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7.27 20:30
“가장 근본적인 관계에 대한 질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한남동 가나아트 나인원 동시 개최
어린 시절 할머니의 무덤에서 느낀 공포, 이웃집에서 일어난 화재의 기억, 두 번의 암 투병으로 겪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렇듯 삶과 죽음을 마주하며 경험한 고민과 트라우마는 시오타 치하루(Shiota Chiharu·48)의 소재가 되어 핏물같이 섬뜩하고도 강렬한 설치와 조각으로 빚어진다.

실을 활용한 고유의 작업으로 잘 알려진 시오타는 자신의 기억을 상기하는 일상적인 소품을 활용해 존재와 내면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왔다. ‘혈관’, ‘머리카락’ 혹은 ‘피부’를 연상케 하는 작업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 있던 불안정했던 시기에 완성된 결과물이다. 죽음에 대한 오랜 고뇌를 통해 죽음은 육체의 끝이며 영혼과 의식은 영원히 존재할 뿐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깨달았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죽음을 단순히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해석하는 시오타는 더 나아가 동시대에 존재하는 이분법적인 경계와 개인 존재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이어오고 있다.
2017년 암이 재발한 후 시작하게 된 연작 <Out of My Body>(2020)는 마치 부드러운 가죽을 설계도 그리듯 칼로 도려내어 이를 천장에 건 작품이다. 흡사 늘어진 피부 같기도, 뚝뚝 떨어지는 핏물 같기도 하다. 투병생활 중 겪은 작가의 고통이 담겨있다.

수많은 실로 얽힌 대표작 <Between Us>(2020)에서는 내면에서 서로 관계되는 수많은 생각과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주변과 관계들에 대해 말한다. 한 공간에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실을 통해 시오타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뿐 아니라, 실존을 향한 탐구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일률적으로 놓인 의자는 개인의 존재이면서, 공간 안에서 각각 관계를 맺는 사회적 공간을 창출하는 상징도구를 뜻한다.”
시오타는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오브제를 작업의 소재로 사용하곤 한다. 이 의자들 역시 마찬가지인데, 의자를 사용했던 그 누군가의 기억과 그 의식이 남아있다고 여긴다고. 즉, 죽음 이후에도 영혼과 기억은 남는다는 작가의 평소 생각하고도 궤를 같이한다.

201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일본관 대표작가였던 시오타 치하루의 개인전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와 한남동 가나아트 나인원에서 동시 개최된다. 인간의 유한함과 그에 따르는 불안한 내면을 소재로, 경험의 파편 속에서 느낀 ‘불확실성’에 대한 인간의 내면과 성찰을 드로잉, 조각, 설치와 퍼포먼스까지 하나의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영역의 미술을 작품을 통해 풀어내 왔다.
이번 전시에도 그의 작업 세계를 총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설치 작업뿐 아니라 회화, 드로잉, 조각이 함께 내걸렸다. 시오타는 작업을 통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고민을 풀어내고, 그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삶과 죽음, 관계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작가의 여정에 동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8월 23일까지 가나아트센터, 8월 2일까지 가나아트 나인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