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7.14 14:43
[308아트크루(308 ART CREW)]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고단한 숙명의 예술가들. 이러한 독자적인 작가 정신은 이들을 일컫는 대명사였다. 그러나 요즈음 생각과 목적이 비슷한 예술가들이 모여 협업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프로젝트 팀, 아티스트 컬렉티브, 크리에이티브 그룹 등 다양하게 일컬어지는 예술가 집단 시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소위 ‘크루 문화’라고 명명되는 이러한 흐름은 과거 힙합 신에서 래퍼들에게 비트를 만들어줄 프로듀서가 필요하고, 무대에서는 완성된 비트를 틀어줄 DJ가 필요하기에, 음악적 취향과 방향성이 잘 어우러지는 몇몇이 모여 하나의 무리를 형성한 것에 빗대어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영역의 섞임 속에서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가는 예술가 집단을 만나본다. [편집자주]

한 편의 연극을 본다고 상상해보자. 지정된 좌석에서 무대 위 배우들이 읊조리거나 외치는 대사, 그리고 스쳐가는 이미지에 우리는 눈과 귀를 한껏 고정한다. 그 순간 보고 느끼는 건 단순히 장면의 연속이 아니다. 우리는 저도 모르게 연출가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무대 위 현실을 맞닥뜨리고, 극장 안에서 내뿜는 에너지를 공유한다. 이렇듯 무대와 관객이 함께하는 자리에 있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경계와 거리감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젊은 크리에이티브 그룹 308아트크루(308 Art Crew)는 그 경계를 최대한 벗어나 ‘감각적인 것의 온전한 경험’을 꿈꾸는 이들이다.

연극계 출신 5인조, 미술계에 당찬 도전장을 던지다
왠지 모르게 아이돌 그룹과 비슷한 분위기와 외모를 지닌 남성 5인조. 그렇게 한 무리로 사이좋게 등장한 308아트크루의 첫인상은 경쾌하고 재기 발랄했다. 조명·기획을 맡은 강대경(Glanz), 조향사 박형우(Woopac), 모델링·아트 디렉터 이신호(Cinco), 뉴미디어 아티스트 안승(Winnin), 음향·아키비스트 최용호(Yongkie)는 모두 같은 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인데, 다소 놀랍게도 미술 전공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들 중 한 명이 4년 전쯤 독일 유학을 떠나려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던 차에 우연히 공모전에 참가했는데, 그것이 308아트크루의 시발점이 됐다고 한다. 공모전에 당선된 직후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예술계 신생 공간 오브(OF)에서 열린 전시에 출품하게 된 것. 당시 강대경, 이신호, 박형우, 3명의 룸메이트가 자신들이 지냈던 방 번호를 붙여 ‘308아트크루’라고 이름 짓고, 갑작스러운 운명처럼 미술계에 뛰어들었다.

종합예술 장르로 통하는 연극계 출신인 만큼 308아트크루의 구성원들은 무대미술, 미디어, 조명, 영상, 연출 등 여러 스태프 부서에서 갈고닦은 노하우가 남다르다. 이들은 처음 손잡았을 때도 영상, 연출, 배우 등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지만, 연극계 특유의 집단주의와 강한 위계 질서 속에서 자유롭게 펼쳐내지 못한 표현의 욕구와 에너지를 발산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의기투합했다.
구성원 모두는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눴고, 저마다의 개성을 담아내면서도 창조적 시너지를 창출하는 설치 작업을 주로 해오고 있다. 창작을 향한 열정, 그리고 스스로의 시각적 만족이 작업의 주된 동기였지만, 예상외로 꽤 많은 대중과 매체의 주목을 받게 되어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다는 308아트크루. 이들은 지금 겪고 있는 작업의 매 순간이 자신들의 색깔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시각보다 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체험적 공간에 집중
연극은 무대 위 행위자인 배우와 무대 밖에서 이를 바라보는 수용자인 관객의 관계가 단방향성을 띠는 장르다. 308아트크루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경계를 걷어내고 작품과 관객 사이에 다차원적 감각의 체험과 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몸’의 감각을 깨우는 체험적 공간을 구현하는 데 집중한다. 관람객이 공간을 이동하는 동선에 따라 보이는 이미지와 소리, 향이 달라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다.
수많은 이미지로 넘쳐나는, ‘시각’에 과도하게 기대고 있는지도 모르는 오늘날의 전시 환경 속에서 308아트크루는 오프라인 공간을 직접 찾아야만 느낄 수 있는 체험적 가치를 추구한다. 이는 아마도 ‘현장성’, ‘일회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간적, 시간적 예술인 연극을 경험했던 308아트크루에 깊이 새겨진 공통의 정체성이 아니까 싶다.
공간 설계에 대한 역량을 인정받아서인지 최근 308아트크루는 예전에 함께 일했던 극단에서 투자받아 전시 공간 전체를 기획하는 프로젝트(‘Blooming Land’, 2020. 6~10, KOTE)를 진행하는 등 부지런히 창작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308아트크루는 작년 중국 샤먼(Xiamen)에 있는 파워롱 아트 센터(Powerlong Art Center)의 개관전인 <One if by Land>에 최연소 한국 작가 그룹으로 참여해 해외 활동에 대한 청사진도 그릴 수 있게 됐다.

지난해에만 20여 개의 크고 작은 그룹전에 참가했을 만큼 바쁜 행보를 펼쳐온 308아트크루. 이들 5인조는 요즘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 작업실에서 거의 매일같이 모인다. 지난 무대의 환(幻)을 넘어,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 협력적인 가치를 지니면서도 동시에 더 예술적인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맞댄다.
본 기사는 아트조선x스타일조선 공동 기획 일환으로, <스타일조선일보> 2020년 7월호(207호)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