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철, 이번엔 도시의 어둠에 주목했다

  • 윤다함 기자

입력 : 2019.11.15 18:23

자연·도시 담은 ‘적막강산’ 연작 중 ‘도시징후’ 공개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동에 별관 개관
이탈리아 다미아니 출판사, 사진집 출간 기념
30일 북사인회·아티스트 토크 개최

<적막강산-도시징후> ⓒ이갑철
 
10년 넘도록 자연과 도시 풍경에 몰두했다. 자연에서는 온갖 잡음을 초월한 고요한 적멸을 잡아냈고 혼잡한 도심의 소음 이면에서는 고독과 적막을 포착했다. 산속만 선경(仙境)이 아니라 작가에게는 도시 또한 속세 안의 선경이었던 셈이다. 이갑철(60)은 자연과 도시라는 서로 대조되는 장소를 연작 ‘적막강산’에 담아낸다. 그중에서도 도시 작업은 프레임을 벗어난 화면 구성, 초점이 나간 피사체 등 작가 특유의 사진 문법이 돋보인다. 때로는 피사체가 아닌 어두운 여백으로 화면이 채워진다. 작가는 이를 ‘여흑’이라고 지칭한다. 무언가 일어날 듯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징후로 채워진 공간이란 뜻이다. 평소에도 “빛을 찍는 이유는 어둠을 보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작가는 도시의 여백, 빛이 없는 어둠의 공간에 집중한다. 그의 화면에 이질적인 개인들이 공존하는 도시의 이물감, 긴장감, 군중 속의 고독, 검은 그림자의 적막감이 극대화돼 나타나는 이유다. 
 
그는 시대적 정서와 그 배경을 직관적인 감각으로 카메라에 담으며 <타인의 땅> <충돌과 반동> <기>를 통해 지난 30여 년간 주관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의 정체성을 다져왔다. <타인의 땅>을 통해 한 시대의 현실과 그 바탕에 깔린 시대적 정서를 비상하고 재빠른 감각과 반응으로 포착하거나, <충돌과 반동> <기>에서 한국 정서 기저에 자리한 무형의 개념을 사진 안에 응축해 ‘사실 포착’에서 ‘느낌 포착’으로 이행하는 작업을 내보이기도 했다.
 
/윤다함 기자
/윤다함 기자
 
한미사진미술관이 서울 삼청동에 별관을 개관하며 이갑철의 신작으로 꾸린 ‘적막강산-도시징후’전(展)을 열고 도시 사진 26점을 걸었다. 도시 작업은 작가의 최신작이면서도 여느 연작보다도 가장 긴 호흡으로 10년 넘게 지속해온 시리즈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촬영한 필름과 이미지 파일을 지금껏 방치해두다가 최근에 와서야 인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곧바로 마주하지 않고 이를 어둠 속에 묵혀둔 건 날 선 이미지들에 시간의 무게감을 입히기 위함이었다.
 
<적막강산-도시징후> ⓒ이갑철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의 예술 서적 출판사 다미아니 에디토레(Damiani Editore)와 한미사진미술관이 공동 발행한 이갑철 사진집 ‘LEE Gap-Chul: THE SEEKER OF KOREA’S SPIRIT‘의 출간을 기념해 마련됐다. 다미아니 출판사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이갑철의 사진집을 제작했다. 미술관 관계자는 “지난해 출판사 측에서 먼저 한미사진미술관에 협업을 제안해왔다. 유럽 내 한국 사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때에 한국 사진에 대한 소개와 작가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사진집을 기획하고 있으니 이를 함께 진행해보자는 내용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프로젝트의 첫 타자로 이갑철 작가가 선정됐고 대표작과 최신작까지 작가의 예술세계 전반을 살필 수 있도록 엮었다. 다미아니에서 서적 디자인을 맡았으며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인쇄했다. 현재 미국 DAP아트북, 유럽 템스앤허드슨 등 국제 배급사를 통해 전 세계에 판매가 시작됐으며 국내에서는 미술관에서 판매된다. 이갑철 작가를 시작으로 한국 사진작가를 소개하는 프로젝트가 지속해서 이어질 예정이다. 30일 오후 2시 미술관 삼청동 별관에서 북사인회와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되며, 아티스트 토크는 사진집 필진으로 참여한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연구기획출판팀장과 작가 간의 대담 형식으로 이뤄진다. 한편, 미술관 삼청 별관은 전시장, 사진아카데미, 북숍 등의 문화공간으로의 운영을 목적으로 지난 8일 개관했다. 전시는 2020년 1월 15일까지.
 
<적막강산-도시징후> ⓒ이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