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만들어내는 우연의 美

  • 아트조선 송지운 기자

입력 : 2019.11.06 17:06

멕시코 현대미술가 보스코 소디, 국내 첫 개인전 가져

< Untitled > 200x280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조현화랑
 
멕시코의 현대미술가 보스코 소디(Bosco Sodi)가 국내 첫 개인전을 12월 8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조현화랑에서 가진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회화와 조각 작품은 뉴욕의 작업실과 멕시코 오악사카 지역의 작업실에서 1년간의 제작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가로 3m가 넘는 대형 회화 작품을 비롯해 신작 흑백 연작 10여 점, 지름 약 40cm 크기의 원형 점토 조각과 단색 회화 소품 30여 점이 전시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멕시코, 독일,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풍부한 질감과 선명한 색상을 지닌 거친 표면의 부조 회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회화, 조각, 설치를 넘나드는 형식과 매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평단의 호평을 받아 왔다. 작가는 나무, 점토, 돌, 톱밥 등 가공되지 않은 천연 재료로 작품을 제작하는데, 이러한 작업 방식은 일본의 ‘와비사비’ 미학에서 영향을 받은 결과다. 와비사비는 자연과 시간의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생활 속에 녹아있는 불완전함을 용납하고 소박함과 단순함, 진실성을 최우선시하는 미학 이론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물질과 추상의 관계와 의미에 대해 고찰해 왔다.
 
보스코 소디의 작업실 /조현화랑
 
그의 평면 작품은 고된 노동을 거쳐 완성되는데, 이 과정은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배제하고 재료의 본질과 우연적 요소를 부각한다. 지면에 수평으로 놓인 캔버스 위에 안료, 톱밥, 목재 펄프, 천연 섬유질과 아교 혼합물을 오랜 시간에 걸쳐 흩뿌리고 두껍게 쌓아 올린 후 굳도록 내버려둔다. 작가의 작업 과정은 하나의 퍼포먼스다. 때로는 몇 달간 방치되기도 하는 작품에는 작가의 행위가 고스란히 드러나며 단층의 선을 따라 움직이고 멈춘다. 물질이 건조되면서 표면에 첫 갈라짐이 나타나는 순간 작업을 중단한다. 여기서부터는 시간과 자연의 흐름에 맡겨 자연스럽게 생기는 균열과 평면에서 입체로 변모하는 물질의 흔적을 통해 회화의 형식적 실험을 보여준다.
 
작가는 최근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후 삶과 죽음, 물질과 영혼, 선과 악, 빛과 어둠과 같은 상반된 보편적 개념과 삶의 이중성에 대해 탐구해 왔으며 이번 전시의 중심축을 형성할 흑백 연작을 통해 풀어낼 예정이다. 한 작품에 대비되는 두 색을 사용해 이제까지 그의 작품에서 보기 어려웠던 선명한 형태를 드러낸다. 순수한 검은색 혹은 흰색 안료를 풀, 톱밥, 천연 섬유질과 혼합하고 한 화면에 함께 등장시켜 음과 양의 균형을 바탕으로 삶의 이중성에 대한 성찰을 고취한다.
 
< Untitled > Diameter 47cm Clay 2019 /조현화랑
 
멕시코 오악사카 지역의 작업실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원형의 점토 조각은 자연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물질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담아낸다. 작가는 멕시코와 뉴욕, 바르셀로나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데, 각 장소의 환경적 조건이 작품의 형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장소 특정적 미술로 평가되기도 하며 그 지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작품화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