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토록 화려하고 황홀한 무대가 마지막이라니… 아듀! ‘아이다’

  • 아트조선 송지운 기자

입력 : 2019.11.22 19:07

[뮤지컬 아이다]
팀 라이스 극본, 엘튼 존 작곡 거쳐 현대로 옮겨진 고대 이집트
눈앞에 펼쳐지는 황홀한 빛과 색의 향연
조명 900개, 의상 800벌에 칼군무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

‘또 다른 나(My Strongest Suit)’에서 암네리스는 평범한 옷은 싫다며 패션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지만 사실은 사회가 공주에게 기대하는 모습에 부응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시컴퍼니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있을까. 형형색색의 조명은 춤추고 유연한 몸짓이 노래하며 강렬한 리듬은 무대를 비춘다. 환상적인 연출과 군무가 오케스트라와 이루는 합주는 눈과 귀에 쉴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뚜렷한 색채로 물든 배경 위로 검은 실루엣이 열 맞춰 움직일 때면 한 폭의 회화를 연상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디즈니가 처음으로 성인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한 뮤지컬 <아이다>는 팀 라이스와 엘튼 존이 협업해 베르디의 오페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한 박물관의 이집트 전시실에서 고대 이집트의 여왕 암네리스는 이집트와 누비아 사이의 전쟁 아래서 꽃핀 사랑 이야기로 관객을 초대한다. 사령관 라다메스는 누비아에서 잡혀 온 포로 중 고귀하고 용감한 여인 아이다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자신의 약혼녀인 암네리스에게 시녀로 선물한다. 아이다는 누비아의 공주로서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구속 없이 자유롭게 항해하는 삶을 함께 꿈꾸는 라다메스와 사랑에 빠지고, 적국의 장군을 사랑하게 된 처지에 괴로움을 느낀다.
 
공주로서의 책무를 두려워하는 아이다에게 이집트에서 노예가 된 누비아 백성들은 희생과 용기를 요구한다. 갈등하던 아이다는 결국 백성들이 준비한 누더기와 같은 예복을 받아들이며 헌신을 약속한다. /신시컴퍼니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신화 같은 사랑 이야기는 현대적인 연출과 무대로 관객을 매료한다. 순수한 하얀 빛의 박물관, 태양신 호루스의 눈 사이로 보이는 온통 붉은 빛으로 춤추는 누비아,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나일강에 비친 야자수, 주홍빛 큰 돛을 펼치는 선박과 암네리스의 초호화 목욕탕까지. 이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무대를 무려 800벌에 달하는 의상이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암네리스가 화려한 공주로서의 삶을 자랑하는 넘버 ‘또 다른 나(My Strongest Suit)’는 시녀들이 옷을 여러 번 갈아입으며 화려한 무대를 누비는 모습이 패션쇼의 런웨이를 방불케 해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엘튼 존 작곡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현악기가 아닌 건반이 주요 선율을 연주해, 클래시컬한 느낌 대신 자연스레 박자를 타게 만드는 팝 음악이 공연장을 메운다. 극의 전반에 걸쳐 두드러지는 타악기 소리는 조명과 안무를 통해 시각화된다. 라다메스와 이집트의 강인함을 노래하는 ‘영광 우리의 것(Fortune Favors the Brave)’을 비롯한 고대 이집트를 표현한 장면에서는 이집트 미술에서나 볼 법한 이국적이면서도 깔끔하게 정렬된 몸짓이 돋보인다. 특히 아들 라다메스를 파라오로 만들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조세르가 등장할 때면 그의 악랄함을 강조하듯 드럼 소리가 선율을 잡아먹을 것처럼 울리고 이에 맞춰 현란한 조명과 각 잡힌 군무가 펼쳐진다.
 
반면 누비아 포로의 고통과 울분은 ‘예복의 춤(Dance of the Robe)’이나 ‘신의 사랑 누비아(The Gods Love Nubia)’ 등에서 정돈되지 않은 몸부림과 북 소리로 표현되고 방언처럼 터져 나오는 노래와 어우러져 옥에 갇힌 왕과 노예로 전락한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힘쓰는 이들의 절박함을 드러낸다. 암흑 속에서 세 줄기의 빛이 이루는 삼각형으로 세 주인공이 얽힌 인연을 표현하는 ‘한 걸음 뒤에(A Step Too Far)’에서는 조명 그 자체가 무대가 돼 버리기도 한다. 여타 뮤지컬에서는 대극장 공연이라 해도 배우의 섬세한 표정 연기까지 보이는 앞쪽이 인기 폭발이지만, 이 작품만큼은 2층 좌석마저 무대 전체를 두루 조망할 수 있어 상석으로 여겨진다.
 
‘영광 우리의 것(Fortune Favors the Brave)’은 현대 박물관에서부터 고대 이집트로 시대적 배경이 전환되며 신화 같은 사랑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넘버다. /신시컴퍼니
 
전쟁 중인 두 나라의 장군과 공주 간의 사랑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루지만, 관객의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것은 아이다의 사랑과 의무 사이에서의 갈등이요, 심장을 울리는 것도 결국 그녀가 보여주는 공주로서의 희생과 용기다. 운명 같은 사랑과 무거운 책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이 여성이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약속하며 헌신하는 인물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극은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수의 작품과 차이를 지닌다. 화려하고 최고로 멋진 드레스가 자신을 말해준다던 암네리스도 라다메스와 아이다의 관계를 알게 된 후 더 이상 결혼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여왕이 되겠노라 선포한다. 진부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두 여성 인물의 서사가 더해졌다는 것만으로 특별해진다.
 
토니상에서 작곡·무대·조명·여우주연 부문을 수상해 작품성을 인정받은 사실 외에도 이번 공연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2005년 초연 이후 다섯 번째 시즌을 맞는 <아이다>가 14년 여정에 마침표를 찍기 때문이다. 판권을 보유한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것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버전의 <아이다>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다. 내년 2월 23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