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12.03 10:03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민중미술 15년’이라는 전시를 선보였을 때, 민중 운동가들 중에서는 ‘민중미술의 장례식’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회와 국가 체제의 모순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민중미술이 정부 미술관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 자체가 민중미술의 본질과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사회의식이 결여된 미술지상주의자들의 전유 공간이던 국립미술관에 민중미술가들이 체제 순응적으로 들어갔고 실질적으로 죽음을 택한 것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민중미술은 소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확산됐다. 한국에서는 현재 ‘체제 미술’의 지위에까지 올라와 있다. 민중미술이 이런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데에는 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들어선 정치적 격변도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개념미술이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 갈수록 주류가 돼 가고 민중미술이 개념미술과 결합하면서 미술계의 담론을 장악해가고 있는 데 있다.
개념미술의 근원지는 1960년대 말 뉴욕이다. 당시 극도로 저항적인 일부 작가들이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을 이루는 물질적 형태가 아니라 작품이 갖는 개념(Concept)과 의미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고팔면서 소장이 가능한 회화나 조각을 혐오했다. 그러면서 미술계와 사회는 부패했으므로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미술’, ‘미술 자체를 비판하는 미술’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비판적 질문과 개념을 담기만 하면 미술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강변하면서 사진, 영상, 기성품, 메모를 한 쪽지, 개념을 떠올릴 때 부딪힌 온갖 증거물 따위를 무차별적으로 미술 작품의 반열에 올렸다.

개념미술가들은 남자 소변기에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여 미술 작품이라고 내놓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을 선구자로 받아들인다. 개념미술에서는 개념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이 뒤샹의 소변기를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보고 그 앞에서 서성거려봤자 그건 바보 같은 짓이다. 작가가 그런 물건을 왜 미술품으로 제시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개념미술은 언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작품을 보고 느끼는 것보다 작품에 대한 설명과 분석을 먼저 소화해야만 한다.
개념미술은 이 과정에서 오랫동안 미술의 독자적 영역이었던 색, 형태, 재질, 또 이런 요소들을 총괄하는 작가 개인의 수(手)작업을 전격적으로 부정했다. 그 결과는 미적(美的)으로 아사(餓死) 상태의 작품이다. 인간이 느끼는 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풍부하다. 미술이란 시각에 즉각적으로 호소한다. 언어로 축소된 세계관이 포옹할 수 없는 영역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제로(Zero) 그룹의 창시자 하인츠 마크(Heinz Mack)는 개념미술가들에 대해 “아주 빈곤하다. 세계는 훨씬 더 풍부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개념미술가들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작품을 전시에 내놓으면서 작품의 냉랭함을 언어로 채웠다. 개념미술 전시장에 가면 볼 것이 별로 없거나 매우 낯선 것만 있다. 관객 스스로 보고 느끼지 못하고 작가의 설명을 듣거나 해설서를 읽어야 한다. 관객의 자율적 미술 감상은 위축되고 주어진 작품 해석에 수동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한국 미술계에도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서구의 개념미술이 전파돼 번창했다. 그러면서 미술을 통해 반자본주의, 비주류문화, 반상업주의, 소수자문화, 하위문화 등의 개념을 제기해 사회 비평적 역할을 하겠다는 미술가, 평론가, 큐레이터들의 인맥 풀이 확대됐다. 특히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를 기점으로 공공 예산이 지원해주는 대규모 미술 행사가 늘어나면서 개념미술이 한국 미술계에서도 주류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개념미술 작품들은 각종 사회적 이슈를 담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미술품의 아름다움을 넘어 미술행사 자체에 대해 언론의 폭넓은 관심을 끌기에 편리한 기재였다. 개념미술은 작품 자체에 대해 쓰기보다 작품 밖의 사회적 현상을 나열하며 막연하게 사회 비판을 하는 평론가들의 지적 허영에도 어필했다. 많은 작가들도 이런 새로운 조류에 편승했다.
지금도 작가들의 숫자로 따지면 보통의 창작 방법에 근거해서 개인의 육체적 노력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훨씬 많다. 그렇지만 개념미술은 비엔날레, 공공 미술관 등 공적 후원을 받는 미술 행사에서 VIP가 됐다. 한국에서 민중미술은 체제 저항이라는 개념을 통해 확산되던 개념미술과 결합되면서 자리를 공고하게 잡아나갔다. 1999년 뉴욕 퀸즈 미술관에서 열린 <세계 개념미술의 기원>이라는 전시는 민중미술을 ‘한국 개념미술의 기원’으로 평가했다. 한국 민중미술의 개념주의적 경향을 반증해 주는 사례다. 실제로 민중미술은 초기의 사회 정치적 소통 대상이었던 노동자, 농민을 여성, 성소수자, 소수 민족, 도시 빈민층 등으로 넓히면서 개념미술과 공통분모를 키웠다. 이와 연동해서 인권, 노동, 환경, 역사, 통일문제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된 정치 사회적 이슈를 미술 작품의 개념으로 삼았다. 노동자와 농민이 머리띠를 두르고 주먹을 불끈 쥔 채 저항을 다짐하는 그림은 줄어들었지만, 민중미술의 개념적 생리와 철학을 충실하게 복제하고 뉴욕발(發) 개념미술이 승인한 겉옷으로 바꿔 입은 작품들이 전시관을 채워 나갔다.

현재 ‘광장’ 전시 3부가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개념미술이 점거한 ‘광장’이다. 전시된 작품들은 사진이건, 영상이건, 설치물이건 모두 어떤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화제를 전달하는 ‘개념 있는’ 작품들이다. 여성의 몸 같은데 남성의 얼굴을 한 듯한 사람의 나체 사진은 성(性)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로힝야 난민촌 방문 뒤 갯벌에 지은 집은 난민의 상황과 정착의 의미를 제기한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작품의 예술적 요소를 고민하는 존재에서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제기하는 문제 제기자이자 사회 비평가로 전환했다. 전시장 벽면이나 안내서, 전시 도록에는 현학적인 설명이 곁들여있다. 그렇지만 그 설명(말)과 작품은 깊이 있게 이어지지 않고 서로 겉도는 것처럼 느껴진다. 설명은 난해하고 심각한 것 같지만, 작품 자체에는 설명의 지적(知的) 똑똑함을 실현하지 못한 감성적 공허가 남아있을 뿐이다. 미술작품과 관객 사이를 잇는 가교(假橋)는 끊어지고, 작가가 가진 한줌의 개념을 작품의 전략으로 사용한 냉랭함만이 느껴진다.
이런 문제는 개념미술가들이 아무리 작품의 개념을 혁명적으로 극대화하고 심각하게 만들어도, 혹은 한 개념을 갖고 정치학이나 사회학 박사 논문을 쓰듯 열렬히 현장 조사와 체험을 해도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미술 작품은 개념의 대변인이거나 메신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기 전에 어떤 의도나 개념을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막상 그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 작업에 들어가면 아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세계와 맞닥뜨린다. 어떤 재료를 선택할 것인가, 재료들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갑자기 부딪힌 뜻밖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이 복잡하게 얽힌 이 세상의 축소판이다.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작품은 이런 불확실성, 실수, 타협, 실험적 용기가 신비롭게 어우러진 응축물이다. 작가의 개인적, 구체적 역량이 이 대혼란을 소화해내서 관객에게 어필하는 어떤 예술적 ‘전체’로 응축해 낸다. 최초에 가졌던 생각이나 개념은 세상을 모르고 순진하게 끄적거린 낙서 같은 흔적에 불과하다. 창작 과정을 통해 애초의 개념은 부정되기도 하고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원래의 개념이 그대로 도도하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실현 과정 속에서 단련되고 변신해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날 선 언어적 특징은 희미해져 버린다. 그 대신 생각과 구체적인 노력이 신기한 비율로 섞여진 예술 작품이 태어난다. 그래서 작가에게 “당신의 작업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라고 물어보면 그 복합적 맥락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 한다.
민중미술과 개념미술은 미술 작품이 품고 있는 복합적 결합들을 단순화해 미술이 개념의 화신인 양 납작하고 핍진(乏盡)하게 만들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미술애호가들과 미술작가들은 소외되고 있다. 미술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인지 근본적 질문을 곱씹을 수밖에 없는 세태다.

◆케이트 림(Kate Lim)은 미술 저술가이자 아트플랫폼아시아(Art Platform Asia) 대표로, 지난해 일본 도쿄화랑에서 열린 전시 ‘다섯 가지의 흰색-한국 5인의 작가’의 서문을 쓰고, 박서보의 영문 평전 ‘PARK Seo-bo: from Avant-Garde to Ecriture’(2014)을 출간한 바 있다. 그 외 저술로는 ‘Language of Dansaekhwa: Thinking in Material’(2017), ‘Making Sense of Comparative Stories of Art: China, Korea, Japan’(출간예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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