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6.05 17:04
아트조선 기획 권녕호展 ‘아뜰리에의 계절’,
실제 작업실에 꾸린 전시장… “친근하고 편안” “작가 생활공간 엿볼 수 있어”
20일까지 서울 청담동 루카511 3층
“남의 집 갈 때 괜히 조심스럽잖아요. 그런 기분으로 긴장하며 왔는데, 웬걸. 일반 전시장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네요. 마치 친구 집 놀러 온 것처럼 말예요.”
아트조선 기획 권녕호 개인전 ‘아뜰리에의 계절 : Les saisons de l’atelier‘이 4일 서울 청담동 루카511 3층 작가 작업실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정형화된 화이트큐브가 아닌 작가의 실제 아뜰리에에서 열리면서 개막 전부터 이목을 끌었다.


작가에게 작업실이란 마치 속살과도 같이 가장 은밀하면서도 예민한 부분이다. 채 완성하지 못한 미공개 작업부터 오브제, 서적 등 영감의 원천에 이르기까지 작업실 곳곳이 그야말로 영업 비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면, 작업실에서는 전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기도 하다. 권녕호가 이번 개인전을 아예 작업실에다가 차린 이유다.
이날 아뜰리에를 찾은 50대 남성 관람객은 “예전부터 권녕호 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많았는데, 작업실, 즉 작가의 생활공간을 둘러보니,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의 소소한 취향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방문객들은 설치된 작품 옆에 놓인 화구와 작가가 지난 수십 년 수집해온 미술 서적들도 함께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딸과 함께 방문했다는 60대 여성 관람객은 “작가가 평소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지 궁금했는데, 옆에 놓인 도구들을 보니 짐작이 간다”며 웃었다.

4일 열린 오프닝에는 육근병, 김근태, 김근중, 김선태 등 동료 작가들이 찾아 자리를 빛냈다. 이날은 한지에 오일과 아크릴, 연필, 먹을 사용해 전통적인 동양화의 바탕에 현대적 추상 기법을 풀어낸 신작을 최초 공개하는 귀한 자리인 만큼 갤러리스트, 평론가 등 미술계 관계자 다수가 참석했다.
1월부터 12월까지 열두 달을 한 화폭에 하나씩 담아 신작이 총 열두 점 출품됐다. 자연스레 순환하는 사계처럼 열두 점이 서로 스며들 듯 어우러진다. 오랜 시간 프랑스에서 살며 작업한 작가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해답을 탐색한 끝에 한국의 정서적 경험을 자연의 생명력으로 재해석했다. 작가는 특유의 속도감 있는 드로잉 기법을 통해 계절의 흐름에 따라 미묘하게 변주하는 자연을 즉흥적이고 직관적으로 형상화했다. 동시에 단순화되고 함축적인 기호들을 반복하는데, 형체가 불분명한 도형, 선 따위가 화면을 가로지르며 자유롭고도 어지러운 느낌을 동시에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겹겹이 배접한 화선지 위에 오일과 아크릴 그리고 먹으로 그림을 그리며 동서양 재료의 합일성을 실현하고자 했다.
장동광 미술평론가는 “권녕호의 내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던 동양적 미의식은 1990년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작품궤적을 형성하는 중요한 산맥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국적 물상에 서양화의 붓질로 조율된 회화적 헬레니즘, 그 세계성의 건축을 짓고 있다. 작품의 기표(記表)적 형식뿐만 아니라 기의(記意)적 주제의식의 측면에서도 동양의 정신성과 서양적 제스처가 긴밀하게 합류하고 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혼자 방문해 한참 관람하던 40대 여성 관람객은 “갤러리에 들어가면 왠지 모르게 경직되는데, 이곳은 실제 작가가 생활하는 작업실이라 그런지 체온도 느껴지고 친근하다. 작품을 한결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고 했다. 일반 여타 전시장과는 달리 권녕호의 아뜰리에 곳곳에는 의자, 벤치, 소파가 준비돼 있다. 작가와 언제든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 감상을 편히 돕기 위해서다. 전시기간 작가는 전시장에 상주하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전화 예약제로 휴일 없이 20일까지 10:00~17:00 운영된다. (02)724-78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