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6.01 18:35
서울대미술관 ‘우울한가요?’ 21일까지

불공정한 노동현실과 자본가에 의해 착취되는 노동자의 삶에 대한 울분이 묵직하고 진한 먹의 농담으로 화면에 담긴다. 정덕현의 그림에는 노동자가 없지만 철빔, 녹슨 자물쇠, 열 지어 있는 재봉틀 따위를 통해 고된 노동과 척박한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사물로써 현실의 부조리함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를 위해 종이에 여러 번 덧입혀 그려낸 이미지는 곧 작가의 축적된 노동이며, 검정빛 화면은 답답한 현실을 대하는 우울한 감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재봉틀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희생을 강요당한 노동자를 상징합니다. 그림에 노동하는 사람은 없고 공장 부품만 등장하는데, 다시 말해 노동자도 결국 부품에 지나지 않는 현실을 꼬집고 있는 거죠.”

우울감 한 번 느껴보지 않은 현대인이 있을까. 그만큼 우울은 시대의 병이라고도 한다. 우울은 기쁨이나 지루함과 같이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의 감정임에도 오늘날 병리학적으로 다뤄지며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돼 온 경향이 있다. 현대사회에서의 우울은 곧 분노와 불안, 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개인적인 사건에서 비롯될 수도, 때로는 공정하지 못한 사회가 개인을 우울하게 만들 때도 있다.
서울대미술관은 우울을 단순히 감정적 차원을 넘어 울분에 찬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문제의식의 발로, 개혁의 의지, 새로움을 향한 추동의 시작으로 보고, 우울의 원인을 살펴봄으로써 극복의 여지를 알아보는 기획전 ‘우울한가요?’를 개최한다. 개인의 우울부터 시대의 울분까지 작가 저마다의 시각과 매체로 다양하게 표현한 ‘우울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출품작에서 오는 우울감을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아 개선의 여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조나현 서울대미술관 학예사는 “밀레니얼세대는 불공정한 것에 대해 분노하고 특히 규칙을 엄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더라. 우울함을 감추기보다는 드러내서 타인과 시대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설명했다. 김정욱, 나수민, 노원희, 문지영, 박미화, 배형경, 안경수, 이재헌, 정덕현, 정철교, 조원득, 천성명 작가 12인이 참여해 회화, 조각 등 98점을 선보인다. 21일까지 서울대학교미술관 전시실1-4, 코어갤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