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11.01 20:22
[뮤지컬 세종 1446]
세종대왕·장영실·태종 등 역사 속 인물 무대 위로
훈민정음에 담긴 세종의 애민 정신 시각·청각적으로 구현

세종 즉위 60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첫선을 보인 <세종 1446>은 세종왕릉을 여주로 옮긴 지 550년이 되는 해를 맞아 1년 만에 극장으로 돌아왔다. 극은 단순히 세종대왕의 업적을 비추는 것을 넘어 삶의 전반에 걸쳐 겪어온 시련과 고뇌까지 담아내 인간으로서의 이도(李祹)를 보여준다. 익선관과 옥새가 버거워 태종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던 세종은 섭정이 끝난 후 조선을 백성의 나라로 만들고자 한다. 왕에게 주도권을 뺏기기 싫은 사대부는 역린을 노리고 이로 인해 세종은 소중한 사람을 잃어 왕의 자리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백성을 아끼는 마음 하나로 한글을 창제해 끝내 진정한 왕의 길을 걷는다.

역사를 다루는 만큼 참신하기보단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무려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 동상까지 세워진 세종대왕이 아니던가.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와 KBS 드라마 ‘대왕 세종’,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등 세종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이 이미 다수 존재하기에 대중으로서는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뮤지컬로 만나는 세종대왕은 기존 창작물보다 새롭게 다가온다. 역사책이나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해온 이야기도 오선지를 거쳐 무대 위로 오르니 더욱 극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된다. 자신의 고통을 넘버와 몸짓을 통해 표출하는 세종의 모습에 관객은 그가 성군이기 이전에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었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사극임에도 건반과 기타 등 밴드 악기가 주를 이루고 긴장감을 조성하는 드럼 소리가 두드러진다는 점이 독특하다. 간혹 들려오는 국악기 소리가 현대 악기와 잘 어우러지면서도 배경이 조선 시대임을 상기시킨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관복을 차려입고 체통을 지키던 대신들도 열 맞춰 춤 솜씨를 뽐내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보는 재미를 더한다. 무예를 위해 캐스팅한 전문 무술인이 무대에 올라 실감나는 칼싸움을 연기한다. 극 시작부터 좌중을 압도하는 군무 또한 아이돌 무대를 방불케 한다. 소헌왕후의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흔들리는 민심을 보여주는 넘버 ‘달이 해를 먹었다’는 한국 무용을 연상하는 움직임과 국악의 조화로 주연 배우 하나 없이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되는 1418년을 시작으로 승하한 1450년까지의 긴 시간을 150분으로 축약하기 위해 극은 모든 사건을 일일이 나열하는 대신 세종의 애민 정신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고증이 부실한 부분이 눈에 띄어 아쉬움을 남긴다. 장영실이 명의 압박으로부터 세종을 지키기 위해 직접 발명한 천문 관측기구를 태운 죄로 사형 당하는 장면에서 당황해 웅성거리는 관객도 더러 보인다. 그가 왕의 가마를 잘못 만들어 불경죄로 파면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장영실뿐만 아니라 피의 군주 태종과 난봉꾼 양녕대군도 세종의 삶을 짧은 시간 안에 전달하기 위해 평면적으로 그려져 도구화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역사를 완벽히 따르지 않더라도 극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바로 세종의 애민 정신이다.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고려 유민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전해운’마저도 품으려 하고 백성의 소리라면 울분과 탄식에까지 귀 기울이는 세종을 보며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백성을 위한 말과 소리를 만들어 1446년에 반포하지만 정작 말년에 눈이 멀어 스스로 책도 읽지 못한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자가 임금이 될 것이오.” 오로지 백성만을 생각하는 세종대왕의 진심은 한글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오늘날 백성의 마음까지 얻은 임금으로 자리 잡았다. 12월 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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