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인콜렉티브 이정민의 ‘다의적이고 불확실한 산책길’

  • 윤다함 기자

입력 : 2019.11.01 17:24

이정민 유작전… 산책 중 수집한 소재와 어젠다, 화면에 담아
먹과 아크릴로 작업한 최근작부터 구작까지
12월 21일까지 대구 우손갤러리

 
이정민은 도시를 걸으며, 신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산책을 통해 지나치는 풍경에서 자신의 정서를 촉발하는 요소를 발견하고 수집했다. 이를테면 도심 속 공터, 공사장 철근, 부자연스럽게 다듬어진 조경용 나무 혹은 변두리의 버려진 숲과 같은 것들이었다. 때로는 시장에 진열된 하찮은 물건이나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표정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일상생활 안에서 만나는 각양각색의 우리네 삶의 모습에 관심을 가졌다. 산책은 현대사회구조 아래 살아가는 그만의 소재를 수집하고 영감을 얻는 형식이자 방법이었던 것. 이는 최근작에서도 확인된다. <산책-형태(Walking-Form)>(2019)와 <숲에서(In the Forest)>(2018)에서 원래의 모습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잘 다듬어진 조경용 나무로 이뤄진 숲은 현시대의 사회구조 내의 존재하는 여러 집단의 형태와 존재 양식을 나타내는 메타포로 해석될 수 있다. 숲에 들어가면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여 보호받는 듯한 안도감이 들기도 하지만 촘촘히 들어선 나무로 인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불안하기도 하다. 이렇듯 다의적이고 불확실한 각자의 ‘숲’에서 우리는 매일 산책하고 있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산책-형태 Walking-Form (16)> 96.5x130.2cm Indian Ink and Acrylic on Canvas 2019 /우손갤러리
<무-등-등 Perfect Equality (無-等-等) (2)> 130x130cm Indian Ink and Acrylic on Canvas 2017 /우손갤러리
 
동양화를 전공한 이정민은 동양화의 필법(筆法)은 감정을 즉자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정제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훈련으로 단련한들 캔버스에서 실제 벌어지는 작업 과정은 환경과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작가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그려지는 대상이나 정황이 본래 지닌 힘과 작가의 그리는 행위 그리고, 먹과 아크릴이 완벽하게 섞이지 못한 채 빚어내는 물성이 모두 어우러져 필선(筆線)을 흐트러뜨리는 물리적 현상이 매혹적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구체적인 대상을 유추하기 어려운 형태로, 절제된 필선에 의해 감각적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사물의 표면을 넘어서 인간 사회에 내재하는 관념에 집중하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 지점이기도 하다.
 
지난 8월 세상을 떠난 작가 그룹 ‘옥인콜렉티브’ 이정민의 유작전이 마련됐다. 오늘날 사회·문화적 현실에 대한 비전을 영상과 퍼포먼스, 설치, 회화를 통해 드러내 왔던 그의 최근작이 대구 우손갤러리에 내걸렸다.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이어왔던 이정민의 회화 연작 <산책-형태(Walking-Form)>을 비롯해 지난 10여 년 동안의 작품이 함께 전시됐다. 그의 회화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산책길을 거닐며 삶에 대해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12월 21일까지. 
 
< Untitled > 53x45.5cm Indian Ink and Acrylic on Canvas 2014 /우손갤러리
<단 한번 Once in a Lifetime> 50x65cm Indian Ink and Acrylic on Canvas 2015 /우손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