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11.08 18:18
“추상과 구상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양면성”
콜라주와 데콜라주 기법의 독창적 추상 언어
1950년대 佛 화단 큰 성공… 한국 추상회화 선구자
‘남관의 추상회화 1955-1990’展, 30일까지 현대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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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1911~1990)은 ‘동양과 서양을 융화한 작가’라는 평을 받으며 파리에 정착한 지 1년 만에 파리시립미술관 기획 ‘현대국제조형예술전’(1956)에 참여하고, 이후 당대 파리 화단을 이끈 전위예술모임 ‘살롱 드 메’에 평론가 가스통 딜을 통해 한국인 최초로 초대받았다. 딜은 “남관은 서양 문화를 흡수하고 동양 문화는 희생시키지 않는 동시에 동서를 분리하고 또 융합하는 독보적인 예술가”라고 평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1966년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는 <태양에 비친 허물어진 고적>으로 1등상을 수상하며 프랑스 화단에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했다.
작가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말, 파리에서 작업하며 고대 유물과 유적지에 영감을 받은 작품을 다수 남겼다. 때 묻은 벽, 황폐한 뜰, 오래된 성이나 유적의 잔해처럼 보이는 풍경을 캔버스에 담았다. 회색이나 자색 계열의 물감을 사용해 세월이 흘러 마모되거나 비바람을 맞아 녹슬고 부식한 듯한 표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김재석 갤러리현대 디렉터는 “이 시기 작가는 질감 구현에 많은 공을 들였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독특한 질감은 파리로 건너가기 전에 향토적인 주제로 제작한 구상회화에서도 볼 수 있다. 이때의 작품을 두고 김현숙 미술사학자는 작가의 전쟁 경험과 연결해 해석했다. 해군종군화가단으로 활동하며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경험이 작품에 녹아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작가는 생전 기고를 통해 “내 그림의 모티브는 자주 전쟁의 기억에서 온다. 벌판에 쓰러진 젊은 병사의 얼굴, 토막 나 뒹구는 팔다리, 시체 위로 쏟아지는 햇볕…”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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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무렵부터 고대 상형문자와 한자를 떠올리는 형상을 화면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서체 모양으로 자른 종잇조각을 캔버스에 움직이며 화면을 구성하는 실험을 전개하는데, 마음에 드는 구도가 결정되면 그 위에 안료를 뿌리고 칠했다. 1968년 귀국 후에는 콜라주와 데콜라주 기법으로 자신만의 추상 언어를 완성해나갔다. 이를 통해 독특한 인간상과 색채를 탐구하며 핵심 조형 언어 중 하나인 얼굴 이미지가 등장했고 파리에서의 어두운 화면이 점차 청색을 중심으로 환하게 밝아졌다. 귀국 후 파리의 하늘을 상상하고 그리워하며 자연스레 청색을 즐겨 사용하게 된 것. 이구열 평론가는 작가의 작업에 대해 추상과 구상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양면성을 언급하며 “작품 속 시각적 콜라주 형상은 작품에 따라 문자성, 기호성 혹은 그 밖의 신비한 물상의 형태로 구체성을 갖게 함으로써 헤아릴 수 없이 내밀한 표상미를 조성시켰다”라고 했다.
남관의 회고전이 현대화랑에서 열린다. 현대화랑의 첫 추상화 전시가 남관의 개인전(1972)이었던 만큼 화랑과 작가의 관계는 남다르다. 이후 현대화랑은 1983년, 1988년, 1995년에도 남관의 개인전을 개최하며 작가의 국제적 성공과 예술적 성취를 국내 미술계에 알리는 데 일조했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실험 정신을 재조명하는 자리로, 실험적인 시도와 추상적인 화면을 어떻게 혼용하고 이를 평면에 어떻게 구현했는지에 대해 확인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파리로 건너간 1955년부터 작고한 1990년까지 제작한 시대별 주요 작품 60여 점을 선보인다. 현재 전시장에는 38점이 내걸렸으며 전시 기간 수시로 작품이 교체될 예정이다.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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