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하찮은 것과 가장 거대한 것

  • 윤다함 기자

입력 : 2019.11.25 19:39

[김희영]
일회용품 모티브로 한 도자타일로 구워낸 하늘
‘대한민국 청춘하세요’ ‘ ‘3분에 OK!’ 등
무의미한 텍스트로 뒤덮인 공허한 구름
개인전 ‘클라우드’, 내년 1월 11일 피비갤러리

 
김희영(33)은 값싼 일회용기나 비닐포장재와 같이 일상에서 쉽게 사용됐다가 쓸모를 다해 버려지는 물건들에 주목해왔다. 일회용 소비재를 가져와 견고한 타일이나 도자로 전환하거나 기하학적 패턴으로 재구성해 더 이상 쓸모없어 쉽게 버려지는 것들을 전시장에 내걸어왔다. 우리 일상의 비루한 면모를 드러내는 일회용품, 즉각적인 소비와 유통구조를 상징하는 포장용기와 하찮으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비닐포장재를 모티브로, 하늘과 구름이라는 거대한 자연이자 변화무쌍한 존재를 시각화하는 실험을 선보인다.
 
< Wall tile_Cloud 3 > 90x250x0.5cm Ceramic 2019 /피비갤러리
개인전 <클라우드(Cloud)>가 서울 북촌로 피비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경제적 효용성에만 집중하는 현대사회의 소비행태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하늘과 구름을 매개로 좀 더 확장하는 계기를 보여주고자 한다. 일상적 소모품과 일회용품의 형태를 반복해 얻어지는 기하학적 패턴은 구름 등의 자연경관으로 치환되는데, 두 가지 크기의 도자 타일은 서로 연결되고 관계를 드러내며 하늘을 구워냈다.
 
김희영은 현대사회에서의 과잉생산과 무분별한 소비 이후 무가치하게 폐기되는 물건들에 대해 안타까운 시선을 유지해왔다. 도자로 캐스팅해 재구성해낸 일상소모품과 일회용품은 가마의 소성 과정에서 원래의 사물과 전혀 다른 표면, 강도, 색깔을 취하는데, 이처럼 변형된 오브제는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정교한 질서 아래 새로운 구조를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이들 작품은 전시장을 벗어나는 순간 언제든 다시 버려질 수 있다는 빈곤함을 여전히 내포한다.
 
< Wall Tile_Cloud 1 > 160x600x0.5cm Ceramic 2019 /피비갤러리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면 ‘대한민국 청춘하세요’ 따위의 텍스트로 뒤덮여 있는 것이 보인다. /윤다함 기자
 
신작 ‘Cloud’는 특정 질서와 규칙으로 조직된 듯 일정한 패턴을 이루던 이전 작업과는 다른 궤적을 보인다. 가장 낮은 것, 버려져야 마땅한 것으로부터 가장 숭고한 대상, 영원불멸의 존재이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을 이끌어낸다. 텍스트로 빼곡히 메워진 사각의 타일이 완성한 하늘 풍경은 옅은 푸른색과 회색이 교차하는 가운데 구름 덩어리들이 화면 곳곳에서 비정형 상태로 펼쳐진다.
 
작품의 기본 재료로는 제품화된 기성 타일을 이용하며, 타일에서 전체적인 패턴을 이루는 무늬는 여러 포장재에서 발췌한 광고 문구와 기업의 로고, 즉 포장재 자체가 아닌 직접 추출된 텍스트다. 이 텍스트가 무의미하기는 포장재와 마찬가지다.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즐기세요’ ‘대한민국 청춘하세요’ ‘후끈후끈’ ‘3분에 OK!’와 같은 광고 문구는 포장용기가 가지는 물질성마저 휘발된 채 무의미하고 텅 빈 기호처럼 보인다. 이질적인 문자들을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재배치하고 타일 위에 전사하는 방식으로 겹겹이 쌓아 올린다. 이렇듯 최종적으로 타일이 구성해내는 하늘과 구름의 이미지는 소비도 자본주의도 아니며, 버려지거나 쓸모없는 것과는 거리가 먼, 자연의 풍경일 뿐이다. 전시는 내년 1월 11일까지.
 
< Wall tile_Cloud 5 > 40x350x0.5cm Ceramic 2019 /피비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