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없는 오페라? 대본은 전시장에 걸린 그림

  • 아트조선 송지운 기자

입력 : 2019.12.20 17:15

리처드 케네디 개인전 ‘missed connections’, 내년 1월 31일까지 갤러리2

설치 전경 /갤러리2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작곡, 오페라 각본과 연출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리처드 케네디(Richard Kennedy)가 국내 첫 개인전 ‘missed connections’를 내달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2에서 가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객이 없는 오페라인 ‘(G)hosting’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회화를 만나볼 수 있다.
 
마치 낯선 사람과의 첫 만남 같은 오페라를 선보이고 싶었던 그는 극장이 아닌 전시장에 울타리를 설치하고 그 위에 모니터, 조각, 그림을 걸쳐 연출했다. 여러 갈래로 길이 나뉘는 울타리 사이에서 관람자는 자신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4개의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영상과 음악, 불협화음, 과잉된 정보는 보는 이를 긴장시키고 설치된 조각과 회화는 시각을 자극해 불안을 증폭시킨다. 극의 진행이 열려 있는 이 오페라는 관람자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 매 순간 첫 만남과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 FRENNN > 110x110cm Acrylic on Canvas 2019 /갤러리2
 
춤이란 붓 없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같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그림은 캔버스 표면에 박제된 움직임의 잔상이다. 그는 테크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화폭 위에 층을 쌓고, 그 위에 일종의 극중 인물처럼 글씨체와 크기, 단어를 달리하는 텍스트를 반복적으로 써나간다. 반복되는 단어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과 같고, 한 사람이 한 단어를 여러 번 발화할 때조차도 억양, 어조, 성량, 감정에 따라 차이가 빚어지는 것을 형상화한다. 오페라의 대본과 같은 텍스트가 적힌 회화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무대 장치, 음악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코러스,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시놉시스처럼 극을 전달하는 하나의 기호로 작용한다. 마지막에 큰 붓으로 화면을 쓸어내리는 과정을 통해 작업은 막으로 덮이고 관람객과의 경계가 형성된다.
 
오페라 대본과 같은 8점의 작품은 전통적인 오페라의 형식에서 탈피하는 것은 물론 미국 사회 안에서의 흑인과 성 소수자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단어는 성 소수자 공동체가 사용하는 언어로, 언론의 검열을 피하고자 추상화된 암호다. 작가의 작업 과정이 내포하는 수고스러움은 성 소수자의 언어가 처해 있는 상황을 연상하기도 한다. 은연중에 혹은 의도적으로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작가의 회화는 보는 이의 감각을 일깨우면서도 소수자 문제에 있어 기준을 세워주지 않고 오히려 가치판단을 지연시킨다. 관람자는 작품을 관찰하고 발화하는 능동적인 행위를 통해 여러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는 삶의 잠재력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