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4.18 14:50
미술관과 갤러리가 코로나에 대응하는 법
이미지와 영상으로 꾸린 온라인 뷰잉룸부터
360도 커버하는 VR전시까지
코로나19가 전시 관람 문화도 바꿔놨다. 국내 코로나 상황은 미국과 유럽과 비교해 다소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지난 몇 달간 마스크 쓰기와 대면 접촉 최소화에 길들여진 대중들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직접 찾아가기를 여전히 꺼리는 상황이다. 이에 굳이 현장을 가지 않더라도 집에서도 얼마든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뷰잉룸이 국내외 미술계에서 성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력과 예산 수급이 비교적 용이한 국공립 미술관들이 먼저 앞서 온라인 전시와 전시 생중계 등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락다운이 실시되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지의 갤러리에서는 더욱 발 빠르게 온라인 뷰잉룸이 마련됐다. 이는 작품 이미지와 전시 전경만을 걸어놓던 기존 방식에서 좀 더 진화한 형태로, 전시와 작품판매를 병행해 각 작품에 상세 정보와 가격, 재고 여부까지 표기해놓는다. 이젠 수억원을 호가하는 작품도 직접 보지 않고 사들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온라인에서 이미지 몇 장만을 살펴보고도, 굳이 현장에 가 ‘내눈’으로 보지 않고도 작품을 살 수 있게끔 작품의 정면과 측면, 디테일을 상세하게 찍어 가격표와 함께 올려놓는다. 지난 3월 열렸어야 할 아트바젤 홍콩이 코로나로 인해 전면 취소되고 그 대안으로 온라인 뷰잉룸을 열며 온라인전시 붐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미국과 유럽 등지의 미술관과 갤러리는 잠정 휴관인 상태로, 이들을 비롯한 전 세계 미술계에서 온라인 뷰잉룸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고 있다.

세계적인 화랑 데이비드즈워너는 코로나 사태와는 별개로 일찍이 온라인전시 환경 구축에 나선 선두주자다. 2017년부터 일회성이 아닌, 오프라인 전시장과는 별개로 투트랙 형태의 온라인 뷰잉룸을 본격화했다. 현재 홈페이지에는 올해 초 뉴욕에서 열렸던 윤형근 전시를 포함해 다양한 온라인 전시가 열리고 있으며, 지난 전시도 아카이브돼 있어 감상할 수 있다. 즈워너 대표는 “생각보다 미래가 훨씬 더 일찍 온 셈인데, 온라인 플랫폼은 미술계에서 중요한 대목이 될 것이라 이미 상상해왔던 부분이다. 다만 재밌는 점은 미술계가 다른 업계에 비해 좀 반응이 더디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메이저 갤러리 하우저앤워스는 조지 콘도의 드로잉 초상화 온라인 뷰잉룸을 준비했다. 작가는 뉴욕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락다운으로 고립된 불안정한 시간 동안의 감정을 반영해 완성한 작품들을 공개했다. 크레용, 연필, 잉크 등으로 그려 불확실한 형상이 겹친 형태가 공포와 공황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우아함과 섬세함이 깃들어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를 모티브로 작업한 조지 콘도의 신작으로 뷰잉룸에 공개되자마자 모두 완판됐다.

파리를 기반으로 하는 갤러리 카멜 메누어는 집에서 보는 전시라고 해서 집을 콘셉트로, ‘From Home’이란 타이틀의 온라인 뷰잉룸을 열었다. 각 전시장은 각기 다른 가정의 일상 공간으로 꾸몄다. 몇몇 작가들은 집에서 자주 사용하는 물건과 도구 등을 레디메이드로서 작업에 활용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친밀함과 편안함에 대해 새롭게 정의하며, 집을 하나의 공간이자 작가의 연구소로 접근하고자 한다. 메누어 대표는 “이들 작가 24인의 작품은 우리가 가장 친숙한 환경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적인 시선을 시적으로 묘사한다. 부디 집 소파에서 이번 전시를 즐겨주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온라인 뷰잉룸과 함께 덩달아 국내 미술계에서는 다소 낯설었던 ‘VR전시’도 뜨거운 키워드로 미술계에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로 VR시대가 앞당겨졌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VR전시는 관객의 시선이 카메라 방향이자, 시선의 움직임이 카메라의 움직임과 동일해 마치 직접 현장에서 관람하는 듯한 경험을 준다. 또한 전시장 공간을 360도 커버하기 때문에 기존 온라인에서 전경 이미지나 영상을 보는 것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른 것이 특징이다.
사비나미술관은 국내 미술관으로는 최초로 VR전시 프로그램을 개발, VR 불모지였던 2012년부터 현재까지 30여 개의 전시를 버추얼로 구축해온 국내 VR전시의 선구자다. 사비나미술관은 다년간 노하우를 통해 PC와 모바일에서 실제 미술관 동선을 따라 감상하듯 입체적으로 작품을 볼 수 있게끔 조성해놨다. 장르에 관계 없이 회화, 조각 등을 여러 방향에서 다각도로 들여다볼 수 있으며 특히 오프라인 전시장에 있던 영상 작품이나 작가 인터뷰 영상도 그대로 시청할 수 있게끔 온라인 플랫폼에 그대로 옮겨놓았다.

코로나를 전후로 사비나미술관 현장 관람객은 일요일 기준 80%가 줄었다면 VR전시 일일 접속자수는 10배가 증가했다. 이만큼 관객의 니즈와 수요는 확인이 되지만 그에 비해 미술계의 VR 활성화가 더딘 것도 사실이다. VR전시를 홈페이지에 구현하고 싶어서 알아봤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비용이 제법 들어 일단 보류했다고 하는 갤러리들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국공립미술관과 달리 갤러리는 작품 판매 수익으로 운영되는데, 판매된, 혹은 판매될 작품을 굳이 돈을 들여 VR전시로 만들어놓을 필요성이 크게 없다 점이다. 반면 사립미술관은 VR전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만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다. 다만 코로나를 기점으로 온라인전시가 점차 더 활성화되고 그중에서도 VR처럼 효과적인 플랫폼이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자연스레 VR도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한다.”라고 설명했다. 강재현 사비나미술관 학예실장은 “VR전시에 예산뿐만 아니라 일손도 생각보다 많이 든다. VR 하나 준비하는 과정이 도록 하나 만드는 것과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예산과 더불어 VR전시에 대한 의미와 소명이 뒷받침돼야 장기적으로 투자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옥션도 VR전시를 열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부산 세일 프리뷰 전시를 오프라인 외에도 홈페이지에다가 VR로 꾸려놓은 것. 전시장 구석구석을 고화질로 볼 수 있으며 온라인 실시간 경매 응찰 서비스도 제공해 감상과 응찰 모두 집에서 할 수 있도록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