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12.16 18:38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프로젝트 ‘당신을 위하여 : 제니 홀저’ 개최

커미션(주문 제작) 프로젝트 ‘당신을 위하여 : 제니 홀저’가 내년 7월 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과천관에서 열린다. 제니 홀저는 40여 년간 텍스트를 매개로 사회와 개인, 정치 문제를 다뤄 온 세계적인 개념미술가다. 2017년부터 3년간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서울관 내 서울박스와 로비, 과천관 야외 공간을 새롭게 해석한 신작으로 그의 작품 세계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작가는 1970년대 후반 역사적, 정치적 담론과 사회 문제를 주제로 격언, 속담, 잠언 등 자신이 쓴 진부한 경구를 뉴욕 거리에 게시하면서 텍스트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작가는 티셔츠, 모자, 명판 등과 같은 일상 사물에서부터 석조물, 전자 기기, 건축물 그리고 자연 풍경에 언어를 투사하는 초대형 프로젝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공공장소에서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그는 1990년 제44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미국관을 대표하는 첫 여성 작가로 선정됐으며 그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후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루브르 아부다비 등 세계 곳곳에서 작업은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포스터, LED 사인, 돌 조각 등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매체로 구성된 3점이 미술관 내부와 야외 공간에서 전시된다. 언어를 매개로 탐구하기 시작한 그의 초기 작품 ‘경구들(Truisms)’과 ‘선동적 에세이(Inflammatory Essays)’ 포스터는 서울관 로비 벽면에 1000장이 넘는 규모로 설치된다. 이 작품은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어조로 작성된 작가의 ‘선동적 에세이’ 연작 25개 중 각기 다른 색상으로 구현한 12개와 ‘경구들’ 연작에서 발췌한 문장 240개를 인쇄한 포스터로 이뤄졌다. 구조적이고 함축적인 그의 언어를 적절하게 해석하고 담아내기 위해 전문 번역가와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가 협업해 최초로 한글로 선보인다.
이 포스터 외에도 과천관의 석조 다리 위에서는 작가가 선정한 11개의 ‘경구들에서 선정된 문구들’을 영구적으로 새긴 설치 작업을 볼 수 있다. 미술관과 자연 경관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관람객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일상 속 사유의 시간을 갖게 한다.

서울박스에는 이번 프로젝트와 동명의 신작이자 최초로 국문과 영문을 함께 선보이는 기념비적인 로봇 LED 사인 ‘당신을 위하여(For You)’가 설치된다. 길이 6.4m의 직사각형 기둥의 네 면을 둘러싼 LED 화면 위로 작가가 선정한 문학 작품 속 구절이 흘러간다. 김혜순, 한강, 호진 아지즈 등 현대 문학가 5명의 작품을 통해 여성 화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약 16m 높이 천장에 매달린 사각기둥은 전시 공간에 맞춰 구현된 로봇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속도로 위아래로 움직인다. 이 설치 작품에 제시된 서사는 역사적 비극, 재앙 혹은 사회적 참상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이들의 생각을 추적하며 미술관은 공감과 대립, 소통과 회복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더불어 클라우디아 뮬러(Claudia Müller) 영화감독의 다큐멘터리 두 편이 서울관 필름앤비디오에서 전시와 연계해 상영된다. 홀저의 작가로서의 여정을 추적한 ‘어바웃 제니 홀저(About Jenny Holzer)’와 그의 작품 세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여성 작가에 관한 견해를 밝히는 ‘여성 예술가들 : 제니 홀저(Women Artists : Jenny Holzer)’를 만나볼 수 있다. 이밖에도 학예사, 미술비평가, 문학비평가 등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는 행사가 전시 기간 동안 진행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이번 프로젝트는 세계적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제니 홀저가 최초로 한국어를 활용한 신작을 선보이는 기념비적인 전시다. 미술관 공간에 맞춰 특별히 제작된 작품은 국내외 관객에게 현대 미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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