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5.22 19:01
[이해강]
영웅 아닌 악당에 주목… “왜 항상 악당은 응징당해야만 하나”
개인전 ‘Final Flash’展, 6월 19일까지 노블레스컬렉션
어렸을 때부터 세 살 위인 형과 역할 놀이를 할라치면 형은 언제나 영웅 역이었다. 그 영웅에게 처치당해야 할 상대역인 악당은 당연하게도 동생이었다. 찍소리 하나 못하고 처분만을 기다리는 악당의 역할에 신물이 난 동생은 생각했다. “왜 악당은 항상 처단돼야만 하는 존재죠? 그들에게도 악당이 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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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레이 페인트와 유화물감이란 물성이 전혀 다른 재료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인디 문화와 현대미술의 경계를 오가는 고유의 작업에 몰두해온 이해강(31)은 ‘해일(Hail)’이란 예명의 그라피티 라이터이자 스트리트 아티스트, 동시에 독특한 회화 작업으로 미술계에 눈도장을 찍었다.
그가 이번에 주목한 소재는 ‘빌런(Villain)’ 즉, 악당이다. 이는 실제 어렸을 때 형과의 놀이에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에서 비롯됐다. 이해강은 영웅을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 주인공은 될 수 없는 악당이란 존재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악당에게도 그렇게 되기 이전의 모습, 그렇게 되기까지의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빌런도 영웅 못지않은 능력과 카리스마를 지녔음에도 언제나 권선징악의 원칙에 따라 결국에는 파멸하거나 힘을 다 뺏기는 응징을 당하는데, 숙명적으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부여받으며 비인격적으로 소모돼 왔다는 점에 착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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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나의 형태가 다른 형태로 변하는 모핑(Morphing) 기법을 활용해 각기 다른 두 빌런의 이미지를 섞어 ‘슈퍼 빌런’을 만들어냈고 이른바 이들 ‘개량종 악당’으로 그간의 악당에 대한 선입견에 반격을 시도하고자 한다. 각 악당들의 대표적인 공격 기술을 구사하는 장면을 추출해 믹스한 뒤, 이를 캔버스로 옮겨와 유화물감과 스프레이로 완성했다.
이렇게 재탄생한 슈퍼 빌런은 단일 영역에 안주하지 않고 그라피티, 애니메이션, 회화, 세라믹 등 매체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작가 자신과도 같다. 이해강은 경계와 경계 사이에 있는 존재들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에는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한 중간자인 ‘빠른년생’을 주인공으로 삼아 개인전을 가지기도 했다. 이처럼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존재를 그저 애매하다고 치부하지 않고 ‘경계자’라는 하나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지길 작가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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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속 악당들에게 주목한 신작으로 꾸린 이해강 개인전 ‘‘Final Flash’가 6월 19일까지 서울 강남구 선릉로 노블레스컬렉션에서 열린다. 20여 점의 페인팅을 비롯해 슈퍼 빌런의 탄생 과정을 담은 애니메이션 영상도 내걸렸다. 전시장 벽면에는 작가의 주특기인 그라피티 작업을 선보인다.
이해강은 홍익대학교 디지털미디어디자인 학부를 졸업하고, 갤러리2(2019년, 서울)와 어쩌다갤러리2(2018년,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오픈스페이스배(2019년, 부산)와 석파정서울미술관(2019년, 서울), 구슬모아당구장(2019년, 서울), Taipei Expo Park-Expo Dome(2018년, 대만 타이베이), WAP Art Space(2018년, 서울), Purmoe Art Space(2015년, 태국 파타야), Everyday Mooonday(2015년, 서울 Animation+New Media Arts Festival(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회화 작업 외에도 애니메이션과 뮤직비디오 제작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금껏 인디 밴드 ‘단편선과 선인들’의 ‘거인’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래퍼 지투, 실리카겔, 세이수미 등의 음악가와 협업했고 2019년 바다미술제 영상을 만든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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