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10.10 17:58
갱스터와 고아형제의 동거… “이상하게 위안이 되네”
2017년 초연 후 ‘젠더 프리 연극’으로 재연
11월 17일까지 대학로아트원씨어터
해롤드는 납치당했다. 평소 소매치기나 일삼아오던 트릿이 크게 한탕 해낸 것인데, 정작 이 남자는 자신이 납치된 줄은 모르고 트릿을 ‘앵벌이 키즈’라 부르며 반가워한다. 다음날 아침 눈 뜬 해롤드는 스스로 결박을 풀고는 납치범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일자리를 주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생활을 보장해줄 테니 함께 살자고 말이다.
연극 ‘오펀스(Orphans)’는 제목 그대로 고아들의 이야기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후 트릿은 좀도둑질로 연명해왔고 동생 필립은 까막눈에 신발 끈도 묶을 줄 모르는데다 혼자서는 집밖을 나서지 못하는 겁쟁이다. 이럴수록 트릿은 필립을 더욱 통제하며 자신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길 바란다. 그러나 해롤드의 등장으로 둘의 삶은 변화를 맞이한다. ‘앵벌이 키즈’ 출신인 해롤드는 단박에 트릿 또한 같은 처지임을 알아채고 형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자 한다. 생계를 위해 나쁜 일에 서슴없이 손대는 트릿을 걱정해 안정적인 직장을 마련해 주고, 필립이 자립 능력을 갖추는 동시에 때 묻지 않은 눈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격려라는 것을 해롤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국내 초연 후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오펀스’는 남성 배역을 여배우가 연기하는 이른바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해 눈길을 끈다. 중년 남성 해롤드 역에는 박지일과 김뢰화 외에 정경순이 캐스팅돼 여성 배우로서 남성을 연기한다. 최유하와 최수진은 각각 트릿과 필립으로 분한다. 원작자 라일 케슬러를 설득해 젠더 프리 캐스팅을 이뤄낸 김태형 연출은 “무대를 통해 전달될 수 있는 가치라면 그 화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때는 남성과는 또 다른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돼 아픔과 상처를 지닌 세 인물이 벽을 허물고 서로의 위안이 돼 주는 이야기로, 마냥 무겁지 않게 풀어낸다. 달라도 너무 다른 셋이 점차 가족이 돼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관객은 웃다 울기를 반복한다. “내게 천사의 날개 있다면 저 담장 너머 날아갈 텐데.” 앵벌이 키즈 노랫말처럼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의 어깨에 천사의 날개를 달아줄 이번 공연은 11월 17일까지 대학로아트원씨어터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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