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6.17 15:20
[하태임]
형태는 단순화하고 색채 부각한 신작 선봬
7월 5일까지 가나아트 나인원
작가는 애타게 봄을 기다렸다. 그의 캔버스에 분홍 색채가 꽃잎 물들 듯 번져든 까닭이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다시금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색인 핑크는 깊고 쓸쓸한 겨울을 살아내게 하죠. 마치 인생의 거친 풍랑을 지나고 내면을 마주하고서야 만난 자신의 비뚤어진 고집스러움에 용서를 구하는 색과 같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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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임(47) 작업에서 캔버스에 칠해진 각각의 색은 고유한 상징과 의미로서 존재한다. 그가 이번에 주목한 색은 핑크와 블루다. 핑크가 화해와 너그러움의 색이라면, 블루는 그에게 있어 꿈과 이상을 향한 호기심이자 미지의 장소를 여행할 때 느끼는 그리움을 상기한다.
이렇듯 색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깊게 관계되고, 복합적이고 미묘한 감정의 교차를 표현하기 위해 서로 다른 색상의 컬러밴드를 화면에 중첩한다. 다채로운 색상의 크고 작은 곡선이 율동적이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전달하며 새로운 색 공간을 빚어내는 듯하다. 그가 대중들 사이에서 인기 작가인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제가 휠체어를 밀어드리며 함께 녹음(綠陰)을 보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한걸요. 이처럼 별다른 설명 없이도 비언어적인 개인적 경험의 위대함과 힘을 담아내고자 형태를 최소화하고 대신 색깔을 부각한 거죠.” 그의 부친은 추상화 선구자로 잘 알려진 하인두(1930~1989) 화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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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컬러밴드 연작을 ‘통로’(Un Passage)라 명명했는데, 이는 프랑스 유학 시절 언어 장벽을 경험하면서 소통의 개념에 집중하게 된 과정에서 기인했다. 작업 초반, 그는 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문자와 부호 등을 화면에 그려 넣고 그 위에 곡선 색띠를 덧칠하는 실험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언어와 문자가 아닌, 색띠와 같은 순수한 시각 요소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이에 따라 선과 색의 만나는 시각적인 구조에 주목하며 색띠 외에 모든 재현적 요소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붓질의 제스처와 색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그의 화면은 정서적 깨달음과 직결된다. 즉, 하태임의 사고와 정서를 감각적으로 구현해 낸 통로로서 작가의 내면을 작품에 투영한 결과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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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개인전 ‘Un Passage’가 서울 한남대로 가나아트 나인원에서 열린다. 2017년 가나아트센터에서의 개인전과 2018년 소마미술관 개인전 이후, 2년 만에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블루와 핑크, 이 두 가지 색을 중점으로 한 신작 15점을 통해 새로운 내면의 이야기를 내보인다.
절제된 화면에 물질적이면서도 서정적 감흥을 동시에 구현함으로써 하태임 고유의 조형 언어를 창조하고 보는 이와 소통한다. 캔버스 가까이 다가가면 붓질의 움직임과 흘러내린 물감의 흔적 따위를 볼 수 있는데, 이는 곧 작가가 화폭에 써 내려간 일기와도 같다. 7월 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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