ‘문화공간 끼’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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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에다가 새 공간을 마련한 이유는.
“일산에 20년째 살고 있다. 지금은 신도시 쪽에 살지만,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시간 날 때마다 친구들과 일산역 근처에 놀러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동네가 나한테 친근하기도 하고, 주변에 일산시장이란 재래시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정겹더라. 이런 예스러움에 마음이 끌렸다. 이렇듯 이곳만의 문화적, 도시적 가치가 있는 아날로그 감성을 잘 살려 이태원 경리단길처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특히 바로 역이 있으니 접근성도 좋아 복고 문화를 즐기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도 어필할 수 있겠더라.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묘한 문화예술 거리를 조성하고자 한다. 미술 전시뿐만 아니라 문화 공연, 마켓 등의 콘텐츠를 재래시장과 어우러지게 꾸리고 싶다. 도시재생프로젝트라고 하지 않나. 문화공간 끼를 기점으로, 젊은 아티스트들과 소상공인의 활기와 에너지가 이 거리에 가득 찰 날을 기다리고 있다.”
─갤러리가 뒷골목 주택 단지 사이에 자리 잡았다. 주민들 반응은 어떤가.
“처음엔 이곳에 내가 뭘 차린다고 하니까 주변 상권에서 경계하기도 했다. 혹시나 자신들과 업종이 겹쳐 피해를 볼까 우려했던 거다. 전혀 그런 거 아니라고 염려 놓으라고 했다. 이 근방에 갤러리가 전무하다. 예술이나 작품이란 것 자체에 낯설어하는 어르신들도 더러 있다. 반대로, 그동안 니즈는 있었지만 주변에 이러한 문화공간이 없어 즐기지 못했던 분들이 반갑게 찾아주시기도 한다. 토착민들은 새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예술로써 얼마든지 허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전시도 열지만 동네 분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기능하고 싶다. 지난 주말에는 주민자치위원회 행사 장소로 내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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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전으로 8월 20일까지 ‘조셉 초이’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봐 온 작가다. 추상과 구상을 경계 없이 넘나드는 그의 화풍을 좋아한다. 작품 판매에 연연하지 않고 다른 화랑에서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작품을 다루고 싶었다. 최근 들어 무의식적으로 작업하는 추상 화면 위에 인물과 신체 레이어를 쌓아 올리는 게 참으로 흥미롭더라.”
안현정 미술평론가는 이번 조셉 초이의 전시 서문을 통해 “마음이 추구하는 바가 기계미학으로 손쉽게 표출되는 시대, 작가는 그리는 행위가 추구해온 원형성에 주목한다. 표정을 감춘 듯한 다층의 얼굴들, 신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오가는 독특한 인체구성이 타고난 손의 감각으로 써내려간 한편의 즉흥 시(詩)로 표출되어 보는 이를 전율케 한다. 그럼에도 즉흥적으로 써내려간 초현실적 인체는 21세기의 감각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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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홍보하는 데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앞으로 어떤 작가와 작품을 선보일 계획인가.
“문화공간 끼가 숨은 작가를 발굴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한국화 전시와 허보리 작가의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또한 경기문화재단 ‘아트경기’와 협업을 이어오고 있는데 하반기 중에는 아트경기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려고 한다. 작가 발굴과 홍보는 유튜브 라이브 경매쇼에서도 병행하고 있다.”
─매주 온라인 스트리밍 경매 ‘끼옥션’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 반응이 꽤 뜨겁던데.
“경매 방식을 차용한 작가와 작품 홍보 채널이라고 보면 된다. 보통 1시간30분 가까이 진행되는데, 작품은 네 점 남짓 준비해 경매를 진행한다. 긴 시간동안 작가들 소개하고 작업세계 설명하는 게 대부분이고 비딩하는 건 순식간이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가성비 없는 경매’라고 부른다.(웃음) 좋은 작가와 작품을 알리는 데 목적이 있고 경매는 그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라이브 채팅창으로 비딩하는데, 스트리밍 지연 시간이 20초 정도 있더라. 20초를 타이머로 따로 재면서 그 안에 들어와야 하는 거다. 아트경기 선정 신진작가 박정우 작품은 1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하는 등 젊은 작가들에게도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근엔 위탁 작품들도 들어오기 시작해 더욱 다양한 출품작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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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판을 키울 생각인지. 향후 계획은.
“궁극적으로는 미술의 저변 확대다. 오프라인 공간을 더 키울 생각은 없다. 갤러리가 몇 개 있고 얼마나 크냐가 중요한 건 아니더라. 7:3 비율로 온라인에 집중하고자 한다. 콘텐츠만 좋으면 알아서 바이럴되고 소비되고 화제가 되는 세상이다. 대중이 먼저 움직이고 찾아오게끔 하는 가치 있는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를테면, 내 주전공인 엔터테인먼트를 살려 미술과 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이광기 아트쇼’를 기획 중이다. 8월 중에 공개될 미술과 공연 문화가 어우러진 온라인 스트리밍 쇼를 준비하고 있다. 작가들 인터뷰나 전시공간 소개는 물론, 작품 판매하고 아티스트 토크도 이뤄진다. 무용, 재즈, 클래식 등 공연도 볼 수 있다. 보통은 전시장 설명만 하거나, 공연 스트리밍이 전부였다면 우리는 모든 걸 총체적으로 아우른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 문화공간 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고양대로672번길 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