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11.06 11:45
프랑스 무대로 새로운 미술 언어 실험… 신작 퍼포먼스 ‘시간과 공간 2019’ 공개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김순기의 삶과 예술, 자연이 조화된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 ‘게으른 구름’이 내년 1월 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1968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사회변혁 운동인 ‘68혁명’ 이후 작가는 자유롭고 지적인 토론이 활발하던 남프랑스에서 철학자, 예술가와 교류해 왔다. 1980년대부터 파리 교외의 농가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동서양의 철학, 시간과 공간 개념에 관한 탐구를 바탕으로 영상, 설치, 소묘, 회화를 통해 정형화할 수 없는 예술과 삶의 관계를 고찰해 왔다.
전시 제목은 작가가 쓴 동명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그가 지향하는 예술의 의미와 삶의 태도를 은유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게으름과 불성실은 지양해야 할 부정적인 태도로 여겨지지만, 작가에게 게으름이란 타자에 의해 규정된 틀에 갇히지 않고 삶의 매분, 매초가 결정적인 순간임을 긍정하며 사유하고 행동하는 일이다. 그는 텃밭을 일구며 독서하고 붓글씨를 쓰는 일상의 모든 행위를 통해 예술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예술 세계를 그가 실험해 온 다양한 매체를 통해 조명한다. ‘색 놀이 언어 놀이 : 일기(日記) - 작업실에서’를 주제로 작가가 작업실 주변에서 수집한 돌멩이, 나무 등을 이용해 제작한 오브제와 판화를 6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970년대에 작업한 퍼포먼스 영상과 ‘일기’, 언어와 이미지의 차이를 이용한 언어유희가 담긴 ‘색 놀이’ 연작과 작업실에서 보낸 사계절의 시간을 담은 ‘이창’도 소개된다.
지하 3층은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먼저 ‘일화(一畵) - 활쏘기와 색동’에서는 황학정에서 국궁을 수련했던 작가가 색을 탐구한 회화와 퍼포먼스 영상 ‘일화’ ‘만 개의 더러운 먹물자국’을 선보인다. ‘조형상황’에서는 1971년부터 1975년까지 남프랑스 해변에서 현지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한 퍼포먼스를 소개한다. ‘빛과 시간으로 쓴 일기’에서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연구한 작품 중 1987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에 출품했던 ‘준비된 피아노’와 함께 ‘애주 - 애주’ ‘Gre Gre’를 소개한다.

7전시실에서는 ‘작업실에서의 고독한 탐구 VS 예술적 교감으로 빛나는 여름밤’을 주제로 실험적인 영역에 도전해 온 작가의 예술 여정을 보여준다. 1975년 국내 첫 개인전 ‘김순기 미술제’와 더불어 1986년 존 케이지, 다니엘 샤를르 등을 초청해 개최한 멀티미디어 페스티벌 ‘비디오와 멀티미디어 : 김순기와 그의 초청자들’ 관련 자료를 마련한다. 미디어랩에서는 ‘신자유주의 시대, 예술의 의미’를 주제로 비디오카메라를 메고 전 세계를 일주하며 촬영한 ‘가시오, 멈추시오’, 호주 원주민의 제의 모습을 담은 ‘하늘 땅, 손가락’을 비롯해 자크 데리다, 장 뤽 낭시, 백남준과의 인터뷰 영상이 전시된다.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고찰한 신작 퍼포먼스 ‘시간과 공간 2019’는 전시마당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입력된 명령만 수행하는 로봇과 초자연적인 존재로서 무당이 등장해 게으르고 심심한 로봇 ‘영희’가 읊는 시, 무당 김미화의 굿하는 소리, 전시마당 내 설치된 기구가 내는 소리가 함께 어우러진다. 로봇 제작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윤지현, 박얼, 이동훈이 참여했으며 ‘심심바보 영희’는 로봇 기술 전문 기업 로보티스(Robotis)의 모터와 3D프린팅 전문 회사 크리에이터블(Creatables)에서 출력한 부품으로 제작됐다. 이번 전시는 김순기가 시인이자 예술가로서 걸어온 삶과 실천으로서의 예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자리다.
Copyrights ⓒ 조선일보 & 조선교육문화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